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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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양주(楊朱)
출생 기원전 400년대
사망 기원전 360년대
거주지 (魯), (宋), (梁)
국적 (魏)나라, (秦)나라
별칭 자거(子居) 혹은 자취(子取)
활동 기간 묵자와 맹자 사이
가족 양포(楊布) 양주의 동생
노자의 제자

양주(楊朱)전국시대의 학자로 선진 도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노자의 제자로 알려져 있고, 주로 노, 송, 양의 일대에서 활동했으며, 활동 시기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묵자맹자 사이로 보고 있다. 그가 만든 사상을 양주학(楊朱學)이라 하며 양주가 활동하던 당시의 현학으로 묵학(墨學)과 함께 유행했다. 그 기록을 《맹자》에서 찾을 수 있다.

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楊,即歸墨。

양주와 묵자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고, 천하의 말은 양주를 따르지 않으면 묵자를 따른다.
『맹자』〈등문공하(滕文公下)〉

하지만 양주에 대한 독자적 문헌은 일찍이 산실 되어 없다. 《맹자》, 《순자》, 《장자》, 《한비자》, 《여씨 춘추》, 《열자》에서 그의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양주에 대한 모습을 비교적 진실하게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열자》라는 책은 위서로 간주하고 있다. 《열자》에 등장하는 양주와 맹손양 등이 역사에서 실존했던 인물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말했다는 내용만큼은 논의할 수 있고, 선진시대의 문헌 중 《열자》에만 유일하게 ‘양주편’이 편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뤄볼 가치가 있다.

양주철학

양주 철학에서의 핵심은 ‘위아(爲我)‘와 ‘경물중생(輕物重生)‘이라 볼 수 있다. 양주는 모든 사람이 ‘위아’ 하고 개인의 욕구를 긍정하는 사상을 펼쳤다는 측면에서 극단적 이기주의로 비판받은 바가 있다. 한편, 이를 극단적 이기주의라기보단 개인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양주의 사상을 긍정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이들은 위아가 귀기(貴己)로 이어지고 이는 전생보진(全生保眞)으로 연결되어, 경물중생에 도달하는 과정에 시작으로 보았기에, 부정적인 측면의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해석에는 오류가 있다 본다. 양주의 사상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는 크게 유행했지만, 맹자 등 여러 학자에게 크게 비판받고 중국 철학사의 비주류로 취급되었다. 양주에 대한 맹자의 비판이 오류가 있다 평하는 이들은 그의 사상이 전국시대에 크게 유행했다는 점에서, 만약 극단적 이기주의에 입장이었다면, 그것이 사회의 혼란을 잠재우고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사상들이 가득했던 전국시기에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할 수 있었을지 알 수 없기에 양주의 철학을 극단적 이기주의로 평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본다.
이후 양주의 사상은 많은 사람이 양주가 노자를 만나 노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한 왕조 이후 추세에 따라 도교 사상의 한 맥락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예를 들어 《음부경(陰符經)》에서 조금 드러났고, 「은해상생(恩害相生)」의 내용에 가깝다.

위아(爲我)의 개념과 두 가지 해석

위아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자신을 위함’이라 할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不以天下大利易其脛一毛 즉, ‘천하의 커다란 이익을 주는 대가로 자신의 정강이 털 한 올과도 바꾸지 않았다’는 이 구절이 ‘위아’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1)양주는 기꺼이 자시 몸의 털 하나만 뽑으면 세계가 이익을 누린다고 해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과 (2)양주는 자신의 털 하나만 뽑으면 최고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楊子取為我,拔一毛而利天下,不為也。墨子兼愛,摩頂放踵利天下,為之。子莫執中,執中為近之,執中無權,猶執一也。所惡執一者,為其賊道也,舉一而廢百也。

양자는 ‘위아’를 취하여, 털 한 올을 뽑으면 천하가 이로워지는데, 하지 않는다. 묵자의 겸애는,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세상에 이롭다면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 자막이 중간을 잡으니, 중간을 잡은 것이 도에 가까운 것 같지만, 중간을 고집하여 저울질하지 않으니, 한쪽만 고집하는 것과 같다. 한쪽만 고집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도를 해치기 때문이고, 한 가지를 들어 백 가지를 버린 것이다.
《맹자》〈진심(盡心)〉

