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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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25일 (화) 02:05 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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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당대의 시인으로 자는 자후 조상의 본적이 하동(河東)인 까닭에 하동선생, 또는 유하동이라고도 불림. 당 고종 때의 재상 유석의 후손이며, 서초 황제 의제의 후예 덕종 정원(貞元)9년(793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함. 정원 14년인 798년 박학굉사과에 급제. 집현전정자로 있다가 남전위로 옮기고, 감찰어사가 됨. 정치 사회의 질서의 개혁을 표방한 왕숙문 집단의 혁신 정치에 참여했다가 실패하여 이후 유주, 영주와 같은 오지에서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함. 다양한 문체로 주옥같은 시문을 많이 써냄, 후에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한유(韓愈)와 더불어 한유(韓柳)로 병칭됨. 그의 시는 자연 산물을 맑고 산뜻한 필치로 묘사한 것이 대부분으로, 산수 자연을 노래한 시인 중 발군이라는 평가를 받음.

유종원의 사상

중국의 역사에서 당나라는 고도의 번영과 발달을 이룬 국가이지만, 유종원이 활동한 시기는 당 중기로 왕실과 통치계급의 정치와 생활상의 극심한 부패로 인하여 백성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정치와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때 유종원은 이러한 착취와 억압에 반하여 정부에 맞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교화 활동을 펼쳤다. 왕숙문 집단의 혁신 정치는 그 의미가 있었지만, 유종원의 사상과 정치투쟁이 과거에 오랜 시간 왜곡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상적 가치는 말살되고 문학적 가치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우주관에서의 유물적 성격

고대 중국에서 천을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하나의 신으로 여겨 숭배하는 모습이었다면, 이후에는 천이 계시한 사람에 의하여 통치자의 권위가 결정된다는 내용을 가지고 정치적인 색채를 띤 자연물로 이용된 천명사상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사상은 통치자의 권위를 정당화시키고 백성들이 받는 고통은 숙명이라는 관점에서 정당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의 저항의지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통치자는 어떠한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러한 사고를 불신하게 만들었고, 여러 사상가들의 논의가 나온 와중 유종원은 천(天)에 대하여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여겼다. 천이 비록 크고 넒지만 단지 자연현상일 뿐이며 음양 운동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고 조화가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하늘이 특정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 순리대로 흘러가는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이성적 사고에 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천지는 큰 나무, 혹은 풀 열매이며, 元氣는 큰 부스럼이고, 음양은 거대한 초목이다. 그 어찌 능히 공로에 대해서 상을 주거나 벌하거나 화를 미치게 하겠는가? 功은 인간 자신의 공이요 화는 인간 자신의 화이다. 하늘에게 상벌을 바라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늘에게 부르짖고 원망하며, 그 슬픔과 사랑해 줄 것을 원한다면 더욱 큰 잘못이다. 당신은 가령 당신의 仁義를 지니고 천지 사이에 생존한다고 하여도 살고 죽는 것은 자기의 사정이다.어찌 자기의 생사를 객관적인 자연에 돌릴 것인가? 의 대목에서는 하늘에게 상벌을 바라는 것은 잘못이며 하늘에게 부르짖고 원망하며, 슬퍼하고 사랑할 것을 원한다면 더 큰 잘못이라고 말하며 자연을 객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그의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외

무릇 땅에서 관리가 되는 자의 직분을 아는가? 대저 백성의 노역이며 백성을 부려 쓰지 않을 뿐이다. 백성은 땅에서 먹고 사는데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내어 관리를 고용하여 자신들을 평등하게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받고 일은 태만히 하고 있다. 온 천하가 또한 그러하다. 어찌 태만할 뿐인가? 도둑질도 한다. 만약 집에 종을 고용했는데 그들이 보수만 받고 일을 태만히 하며 게다가 당신의 그릇까지 훔친다면 당신은 반드시 화를 내어 쫓아낼 것이다. 지금 세상에 이런 일이 많은데 백성이 감히 노여워하고 쫓아내지 못함은 무엇 때문일까? 형세가 달라서이다. 형세는 분명히 다르나 이치는 같으니 우리는 백성을 어찌해야 할까? 그 이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에서 그는 백성을 착취하고 부려먹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 시대의 관리를 꾸짖으며 직분에 맞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하여 주장한다. 천에 대한 사상 뿐 아니라 그는 귀족의 특권을 반대하고 백성의 역량과 권리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극적인 은둔을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와 대중을 위해 힘쓸 것을 주장하는 사상가였다. 순자와는 천을 자연으로 바라보고, 객관적 천에 대해 주체적 인간의 직분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사상의 맥락을 같이한다.

