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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박상준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2월 10일 (화) 22:42 판 (語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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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왕.png

왕(王)자는 고대 군주의 호칭이었다. 갑골문과 금문 중의 왕자는 일종의 도끼형태의 병기- 월(鉞)의 형태였다. 월은 살육하는데 쓰인 병기인데, 후에 법을 집행하는 형기의 한 종류가 되었다. 고대의 군사 지도자는 그것을 이용해 군을 지휘하고 사병의 전투를 감독했다. 그래서 월은 곧 일종의 권력의 상징물이 되었다. 게다가 월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왕이라고 불렸다. 원시사회 군사민주제 시대에는 군사지도자, 곧 왕이 가장 높은 군자였다. 하상주시대에는, 천자만이 왕으로 칭했고, 전국시대에는 각 제후국의 군주 역시 계속하여 왕을 자청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 군주의 칭호를 황제로 바꿨고, 진한이후 왕은 더 이상 군주의 호칭이 아니었고 황실과 공이 있는 대신의 최고 호칭이었다.

왕의 갑골문 모양을 어떤 신분을 상징하는 모자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모자를 쓴다는 것은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그래서 <왕>이라는 뜻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서 왕 위에 화려한 장식물이 달린 모습을 임금 황(皇)으로 본다.[1]

文化

왕(王)자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처음에 무기의 형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학자들 간의 여러 논쟁 끝에 결론을 지은 것이, 王자는 처형이나 희생제에 사용된 도끼의 형상을 단순화 시킨 글자라는 것이다. 중국사회에서 단두대 위에 목을 자르는데 사용된 것은 부(斧)와 월(鉞)이라는 대형 도끼였다. 후한 정현(127~200)의 주에는, 요참형의 경우는 도끼, 기시형의 경우는 칼이 사용되었다고 적혀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서상의 해석이고 실제로는 머리를 자를 경우에도 부와 월이 사용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은 시대 청동기에 그려진 도상에는 사람위에 도끼를 놓고 머리 부분이 없는 인형의 형상이 있다. 이는 인형의 머리 부분이 잘린 모습이다. 따라서 머리를 자를 때는 부와 월과 같은 대형도끼가 사용되었을 추측된다.[2] 상나라 때는 이미 이러한 종류의 도끼가 존재했다. 이것은 옥으로 만든 순수한 의례용 도끼처럼 왕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했다. 제의나 처형을 위해 쓰이는 도끼가 왕이나 지배자의 주요한 권력 도구를 대표한다는 사고는 유럽인들에게도 쉽게 이해 될 것이다.[3]

  1.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8, pp.107
  2. 도미야 이따루, 유골의 증언, 임병덕, 임대희 옮김, 서경문화사, pp.91-92
  3.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김하림, 하영삼 옮김. 청년사,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