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홍

ChineseWiki
Root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1월 24일 (일) 20:10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샤오홍(萧红)/[Xiāohóng]

출생 1911년
중국 헤이롱장성 호란현(黑龙江省呼兰县)
사망 1942년
생존시기 북양정부~중화민국/국민정부
주요 작품 生死场》(생사의 장),《呼兰河传》(후란강 이야기), 《小城三月
관련 활동 문학

샤오홍의 생애

유년시절

샤오홍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치 않았다. 그녀는 1911년 중국 동북 지역인 하얼빈에서 태어났는데 그녀는 그녀의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부모는 남자아이를 원했고 샤오홍은 딸로서 그들에게 가치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인물이었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남성우월주의에 젖어 여성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사람이었다.[1] 이러한 환경에서 그녀에게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존재는 그녀의 할아버지였는데,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냉랭히 대하는 집안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귀여워해주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어머니 역시 돌아가셔서 계모가 들어온 이후 그녀의 인생에는 따뜻함이 사라지게 된다. 그녀의 계모는 일견 그녀를 잘 대하는 듯 하나 사실은 마음속으로 미워하며 데면데면하게 굴 뿐이었고[2] 이러한 환경에서 샤오홍은 집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된다. 타고난 총명함으로 성적이 우수했던 샤오홍은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할아버지의 지지로 소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문학과 예술의 소양을 갈고 닦게 된다.[3]어쩌면 이 때가 샤오홍의 인생 중 가장 정신적으로 충만한 때였는지도 모른다.

가출의 계기

그러나 샤오홍의 혼기가 차자 그녀의 아버지는 군부와 결탁하기 위해 샤오홍을 장교인 왕팅란(王廷兰)의 차남인 왕은자(王恩甲)에게 시집보내려 하나 샤오홍은 이미 사촌오빠를 좋아하고 있었고[4] 그 사촌 오빠와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그러나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버지를 두려워한 왕뎬란은 결국 샤오홍을 포기하고 샤오홍은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10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샤오홍은 이 집을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하여, 고모와 작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약 1931년에 집을 떠났다.

방랑생활과 연인들

그러나 이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예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친구나 친척 집을 전전했으나 이후 유랑생활의 피로와 일본의 하얼빈 침략으로 인한 충격으로 옛 약혼자인 왕은자를 찾아가 몸을 위탁했고, 그 둘은 여관집에서 7개월간 동거했다. 하지만 여관빚이 생기자 왕은자는 돈을 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샤오홍은 매춘부로 팔려갈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그녀는 극한의 상황에서 문예계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하얼빈 국제협보(国际协报)의 문예부간(文艺副刊)에 글을 보낸다. 이 때 편집인이었던 페이신위엔(裴馨园)이 샤오홍을 돕기로 하고 몇 명의 청년을 보내 그녀를 구하도록 지시하는데, 이 때 샤오홍을 구하러 간 사람중에 샤오쥔(小军)이 있었다. 샤오쥔은 샤오홍의 작품을 보고 사랑에 빠졌으나, 여관에서 샤오홍을 빼낼 방도가 생기지 않을 때 마침 송화강의 수위가 높아지는 홍수를 만나 난리틈에 샤오홍은 여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몇 주 후 샤오홍은 양육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임신했던 왕은자의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내게 되었고 이후 1938년까지 6년간 샤오쥔과 결혼생활을 하나 성격차이로 결국 갈라서게 되었고, 예전부터 친구였던 돤무홍량(端木蕻良)과 다시 결혼하게 된다.

불행한 말년과 죽음

하지만 1938년 8월 일본군이 우한을 폭격하자 돤무홍량은 홀로 충칭(重庆)으로 떠나버렸고, 그녀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충칭에 도착한 후 사생아를 낳았다. 1939년 일본군의 공격도 심해지고 샤오홍의 폐결핵도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돤무홍량과 그녀는 홍콩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1940년 1월 충칭에서 홍콩으로 갔고 여기에서 샤오홍은 소설《후란강 이야기》를 완성했다. 1941년 12월 8일,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이 발발했을당시 샤오홍은 병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돤무홍량은 그 때 그녀의 곁에 없었다. 이 때 그녀는 심한 외로움을 느꼈고 거기다가 의사의 오진으로 있지도 않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다가 병세가 더 심해졌다. 결국 1942년 1월 22일, 그녀는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5]

참고 자료

왕해앵.(2013). <蕭紅 소설연구 : 여성의 비극적 운명 및 그 근원을 중심으로 = A study of novel "XiaoHong" Based on women's tragic destiny and its causes>(석사). 충북대학교 대학원, 충청북도

정경. (2006). <萧红 小说 硏究 :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 A study of 萧红xiaohong's novel>(석사). 전북대 교육대학원 : 교육학(중어중문교육), 전라북도

김상주.(1994).蕭紅의 삶과 散文背景論 (一)  : 1933~1935年을 중심으로. 中國人文科學, 12호, 601-619(19쪽)

김상주.(1994).蕭紅의 삶과 散文背景論 (二)  : 1936~1942年을 중심으로. 中國人文科學, 13호, 605-638(34쪽)

바깥 고리

샤오홍 바이두백과

  1. 왕해앵, <蕭紅 소설연구 : 여성의 비극적 운명 및 그 근원을 중심으로 = A study of novel "XiaoHong" Based on women's tragic destiny and its causes> ,13p
  2. 왕해앵, 위의글, 16p
  3. 정경,<萧红 小说 硏究 :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 A study of 萧红xiaohong's novel>,2006, 25p
  4. 정경,위의글,11p
  5. 정경, 위의책, 21~25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