유종원의 문학

강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徑人踪滅 만경인종멸

온 길엔 사람 하나 자취 없다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눈 내린 차가운 강 위에서 호올로 낚시한다.

위 글은 유종원이 후난성의 영주사마로 좌천되었던 시기에 쓰인 작품으로 속세를 초월한 듯 대자연에 은거한 고기잡이 늙은이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 관조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정치적 실의와 고도감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눈 내리는 강의 풍경에 대한 시이며, 대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종원 문학의 특징

유종원의 글의 특성 중 잘 드러나는 점은 관점이 선명하고 논점이 명확하여 감추는 것이 없이 대담하고 단호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봉건제는 성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형세에 의한 것이다.' '이로부터 하늘은 우리 일에 참견할 수 없으며 관여할 틈이 없음을 알 수 있다……또한 옛날에 하늘에 대해 이야기한 목적은 어리석은 백성을 우롱하려는 것뿐이었다.'라고 봉건제와 형벌제도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유종원의 글에서 모두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대담하고 치밀하게 문제의 실질을 지적하고 정확한 글을 써내려갔음을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글은 후대의 문인들로부터 방대한 양의 자료 인용에 대한 칭찬을 받는 글이 되었다. 그의 대표적 論說文인〈封建論(봉건제에 대해 논함)〉에 대하여 宋代眞德秀는 그 예술적 표현기법에 대하여 문장의 구성이 방대하고 변론이 웅장하여 실로 작문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間架宏闊,辯論雄俊,眞可爲作文之法)168)라는 평을 받았으며, 淸代孫琮은 柳宗元의〈封建論(봉건제에 대해 논함)〉에 대하여는 식견이 고금을 통해있으며,시각이 백세를 꿰뚫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문학과 글이 풍부한 자료를 통해 정확한 내용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회의정신과 비판정신이 강렬하였고, 옛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법 없이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피력하는 글쓰기를 해나갔고, 이러한 점 또한 그의 문학에 대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유종원 문학의 의의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를 발휘하여 글을 쓰는데 주력하였고, 각종 사상을 해석하고 인간의 문제를 탐색하는데 이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사고하였다. 따라서 그의 생각들은 당시에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그러한 사고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유종원이 당시 유행하던 변려문을 고문으로 바꾸려했던 것이나 봉건제를 비판하고 위민 정치를 강조했던 부분은 5.4운동의 사상과 근대 중국의 봉건주의 타파 및 민주주의 사상 등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1200년의 시간 간극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 영향력 있고 합리적인 사고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고사성어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보인다'라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사귀는 것을 의미한다. 

유종원이 유주자사로 임명되었을 당시, 그의 친구 유몽득은 파주자사로 가게 되었는데, 몹시 궁벽한 변방인 파주에 노모를 모시고 갈 수 없는 친구의 상황을 생각하여 유종원이 간청하여 몽득 대신 파주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 사후, 한유가 이 사실을 보고 크게 감복하여 어려운 일을 당했을 떄 참된 절의가 나타나는 것이 사람인데, 이들은 평소에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놀고 즐겁게 웃는 것이 마치 간과 쓸개를 다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하지만, 이해관계에 대한 부분이 얽히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더 챙긴 모습을 칭찬하며 나오게 된 고사성어이다.

참고문헌

1) 고역생, ⟨유종원⟩, 학고방, 2005.

2) 심재국, ⟨柳宗元 論說文의 독창성 및 현대적 의의 연구⟩, 숭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3) 김정희, ⟨유종원 사상의 특징 ; 순자와 비교하여⟩, «한국 동서 철학회 논문집»,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