“양주는 위아를 주장했다. 이는 군주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묵적은 겸애를 주장했다. 이는 어버이를 부정한 것이다. ‘무부무군’을 주장한 것은 금수와 같은 것이다.”
《맹자》〈등문공하(滕文公下)〉

(1)은 맹자의 해석으로, “楊子取爲我,拔一毛而利天下,不爲也” 와 “楊氏爲我, 是無君也”의 관점에서 ‘위아’를 비판한다. 앞 구절에서 양주는 몹시위아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위아’를 극단적 이기주의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뒤의 구절은 맹자에게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와 같은 개인주의(혹은 이기주의)는 궁극적으로 군주제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맹자는 당시의 분열(무질서)이 성왕의 다스림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기에, 군주를 무시하는 위아무군(爲我無君)는 신하로서 정치를 부정하여 사회정치적 무질서를 야기하고 공자의 인륜이 실현되는 것을 막는 비판 대상이었다. 이를 보면, 맹자의 비판 초점이 위아보다는 무군에 더 맞춰져 있고 위아를 사회무질서를 만드는 원인으로 비판한 것을 알 수 있다.

古之人損一毫利天下,不與也;悉天下奉一身,不取也。人人不損一毫,人人不利天下,天下治矣。

옛날 사람들은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여도 뽑아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신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며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열자》〈양주〉

위의 양주의 언급을 보면, “털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되어도 주지 않고, 천하를 맡긴다 해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털 한 올을 뽑지 않고 또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안정된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양주의 위아가 자기의 인격과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만 마다한 것이 아니라, 남을 희생시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도 마다한 것이다. 또한 사회를 만족시키기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도 옳지 않고, 개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회를 희생하는 것도 옳지 않기에 개인이나 사회 모두 손해를 보지 않고, 희생되지 않아야 “천하가 크게 다스려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양주는 이렇게 자신을 존중하고 타일을 침해하지 않는다면(즉, 모두가 위아하면), 사회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물중생

‘경물중생’은 외물은 가볍고 생명이 중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김을 의미한다. 양주의 사상이 위아부터 시작되어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나아갈 때, 나 이외의 것들보다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경물중생으로 이어진다.

외물과 생명

'경물중생'에서 ‘물’은 외물을 뜻하고, ‘생’은 생명을 뜻한다. 외물이라는 것은 나를 제외한, 나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생명은 나 자신의 생명,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에서의 생명을 말한다. 양주는 생명이 외물보다 훨씬 중하다고 보고, 외물을 위해, 혹은 외물에 의해 생명에 해를 끼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주의 일모불발(一毛不拔)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명이고 아무리 세상에 이익을 준다고 할지라도 외물은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라면 그것이 털 한 올이라 해도 뽑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생을 중요시 하는 태도는 물론 개인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타인의 생을 존중하는 태도로도 나아간다. 즉, 생명 자체에 대한 존중으로 가는 것이다. 나의 생명이 소중한만큼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나만 희생하지 않으면 된다거나 나는 희생하지 않을 것이니 타인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기에 누군가가 희생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외물은 앞서 말한 모든 것이란 의미에서도 특히 장수, 사회적 명예와 지위, 물질적 재화 혹은 인, 의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때문에 이런 외물을 욕구한다면 자신의 생명 즉, 삶, 목숨, 본성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보았다.

경물중생과 전생보진

“去子體之一毛,以濟一世,不汝爲之乎?”楊子曰: “世因非一毛之所濟.”禽子曰: “假濟,爲之乎?”楊子弗應. 禽子出,語孟孫陽. 孟孫 陽曰: “子不達夫子之心,吾請言之. 有侵苦肌膚獲萬金者,若爲之夫?”曰: “爲之.” 孟孫陽曰: “有斷若一節得一國. 子爲之乎?”禽子黙然有閒. 孟孫陽曰: “一毛微於 肌膚,肌膚微於一節,省矣. 然則積一毛以成肌膚,積肌膚以成一節. 一毛固一體萬 分中之一物,奈何輕之乎?

