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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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 진나라의 국군(國君)(재위, 기원전 650-기원전 637). 이름은 이오(夷吾)고, 헌공(獻公)의 셋째 아들이다. 헌공이 총희 여희(驪姬)의 참언으로 태자 신생(申生)이 자살하자 자신에게도 위해가 닥칠 것을 두려워해 양(梁)나라로 달아났다. 여희의 소생 해제(奚齊)가 즉위하자, 신하 이극(里克)이 해제와 탁자(卓子)를 죽이고 그를 맞았다. 진(秦)나라에 하서(河西)의 땅을 주겠다면서 귀국하기를 부탁했다.

이에 진목공(秦穆公)이 군사를 그에게 보내 진(晉)나라로 들어가게 하고 이극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제환공(齊桓公)이 진(晉)나라가 어지럽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로 가서 진(秦)나라와 함께 그를 세웠다. 즉위한 뒤 이극과 그 일당들을 살해하고 약속을 어겨 진(秦)나라에 땅을 주지도 않았다. 진(晉)나라에 기근이 들자 진(秦)나라에 식량을 요청하니 진나라가 곡식을 주었다. 다음 해 진(秦)나라에 기근이 들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곡식을 주지 않았다. 진목공이 화가 나 정벌에 나서 한원(韓原)에서 전투를 벌였다. 진(晉)나라가 패하자 포로가 되었다. 나중에 귀국했다. 14년 동안 재위했다.


참고자료

<<중국역대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