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 정권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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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2년 손권의 후계 다툼

229년에 손권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태자가 된 손등은, 241년 병이 깊어지자 아우인 손화를 황태자로 추천한다. 그리하여 손화가 19세의 나이로 황태자가 되었다. 그런데 손권이 손화의 아우인 손패를 총애하였기 때문에, 둘은 같은 대우를 받고 지냈다. 결국 황태자인 손화와 왕인 손패를 둘러싸고 파벌이 갈라지게 되었고, 각기 육손, 제갈각, 고담, 주거, 등윤, 시적, 정밀 등이 손화를, 보즐, 여대, 전종, 여거, 손흥 등이 손패를 편들었다. 이 때 손권의 딸인 전공주가 손화의 어머니인 왕부인과 사이가 틀어졌고, 전공주는 손화가 손권이 몸져 누운 것을 보고 기뻐하는 기색이 있다며 손권에게 모함하여 손화는 폐출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총애를 잃게 되었다.


승상 고옹이 243년 사망하였고, 육손이 승상 직에 올랐다. 그러나 육손이 황태자와 왕의 신분을 구별해야 한다며 건의하자, 손권은 구실을 만들어 육손을 귀양보내버린다. 오찬 또한 육손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유배된다. 손권이 수차례 사자를 보내어 육손을 문책하자,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250년 8월, 결국 손권은 황태자 손화를 폐하고, 손패는 자살하도록 명하였다. 결국 손량을 새로이 황태자로 세우게 되었다.

  • 252년 손권의 사망

손권이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손량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제갈각을 황제의 태부로 임명하고, 등윤을 위장군에 임명하여 상서의 직무를 겸임하도록 했으며, 상대장군 여대를 대사마로 삼았다. 평상시 제갈각과 사이가 좋지 않던 손홍은 제갈각에게 숙청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손권이 사망한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거짓 조서를 만들어 제갈각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손준이 이 일을 제갈각에게 보고하자, 제갈각은 손홍을 불러 질문을 몇 가지 던지고는 그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죽였다. 3월, 제갈각은 자주 출병하는 것은 병사들을 피로하게 한다며 만류하는 대신들을 뒤로 한 채,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를 토벌하러 나선다. 4월에 합비신성을 포위했다가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퇴각하니 그에 대한 원망이 높아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10월, 제갈각은 손량을 알현하기 위해 입궐하였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되돌아가려 하였는데, 돌아가던 길에 등윤을 만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주연에 참석하였다. 그는 음식과 술에 누가 독을 탔을까봐 두려워 자신이 준비해온 술을 마셨다. 손준은 뒷간에 가는 척 하며 몸을 일으켜 조서를 칭하며 칼을 빼들고 제갈각을 주살하였다. 손준은 제갈각의 뒤를 이어 승상에 임명되었지만, 256년 위를 토벌하기 위해 출병하였다가 여거의 군대가 잘 통솔됨을 보고 두려워하던 중 제갈각에게 매맞는 꿈을 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 256년 여거, 문흠의 반란

손준이 사망한 뒤 그의 사촌인 손침이 정권을 이어받는다. 여거, 문흠, 당자 등이 등윤을 승상으로 앉힐 것을 건의하였으나 응하지 않는다. 여거는 곧 손침 토벌을 계획했고, 이 소식이 새어나가자 손침은 문흠과 당자로 하여금 여거를 잡아들이게 하였고, 유승에게 작위를 약속하여 등윤을 공격하게 한다. 여거는 잡히기 전 자살하였고, 등윤은 삼족이 모두 처형당했다.

  • 258년 손휴의 즉위

손량이 정사를 직접 처리하게 되자 손침은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것을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손량을 알현하지 않으며 정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손량은 손침이 전횡을 일삼는 것을 막기 위해 전상, 유승 등과 함께 손침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손량의 비가 손침의 친척이었으므로 계획이 누설되어 유승이 죽으며 실패한다. 손침은 손량을 폐위시켰고, 그 뒤를 이어 손휴가 즉위한다.

손휴는 손침의 권세가 자신보다 높은 것을 두려워하다가, 그가 역모를 꾀한다는 말을 듣고 장포와 계략을 꾸며 12월 납일에 그를 체포하여 바로 처형하였다.

260년, 손량이 수도로 돌아가 다시 즉위해야 한다는 소문과, 손량이 무당으로 하여금 손휴를 저주하게 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손휴는 이 일로 손량을 후관후로 폐출하여 추방하였다. 가는 도중에 손량은 자살하였다.

  • 264년 손호의 즉위

손휴가 30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손호가 즉위하였다. 손호는 재능과 식견의 영명함과 과단성이 있고, 손책과 같은 류의 사람이며, 학문과 법도를 받들어 준수한다고 칭찬받는 인재였는데 제위에 오르자 포악하고 교만해졌다. 복양흥과 장포는 손호의 사람됨에 크게 실망하여 그를 제위에 올린 것을 후회하였고, 이 사실을 안 손호에게 둘 다 죽음들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