“선생의 털 한 올을 뽑아 천하의 도를 도울 수 있다면 하시겠습니까?” 양주가 말했다. “세상의 도는 털 한 올로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자 금자가 다시 물었다. “만약 구제할 수 있다면 하실 수 있겠습니까?” 양주는 그의 질문을 아예 무시했다. 금자가 문밖으로 나간 후 양주의 제자인 맹손양을 만나 양주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맹손양이 말했다. “그대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내가 선생님 대신 말해보지요. 만약 어떤 이가 1만 전을 주면서 당신을 한 대 때리겠다고 한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물론 하지요.” 금자가 이렇게 답하자 다시 맹손양이 물었다. “누군가 나라를 주면서 당신의 다리 하나를 자르겠다고 한다면 하시겠습니까?” 금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대자 맹손양이 다시 말했다. “피부와 비교하면 털은 하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사지와 비교하면 피부 역시 하찮은 것이지요. 이런 이치는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털이 없다면 피부도 있을 수 없고, 피부가 없다면 사지도 없게 됩니다. 한 올의 털만으로 본다면 전체 몸에서 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작고 하찮은 것이긴 하지만 어찌 가볍게 볼 수 있겠습니까?”
《열자》<양주>

다음 장면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애초에 털 한 올로 세상의 이익을 준다는 것은 가정일 뿐이기 때문에, 털 한 올이라는 전례를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나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점에서 털 한 올이 된다면 팔 하나, 다리 하나도 가능할 것이기에 털 한 올도 이익을 위해 희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부분적인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결국은 생을 중시하는 양주의 사상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생을 중시한다는 것은, 세상의 외물보다 나 자신을 더 우선순위에 놓는 것을 의미하고, 이 뜻에서 경물중생이 나온다. 양주는 인간의 본성은 생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본성을 중시해야만 사람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전생보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경물중생’ 이것은 곧 자신을 귀히 여기는 것,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이어지고 같은 의미이자 더 큰 목적인 ‘전생보진’ 즉, 삶을 온전히 하여 진리를 보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양주의 정치관

古之人損一毫利天下,不與也;悉天下奉一身,不取也。人人不損一毫,人人不利天下,天下治矣。

옛날 사람들은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여도 뽑아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신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며 천하는 다스려질 것이다.
《열자》<양주>

이 구절의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자면, 사회는 다양한 ‘아’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가 없고, 침략이 없고, 서로에게 주는 것도 없다면, 권력을 훔치고 권력을 장악하는 사람이 없어, 개인이나 사회 모두 손해를 보지 않고 어느 쪽도 희생되지 않아야 비로소 “천하가 크게 다스려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아닌 서로의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개개인의 삶, 생명이 보장되는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양주는 자신이 살던 시기, 각 국의 제후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백성을 몰아 왕족의 이익을 수호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며 천하를 다스리는 도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사회의 족쇄를 반대했기 때문에 정치에서 권력 독점의 패도에도 반대했으며, "천하는 공공의 것이다(천하위공,天下爲公)"와 "천하의 몸과 천하의 것을 공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여 공정성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개인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말하며 모든 외부의 도덕적, 윤리적 법률, 법률 및 형법은 개인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정부는 상징적 인 것일 뿐이며 개인에게 지나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양주의 정치적 견해는 자유롭고 현대 자유주의와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주에 대한 평가

맹자(유교)

자공은 ‘실’을 국리를 포함한 현실적인 재리로 파악한 데 반해 양주는 몸을 편히 하고 삶을 즐겁게 하는 낙생일신으로 파악했다. ‘실’에 대한 이런 해석상의 차이는 도가와 유가가 갈리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유가가 선진 도가인 양주를 비판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맹자가 대표적이다.

양주는 자기만을 위하는(爲我) 입장을 취하여 털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여도 하지 않는다.
《맹자》〈진심상(盡心上)〉

맹자는 일모불발을 근거로 양주의 위아를 극단적 이기주의라 칭하며 맹열히 비판하였다.

