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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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바람까마귀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6월 27일 (화) 10: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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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년 ?월 ?일(베니스) ~ 1324년 1월 8일
베네치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인 니콜로와 숙부인 마페오를 따라 1271년 17세 때부터 동방 무역에 나섰다.
1271년 지중해 동북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라이아스를 출발한 폴로 일가는 현재의 터키 동부를 지나 이란을 동남쪽으로 횡단하고 타브리즈, 야즈드, 키르만 등지를 경유하여 페르시아만 입구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에 도착하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인도양을 항해하여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그곳의 선박이 조악하고 인도양 해로의 위험성 때문에, 곧 단념하고 육로를 택한다. 해로를 포기한 이들은 동북방으로 방향을 틀어 이란의 사막을 통과한 뒤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와 발흐를 지나 파미르 산중의 바닥샨 지방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에서 1년 간 체재한 뒤, 파미르를 넘어 현재 중국령 신강에 위치한 카쉬가르에 이르렀다가 거기서 타림 분지의 남쪽을 돌아서 하미에 도착했다. 이어 계속 동진하여 숙주와 감주 및 내몽골의 텐둑 지방을 거쳐, 1274년 쿠빌라이 칸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에 도착하여 쿠빌라이를 알현하였다.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 궁정 안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신분상으로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는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받아 황제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 각지를 여행하였고, 특히 양주에서는 3년간 관리로 재직했다.
오랜 중국 생활에서 생겨난 향수병으로 귀국하고자 했지만, 쿠빌라이 칸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1286년 일 칸국의 군주인 아르군은 부인이 죽자 그녀를 대신할 왕녀를 보내달라는 요청과 함께 세 명의 사신을 쿠빌라이에게 파견했다. 이에 쿠빌라이는 원나라 공주 코카친을 사신과 함께 내륙아시아를 통해 보냈으나, 당시 몽골과 중앙아시아는 카이두측과의 전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어서 도중에 길이 막혀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 마침 인도양을 다녀온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들은 사신들이 그에게 해로를 이용하여 함께 돌아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귀향의 희망을 거절당해온 마르코 폴로 일가도 그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동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로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경유한 뒤 이란의 호르무즈에 도착했지만, 아르군 칸은 이미 사망해 공주를 그 아우인 가이하투 칸에게 맡기고, 1295년 17년 만에 마르코 폴로 일가는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그 뒤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 휘말려 포로로 잡혀 제노바의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거기서 피사 출신의 루스티켈로라는 사람을 만나 자신의 놀라운 견문에 대해 구술하고 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여,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하는 『동방견문록』을 완성하게 했다.
1324년 1월 8일 마르코 폴로는 유언장 작성을 마치고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생전의 희망에 따라 베니스 시내에 있는 산 로렌조 교회에 있던 부친의 무덤 옆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지만, 후일 교회가 개축되면서 그의 무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