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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쟁기 뢰.png

뢰(耒)는 삽처럼 생겼으나 그 끝이 두 갈래로 치아의 모습처럼 갈라진 농기구의 일종인 가래로서 땅을 파는 역할을 했다. 초기 금문의 뢰(耒) 글자는 손(又) 힘(力)의 의미를 취하여 쟁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상형하고 있다. 소전체에서 뢰(耒) 글자는 손 부분이(又) 왼쪽 아래를 향하는 세 개의 삐침으로 변하였고 쟁기 부분이 나무 목(木)자로 와전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형태에서 뢰(耒)의 해서체의 근원이 생겼다. 한자 가운데 뢰(耒)와 관련된 글자는 농기구 또는 농작물과 연관이 있고 그 예로는, 耜 (보습), 耕(밭갈 경), 耤(짓밟다), 耦(나란히 갈 우) 등이 있다.

文化

<뢰(耒) -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쟁기>

주앙(zhuang)족, 통(tong)족, 야오(Yao)족 루어바족과 같은 서남부에서 생활하는 여러 소수민족은 지금까지도 화전이나 쟁기(耒)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경작방식을 보존하고 있다. ‘답려’라고 불리기도 하는 위의 쟁기는 휘어진 목재로 만들어지는데, 아래쪽에 가름목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발로 쟁기 위를 밟고서 쟁기발이 앞으로 미끄러지게 한다. 이는 땅을 뒤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밭의 고랑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그 고랑에 씨를 뿌리면 많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고대에 황하유역에 살던 농민들은 점토의 함량이 매우 적은 일종의 세사토에 농사를 지었다. 실제로 오래된 글자에는 오늘날 소수민족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쟁기가 그때까지 사용됐다는 사실이 반영돼 있다. 소수민족이 보존하고 있는 또 다른 농기구는 바로 ‘보습(耜)’이다. 이것은 곧은 막대로 만들어지고, 아래쪽이 다소 넓으며, 쟁기와 마찬가지로 가름목이 달려 있다. 이 가름목 위에 ‘삽대’를 발로 밟으면 진흙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페루와 볼리비아 고원지대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들 중에는 이런 농기구들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종족이 있으며, 그들은 이것을 ‘타크라(taclla)’라고 부른다. 상나라 때의 몇몇 고대문자 중에서 이와 유사한, 뾰족한 날이 두 개 달린 농기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1] 청정한 볍씨를 만들고, 성스러운 불이나 축고에 의하여 깨끗이 하는 농경의례가 근로의 본래 의미라면, 농사는 특히 고생스러운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고생과 농업은 각 민족들에게 동의어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농업을 ‘나리(생업)’라고 한다.[2]

<상나라 때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을까?>

뢰(耒)는 ‘설문해자’에서 “손으로 잡고 땅을 일구는 구부러진 나무”라고 하며, 가래에 손을 더한 모양으로 풀이한다. 농경에 사용한 가장 원시적인 도구는 소위 ‘후구시’, 즉 나무로 만든 땅을 파는 도구로 거의 채취 경제 단계의 것이며, 튼튼한 나무로 가래를 만들자 비로소 경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뢰(耒)가 두 개 나란히 있는 모양의 문자는 둘이 짝을 지어 경작하는 것을 나타낸 듯하다. 적(耤)은 이 뢰(耒) 글자를 발로 밟고 있는 모양인데, 소가 뢰(耒)를 끌도록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소를 이용하여 땅을 일구는 것에는 려(犁)를 사용하며, 려(犁)를 ‘설문해자’에서는 “경(耕) 이다“라고 한다. ‘산해경’에는 후직의 후손인 숙균이 처음으로 소를 이용하여 땅을 갈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확실한 것은 춘추시대부터이다. 공자의 제자인 염경은 이름이 백우(伯牛)이고 사마경은 이름이 려(犁)로, 모두 소를 이용한 경작에 의거하여 이름과 자를 짓고 있으니, 그 무렵에는 소를 이용한 경작에 대하여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3]

  1.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p.165-166
  2.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497
  3.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세계”, 솔출판사, 2008, pp.493-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