“양주는 위아를 주장했다. 이는 군주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묵적은 겸애를 주장했다. 이는 어버이를 부정한 것이다. ‘무부무군’을 주장한 것은 금수와 같은 것이다.”
《맹자》〈滕文公下〉

특히 양주의 위아와 묵자의 겸애를 주장하는 것은 금수와 같다는 위와 같은 주장을 펼쳤는데, 이런 주장은 당시 맹자가 ‘공학’의 적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소명이 유가의 성세를 복원시키는 데 있다고 판단하에서 나왔다. 한편으론 이런 양묵의 주장들이 궁극적으로 영주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맹자는 양주와 묵가의 학문을 제압키 위한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는 고심 끝에 나름대로 해법을 찾아냈다.
《맹자》〈진심하(盡心下)〉에 그 해법이 제시되어 있다.

“지금 양주 및 묵가와 논쟁하는 것은 마치 달아난 돼지를 쫓다가 돼지가 이미 돼지우리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다시 들어가 돼지 발을 얽매는 것과 같다.”
《맹자》〈진심하(盡心下)〉

그의 묵가 및 양주에 대한 비판은 묵가 및 양주의 무리를 돼지 무리로 폄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외견상 그 강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묵가와 양주와의 논쟁을 ‘돼지 쫓기’에 비유한 것은 사실 일세를 풍미하고 있는 묵가 및 양주와의 직접적인 논쟁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그는 묵가 및 양주의 무리를 ‘돼지 무리’로 폄하하면서 정신적인 만족을 얻는 방식으로 대처했을 공산이 크다. 이는 당시 묵가 및 양주의 세력이 얼마나 성대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맹자는 양묵을 비판하는 와중에 그래도 묵자보다는 양주가 유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逃墨必歸於楊,逃楊必歸於儒」

묵자를 벗어나면 반드시 양자에 속하고, 양자에게 벗어나면 유가에 속한다.
《맹자》〈진심 장구 하(盡心 章句 下)〉

맹자가 위와 같은 말을 하자, 많은 후손이 맹자가 「양주는 가깝고 묵가는 멀다」 라고 의미로 말했다고 생각하여, 양주의 사상이 유가의 사상에 더 가깝다고 받아들였다.

맹자 이외의 유가에서도 양주를 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벼슬하지 않음은 의로움이 없는 것이다. 장유의 예도 폐할 수 없는데 어떻게 군신 간의 예를 폐할 수 있는가? [벼슬을 하지 않음은] 자기 한 몸 깨끗하게 하려고 대륜을 어지럽히는 일이다. 군자가 벼슬함은 자신의 의로움을 행하는 것이다.
《논어》〈미자(微子)〉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 의로움이 없다고 비판한 것으로, 이것은 위의 맹자가 양주를 비판한 근거와 일맥상통하며 이러한 논어의 말이 유가가 양주를 비판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또한 양주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 유가의 비판을 받은 바가 있다.

순임금, 우임금, 주공, 공자, 이 네 성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살아서는 하루도 즐거움이 없었지만 죽어서 대대로 이어지는 명성(名)을 얻었다. 명성이란 진실로 취할 바가 못 된다. 비록 [훌륭하다고] 칭찬하여 알지 못하고, 비록 상을 주어도 알지 못하니, [그들은 이미 죽어서] 나무의 그루나 흙덩어리와 같기 때문이다.
《열자》〈양주〉

유가에서 말하는 성군과 폭군을 정반대로 뒤집어 평가한 양주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이 ‘사명취실(捨名取實)’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후대의 유가는 이를 근거로 양주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으나 ‘실’을 낙생으로 풀이하면 ‘명’을 낙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허예(虛譽)’로 간주한 양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논리 전개일 수 있다.


도가

양주는 도가가 발전하던 시기의 선진 도가 중 한 명으로 당시 도가들마다 약간의 의견 차이를 보인다.

노자, 장자보다 더 이전에 도가의 ‘전도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는 지경이라 적절한 처방이 없으니 관심을 가질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예로 접여, 장저, 걸익이 있다.

