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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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국문 이정원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2월 22일 (일) 04: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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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그림

개요

혼돈(渾沌 또는 混沌)은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가진 존재이다.

《장자》 속 혼돈

장자》 내편 '응제왕'의 마지막 장에 혼돈의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남해 임금은 숙(儵), 북해 임금은 홀(忽),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잘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도를 의논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 줍시다.”
날마다 구멍 한 개씩 뚫어주었는데 칠 일 만에 혼돈은 죽어버렸다.

 
— 장자 내편 응제왕


혼돈에게 뚫은 일곱 개의 구멍은 인간의 감각을 뜻한다. 혼돈이 죽은 이유는 자연스러운 상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사회에 만연한 분별에 대한 회의를 혼돈의 죽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혼돈은 무질서 속의 질서이며, 숙과 홀의 강요로 구멍을 만들어 주려는 모습에서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찾아볼 수 있다. 혼돈은 죽음 이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천지간을 떠다녔다고 한다.

사흉 속 혼돈

혼돈은 『좌전』(문공 18년)에 서술되는 사흉의 하나로 등장한다. 예전에 고양씨와 고신씨에게는 저마다 8명의 재주 있는 아들이 있어 팔원팔개라고 불렸다. 이 어진 아들들을 통해 질서가 지켜졌으나, 제홍씨와 소고씨의 각기 재주 없는 아들 혼돈과 궁기 그리고 전욱씨와 진운씨의 재주 없는 아들 도을과 도철 등 4명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천하의 질서를 흐트러뜨렸다. 이 때문에 요나라를 받들던 순임금은 부정을 씻고 정화하는 의식을 사방에 행한 다음 그것을 네 아들에게 던져 악령을 막았다고 한다.
혼돈은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가졌으며 가무를 즐겼다고 했고, 궁기는 짐승의 형상을 하고 사람의 말을 했는데, 사람들이 싸우면 올바른 쪽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도철은 우신인면, 곧 소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로 이 역시 사람을 잡아먹었다. 도올 또한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 발을 한 인면호족의 짐승이었다. 이들 모두는 암흑의 신이었다. 중국이 스스로 중화라고 부르며 사방을 사해라고 한 것은, 이 네 가지 흉악한 괴물인 사흉이 살고 있는 주변을 희명이라고 부른 신화적 세계관을 나타낸 것이다.

산해경 속 혼돈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우주가 개벽 또는 탄생하기 이전의 모습에 대한 혼돈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天山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황금과 옥이 많고 청웅황(계관석)잉 있다. 英水가 여기서 시작되었는데, 서남쪽으로 흘러 湯谷으로 들어간다. 산에 신이 있으니, 모습은 누런 자루 같고, 丹火처럼 붉으며, 다리는 여섯 개이고, 날개는 네 개이며, 온 몸이 하나 되어 눈과 코가 없고 두루뭉술하다. 이 신은 노래 부르고 춤추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곧 帝江이다.


산해경에서 말하고 있는 자루처럼 생긴 이 ‘제강’은 날개가 네 개 달려 있어 조류의 일종으로 의심할 수 있다. 정재서는 이 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혼돈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빗대려고 하다 보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새를 상상하게 된 것이다. 사실 혼돈이라 함은 컴컴한 어둠인데 새로 표현해내기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런데 무엇보다 기이한 특징은 눈·코·귀·입 등 얼굴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새는 정말 혼돈 속에 갇힌 어두운 상황처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답답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해경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혼돈의 모습은 단지 괴이한 형태의 신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누런 자루, 눈·코·귀·입이 없는 달걀, 날개의 특징들은 조류를 상징하면서 알이 가지는 생명의 ‘기원, 시작’을 강조하고 있는 이미지이다. 혼돈은 하늘과 땅에서 활동하기 편리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어 하늘(비상)과 땅(착륙)을 동시에 상징하여 하늘(天)과 땅(地)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혼돈이 춤을 즐겼다는 것은 움직임을 통해 발생하는 기운(氣)의 존재로 말미암아 우주가 ‘살아있음의 상태’로 존재하며 無의 공간에서 생명이 충만하게 됨을 암시한다.

혼돈의 의의


신화는 문자가 생겨나기 전부터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신화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허황된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아득한 과거의 철학, 문학, 종교에 대한 뿌리를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혼돈을 통해 원시인류가 세계의 탄생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고, 그들이 상상한 신의 모습의 실마리를 확인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시라카와 시즈카(윤철규 옮김),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2009
김홍겸, 「중국 우주개벽신화 속 혼돈과 빅뱅이론의 유사성」,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