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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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은 후한 말 이래 성행한 인물 품평의 풍조 하에서 인재주의를 표방했던 위(魏)에서 창설된 것이지만 당초의 이상과는 달리 변질되고 운용됨으로써 정치와 사회적 지위의 세습을 특징으로 하는 귀족제를 성립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 제도는 각 군현에 파견된 중정이 향촌의 여론을 듣고 인재에게 등급을 부여하여 중앙에 올리면 관품을 주어 관리로 발탁하는 관료 선발 방법이다. 향품과 관품은 대개 네 계단 차이가 있었다. 향품 1품을 받으면 곧 관품 5품의 관직이 주어지는 형식이다. 그러나 향론을 장악한 자들은 각 지방의 유력자였기 때문에 그 자제들이 고정적으로 높은 향품〔上品〕을 받게 되었다. 당시 말로 “신체상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저작랑이 되고, 편지 서두의 인사말만 쓸 줄 알면 비서랑이 되었다”거나 “상품을 받은 자에는 빈한한 가문 출신자가 없고, 하품을 받은 자에는 세족 출신자가 없다”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공의 가문에 공이 나오고, 경의 가문에 경이 나오게 된 것”이다.
가장 높게 받는 향품은 대개 2품인데, 관품 6품의 저작랑과 비서랑으로 초임관에 임명된다. 이 두 관직은 청요관으로 이를 거치면 장래가 보장되므로 모든 관료 지망생이 선호했는데, 대기하는 자가 많아 10일 정도 지나면 바꾸어야 했다. 재능과 무관하게 가문의 높낮이에 따라 벼슬길이 결정되는 이런 체제하에서 2품을 고정적으로 받는 소위 ‘문지이품(門地二品)’의 가문이 출현했으니 이것이 바로 귀족이다. 문지이품은 주대중정제(州大中正制)가 도입되는 서진 시대에 출연했다. 대규모릐 지역안위인 주를 대표하는 가문에서 중정을 맡음으로써 군·현에서의 여론보다 향품을 자의로 결정하는 관행이 제도화된 까닭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