어느 날 ‘광인’ 접여(도가의 전도가)가 공자 앞을 지나며 노래를 불렀다. 공자 앞을 지나며 노래를 부른 것은 당연히 공자더러 들으라는 뜻이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하여 이처럼 덕이 쇠했는가? 지나간 일은 구제할 수 없으나 하지 않은 일은 가히 따를 수 있도다. 그만두시게나. 그만두시게나! 요즘 정치를 하는 이들은 위험하기 그지없네.”
《논어》〈미자〉

접여는 요즘 세상은 더 이상 구제할 수 없고, 따라서 공자는 봉황이라고 할 만하나, 불운하여 털 다 빠진 봉황으로 닭만도 못한 신세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정권을 가진 이들은 이제 곧 망하고 말 텐데, 동분서주하며 그들을 찾아간들 소용이 없다며 이제 그만두라고 말하고 있다.

장저와 걸익이 함께 밭에 씨를 뿌리고 있는데 공자가 그곳을 지나면서 자로에게 길을 묻도록 했다.
장저: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이가 누군가?
자로: 공구입니다.
장저: 노나라 사람 공구란 말이오?
자로: 그렇습니다.
장저: 그는 분명 나루터를 알 것이오.

자로가 걸익에게 물었다.

걸익: 너는 누구인가?
자로: 저는 중유입니다.
걸익: 노나라 공구의 제자인가?
자로: 그렇습니다.
걸익: 지금 천하는 도도하여 큰물이 난 것과 같으니 그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논어》〈미자〉

장저의 말은 공자가 이미 천하의 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나를 찾아와 물을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공자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 걸익의 말은 여기에 더해 사회가 이미 썩어 문드러져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쁜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공자 같은 이를 따르지 말고 자신들처럼 아예 사회와 어울리지 않고자 하는 이를 따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이것은 천하에 흥망에 관심을 가지고 ‘위아주의’를 바탕으로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양주와는 천하의 흥망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 차이가 있다. 장저와 걸익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아 사회에 있지 말라 했지만, 양주는 위아주의를 내세우며 개인이나 사회 모두 손해를 보지 않고 어느 쪽도 희생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위하며 ‘생’을 중요시하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질 것이라 보았다. 이것은 천하가 흥할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양주의 의견은 당시 유가가 천하가 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과 유사하다.

양주와 동시대에 혹은 이후에 나타난 도가사상가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육자(초나라의 시조)가 말했다.“명예를 버린 사람은 근심이 없다.”
그러나 노자는 이같이 말했다.“명예는 실리의 빈객이다.”
허다한 사람이 명예를 좇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만일 명예가 본래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빈객으로 삼을 수조차 없는 것일까. 오늘날 명예가 있으면 곧 존귀하고 영예롭고, 없으면 비천하고 굴욕적이다. 존귀함과 명예로움은 편함과 즐거움을, 비천함과 굴욕은 근심과 고통을 뜻한다. 근심과 고통은 천성을 해치고, 편함과 즐거움은 천성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로써 명예는 실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명예를 어떻게 능히 버리거나 실리의 빈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일까. 오직 수명누실(명예를 사수하여 실리에 누를 끼침)을 혐오하는 길뿐이다. ‘수명누실’의 자세로는 사물의 위망만 애틋해할 뿐 막상 이를 구할 수는 없다. 이런 걱정이 어찌 편함, 즐거움과 근심, 고통 사이에만 존재하겠는가.
《열자》〈양주〉

여기서 열자가 육자의 ‘명예를 버림’을 대전제로 삼으면서도 노자의 ‘명예는 실리의 빈객’을 언급한 것은 ‘명’과 ‘실’의 밀접한 상호관련성을 인식한 것이다. 열자는 노자의 언급을 토대로 최상의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수명누실’에 대한 철저한 부인이다. 이는 명예를 사수하기 위해 실리에 누를 끼치는 것만 아니라면 명예를 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노자의 ‘명예는 실리의 빈객’ 입장 자체가 실리를 주인으로 삼고 명예를 손님으로 껴안는 소위 ‘실주명빈’의 자세를 권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공이 ‘명실겸취’의 입장에서 ‘수명위화’를 추구한 것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는 셈이다. 이는 옥복미색에 대한 추구는 긍정하면서도 ‘수명위화’에 대한 추구는 비판적으로 바라본 양주의 입장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열자를 비롯한 많은 도가사상가들이 양주의 ‘사명실취’ 입장에 공명해 그의 위아사상을 깊이 흡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열자는 이 대목에서 ‘실주명빈’의 입장을 드러냄으로써 양주와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장자는 양주의 ‘사명실취’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진흙 속의 꼬리를 끄는 거북이’를 자처했다. 이를 통해 열자는 장자와 달리 노자와 마찬가지로 현실정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초기 도가사상가들의 기본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후대의 평가

