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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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방연(龐涓)은 전국시대 위(魏)나라 장수이자 병법가이다.

생애

귀곡자아래에서 가르침을 받다

귀곡자의 밑에서 장의,소진,손빈과 함께 수학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중 손빈과 방연은 병법위주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방연과 손빈은 서로 호형호제 하며 지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방연은 천재성이 드러나는 손빈을 자주 질투하곤했다. 이 질투심은 방연의 죽음 직전까지 이어진다.

귀곡자가 방연의 운명을 점치다

귀곡자(귀곡선생)은 꽃점을 통하여 손빈과 방연의 미래를 점친다. 두 제자에게 각각 꽃을 구해오도록 했는데 방연은 온 사방을 다 뒤져 제일 아름다운 꽃을 가져온 반면, 손빈은 방안에 있었던 아주 평범한 꽃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에 방연이 가져온 꽃이 12개의 잎으로 되어있는것을 본후 귀곡자는 방연의 전성기는 12년뿐일 것이라고 점쳤다.

손빈에 대한 질투심, 서자 컴플렉스

방연은 서자 출신으로서 출신에 대한 강한 욕망을 통하여 성장해 왔다. 그 컴플렉스를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끝에 약 10년만에 위나라의 대장군이 되었는데 이때 과거에 같이 공부하던 손빈이 방연을 찾아와 자신도 한 자리를 주면 안되겠냐고 묻는다. 방연은 손빈을 요직에 앉혔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변사람들의 이간질과 손빈의 능력을 질투한 까닭에 손빈을 제나라의 스파이로 몰아 빈형을 처하게 된다. 이후 손빈은 방연을 위해 손자병법을 저술해 주기로 한다.

업적

보통 방연에 대한 이미지는 방연을 손빈에 대한 질투심으로 눈이 멀어 배신한 나쁜 인물로서 묘사 되지만 위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방연은 훌륭한 장수였다. 위나라의 입장에서 손빈은 자국의 위험이 되는 아주 뛰어난 학자 였으며 손빈이 존재함으로서 위나라가 위태함을 감지했던 방연은 손빈을 제거하기 위해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전국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로서 어제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는 시기였다. 이에 방연이 내린 판단은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할수 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한 서술방식이기 때문에 비록 방연이 뛰어난 무사적 능력을 갖춰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에 패배만 과장되어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목적을 위해 그릇된 선택을 한 것이라는 비판은 피할수 없다.

일화

십팔사략에서의 방연

魏伐韓, 韓請救於齊. 조나라가 한나라를 정벌하려해,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齊使田忌爲將以救韓. 그러자 제나라는 전기를 총지휘관으로 임명하여 한나라를 구하도록 했다.

魏將龐涓, 嘗與孫臏同學兵法. 위나라 장수 방연은 일찍이 손빈과 함께 병법을 배운 사이다.

涓爲魏將軍, 自以所能不及, 방연은 위나라 장군이 되어, 자기의 능력이 손빈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

以法斷其兩足而黥之.법에 따라 손빈의 양 발꿈치를 잘라내고 그의 얼굴엔 범죄자란 표식을 새겼다.

齊使至魏, 竊載以歸. 제나라 사신이 위나라에 도착했을 때, 몰래 손빈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갔다.

至是臏爲齊軍師, 直走魏都, 이때에 이르러 손빈은 제나라의 군사가 되어 곧바로 위나라 도읍으로 쳐들어갔으니,

涓去韓而歸. 방연은 한나라를 공격하던 걸 그만두고 되돌아와야 했다.

臏使齊軍入魏地者爲十萬竈, 손빈은 제나라 군사로 위나라에 들어간 사람에게 10만의 부뚜막을 만들고,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二萬竈. 그 다음날은 5만의 부뚜막을 만들고, 그 다다음날은 2만의 부뚜막을 만들도록 했다.

涓大喜曰:이에 방연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我固知齊軍怯. “나는 원래부터 제나라 군사들이 겁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병사 중에 도망친 놈들이 과반이구나”

乃倍日幷行逐之. 이에 하루에 두배를 걸으며 쫓았다.

臏度其行, 暮當至馬陵. 손빈은 위나라 군사들의 걸음을 헤아려, 저녁이면 마땅히 마릉에 이를 거라 생각했다.

道狹而旁多阻, 可伏兵. 乃斫大樹, 마릉은 길이 좁고 곁이 매우 험해 병사를 매복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白而書曰:‘龐涓死此樹下.’ 그래서 큰 나무를 쪼개 흰 부분에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라고 썼다.

令齊師善射者, 萬弩夾道而伏, 제나라의 군사 중 활을 잘 쏘는 사람에게 만노를 길에서 끼고 숨었다가

期暮見火擧而發. 밤을 기다려 횃불이 켜지는 걸 보면 쏘라고 했다.

涓果夜至斫木下, 見白書, 以火燭之, 방연은 과연 밤에 쪼개진 나무 아래에 도착했고, 백서를 보기 위해 횃불을 켜니,

萬弩俱發, 魏師大亂相失. 만노가 일제히 발사되어 위나라 군대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涓自剄曰: “遂成豎子之名.” 방연은 스스로를 베며 “마침내 애송이의 이름이 완성되었구나”라고 말했다.

齊大斫魏師, 虜太子申.제나라는 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갔다

마릉전투에서 죽임을 당하다

방연은 제나라군이 퇴각하자, 군을 이끌고 추격을 하였다. 마릉이라는 곳에서 손빈의 제나라군과 조우하였다. 손빈이 주위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 방책을 만들었고, 한 그루의 나무만 남겨두었고, 그 나무의 한쪽 껍질을 벗겨낸 후, 거기에 "龐涓死于此樹之下(방연이 이 나무 밑에서 죽는다)"라고 적어두었고, 길 양측에 궁수 일만을 매복시켰다. 손빈이 과연 계산대로, 한 밤중에 손빈이 있는 곳에 방연이 도착하였다.
방연이 나무에 글이 적혀있자, 호기심이 났고, 방연은 글을 읽기 위해 불을 피웠다. 방연이 불피운 것이 신호가 되어 제나라의 복병들이 방연이 있는곳에 향하여 일제히 화살을 발사하여 수많은 위나라 군사들이 순식간에 전사하였다. 방연은 스스로 제나라군에 패배한 것을 인지하고는 "기어코 그 녀석의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遂成豎子之名)"라고 말하고는 자살(사살이라는 이야기도 있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