사라진 양주
묵자와 더불어 일세를 풍미한 양주의 세력은 전국시대의 종료와 함께 일거에 사라지고 말았다. 묵가사상과 양주사상 모두 더 이상 후세로 계승되지 못하고 이내 소멸되고 만 것이다. 사실상 별반 특단의 대책을 강구치 못한 맹자의 ‘고군분투’로 인해 그리 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시에 사라진 배경과 관련해 아직도 만족할 만한 분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대일통의 시기에 겸애를 내세운 묵가집단이 반체제집단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고, 양주의 위아주의가 국가통치의 근간을 위협하는 반국가주의 사상으로 각인된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소설 속의 양주
이로 인해 양주의 ‘위아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열자》〈양주편〉은 중국철학사에서 비주류 혹은 이단으로 취급되어 오랫동안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이러한 모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현대중국어로 양주에 대한 이미지로 남아 소설에 등장한다.

《儒林外史》第四十一回:「都像你這一毛不拔,我們喝西北風!」即使到了近代,這句成語仍然經常在現代漢語中出現

유림외사(儒林外史)》 제41회: 「모두 당신같이 ‘일모불발’하니, 우리가 굶주린다!」

청나라 때 쓰인 《유림회사》라는 소설에서 허위와 유림세계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일모불발’은 여기서 이런 허위와 유림세계와 같이 이기적의 행위를 묘사한다. 이것은 《열자》〈양주〉에서 맹손양이 말한 ‘일모불발’의 의미에서 ‘일모발’이 허위와 유림세계를 나타낸다고 봤을 때 원래의 뜻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 수 있다.

《文明小史》說:「楊是一毛不拔的,也只會混在裡面,白吃白喝,只要對己有利,要其命也可,只要對人有利,要其毛也不。」

문명소사(文明小史)》: 「양주는 털 한 올도 뽑지 않고, 그 안에 섞여, 공짜로 먹고 마시니, 자신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그 목숨도 괜찮고, 남에게 유리하면 털도 안 준다.」

이 소설은 ‘일모불발’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또 다른 예로 관료사회의 부패와 무능을 백성의 우둔함을 ‘일모불발’에 빗대고 있다. 원래 양주의 사상에 비춰보았을 때 ‘개인이나 사회 모두 손해를 보지 않고 어느 쪽도 희생되지 않은 상태에서 털 하나도 소중히 여겨 나의 몸을 소중히 하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진다’라고 생각해야 맞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며 뜻이 왜곡되어 쓰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위진시대에 다시 주목
한나라의 대일통을 거치면서 유가가 주를 이루고 도가는 축소되는 과정에서 양주의 사상이 항상 비판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위진 시기에 양주가 다시 주목받는 시기가 나타난다. 위진남북조시대는 해마다 전쟁이 일어나고 기황이 겹치는 등 아침에 저녁을 보장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사인(士人)들은 오직 천성에 의지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한제국 이래 인의를 세운 유가의 명교는 인간의 자연스런 성정에 대한 속박으로 인식되었다. 여기서 개인이익의 보호와 독립인격을 강조하는 양주의 ‘향락주의’가 크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중국 위키백과 – 양주
중국 위키백과 – 양주학설
중국 위키백과 – 일모불발
신동준,《열자론》, 학오재, 2015
이중톈,《백가쟁명》, 심규호 역, 에버리지홀딩스, 2010
시게자와 도시로,《역사속에 살아있는 중국사상》, 이혜경 역, 예문서원, 2003
장자,《장자》, 송지영 역, 신원문화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