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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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의제(간체: 义帝, 번체: 義帝)는 (秦) 말기에 반진(秦) 세력의 맹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한 (楚)의 왕이다. 성(姓)은 미(芈), 씨(氏)는 웅(熊), 이름은 심(心)으로 미심(芈心) 또는 웅심(熊心)이라고 불렸다. 그는 초 회왕의 손자로 초나라 백성들이 그의 조부 초 회왕을 애도하여, 조부의 왕명인 회왕이라는 왕명을 사용하였고, 후에는 의제로 개칭하였다. 그의 출생 시기는 불분명하며 진이 멸망한 후에 항우에 의해 살해되어 기원전 205년에 사망하였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08년 ~ 기원전 206년으로 2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에도 항우와 유방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항우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생애

진시황 24년에 진나라에 의해 초(楚)나라가 멸망한 후 웅심은 시골 마을에서 양치기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옹심이 회왕이 되기까지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이 대택향에서 반진(秦)을 일으켜 진현을 빼앗은 후 국호를 ‘장초’라 하며 진승은 자신을 초의 왕이라 칭하였다. 이에 6국의 귀족들도 전국 각지에서 봉기를 하였는데 초 말기의 명장 항량과 조카인 항우는 회계 군수를 죽이고 회계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향량이 회계군을 접수하고 항우는 그의 부장이 되었다.

기원전 208년, 진의 장군 장한이 이끄는 군사들에 의해 패배하였다. 항량은 진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별장들을 설현에 불러모아 대사를 의논하였다. 거소 출신인 범증은 좋은 계책이 있다며 항량에게 유세하였다.

“진섭의 패배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진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킬 때 초는 전혀 죄가 없었습니다. 회왕이 진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뒤로 초나라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회왕을 가엾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 남공이 ‘초에 세 집만 남았더라도 진을 멸망시킬 나라는 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진섭이 맨 먼저 봉기하였으나 초의 후예를 세우지 않고 자립하였기 때문에 그 위세가 길지 못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군계서 강동에 일어나니, 초의 장수들이 벌떼 같이 다투어 군에 귀의하는 것은 군이 대대로 초의 장수로서 다시 초의 후손을 세울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항량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양치기를 생업으로 삼으며 생활하는 초 회왕의 손자 옹심을 찾아 그를 초 회왕(懷王)으로 세우고 우이에 도읍하였다. 항량은 스스로를 무신군(武信君)이라 칭하였다.

항량 장한의 군대에 패하다

몇 달 뒤 항량은 군사를 이끌고 항보를 공격하고 제의 전영, 사마용저 군대와 함께 동아를 구원하러 나서서 진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항량이 동아 일대의 진군을 무찌르고 그들을 계속 추격하였다. 항량은 동아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정도를 평정할 때까지 한 차례 더 진의 군대를 격하였고 항우가 이유의 목을 베어 진을 경시하며 교만한 태도를 보였다. 걱정이 된 송의는 항량에게 간언했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장수가 교만해지고 병졸들이 나태해지면 패합니다. 지금 병졸들이 다소 나태해진데다 진의 군대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군을 위하는 마음에서 신은 그것이 두렵습니다.“

항량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송의를 제에 사신으로 보냈다.

송의는 항량을 만나러 가는 제의 사신 고릉군을 만나게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신은 무신군의 군대가 분명 패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공께서 천천히 가시면 죽음을 면할 것이고, 급히 가신다면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진은 모든 병사를 총동원하여 장한의 군대를 보강하고 초의 군대를 공격하여 정도에서 대패하였고 항량은 전사하였다.

회왕, 도읍을 옮기다

회왕은 초의 군대가 정도에서 격파당하자 겁을 먹고 우이를 떠나 팽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항우와 여신의 군대를 합쳐 직접 통솔하였는데 여신을 사도로 삼고 그의 부친 여청을 영윤으로 삼았으며 유방을 탕군의 군장으로 삼아 무안후에 봉하여 탕군의 군대를 거느리게 하였다.그리고 진의 도읍인 함양에 먼저 입성하는 자를 진의 영역인 한중의 왕으로 봉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기원전 207년, 회왕은 전에 송의를 만났던 제의 사신 고릉군의 말을 전해듣고 송의를 상장군에 임명하였다. 항우는 노공이자 차장이 되었고 범증은 말장이 되어 조를 구원하기로 하였다. 여러 별장들은 모두 송의에게 소속되어 경자관군이라 불렸다. 그리하여 군대는 안양으로 행군하였는데 46일 동안이나 머물면서 진격하지 않았다. 이에 항우는 새벽에 상장군 송의의 막사를 찾아가 송의의 머리를 베고 군중을 향해 군령을 내렸다.

"송의는 제와 더불어 초를 배신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에 초왕께서 내게 은밀히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여러 장수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모두 복종하였다.

"처음 초를 세운 것도 장군의 집안이고, 지금 난신을 죽인 것도 장군이십니다."

서로 상의하여 항우를 상장군 대리로 세우고, 사람을 보내어 송의의 아들을 제까지 추격하여 죽였다. 그러고는 환초를 보내여 회왕에게 보고하자, 회왕은 항우를 상장군으로 삼고 당양군과 포장군 등을 모두 항우에 속하게 하였다. 항우는 황하를 건너 거록에서 진의 군대를 대파하고 장한을 항복시켰다.

항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회왕

기원전 206년, 유방이 먼저 한중에 진입하여 진왕과 자영의 항복을 받아 함양에 입성하여 진 왕조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뒤늦게 함양에 도착한 항우는 자영을 죽이고 궁궐을 불태우며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였다. 그는 회왕이 그를 왕으로 봉하기를 원했지만, 회왕의 대답은 약속대로였다. 그러자 항우는 스스로를 서초 패왕이라 하고, 항우가 회왕을 의제(義帝)로 높이면서 강남으로 쫓아버렸다. 항우는 팽성을 도읍으로 하고 18명의 왕에 대한 분봉을 시행함으로써 천하 대권을 장악하였고 유방은 한왕으로 임명되어 외지로 밀려났다. 기원전 205년, 의제는 침현으로 가는 도중에 항우가 파견한 병사들에게 살해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소설 초한지 속 의제

머슴살이에서 왕위에 위임하기까지

초나라를 재건하려는 항량이 초나라의 마지막 임금, 부추의 자손인 미심을 왕좌에 올리기 위해 자신의 부하들을 동원하여 미심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초나라의 마지막 임금 부추의 자손이 어디엔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진시황 이십사년에 초나라가 망했으니 그동안 십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행적은 묘연하지만 못 찾을 것도 없었다. 이같이 의논한끝에 급기야 종리매에게 초왕의 후손을 찾아오라는 항량의 명이 내려졌다.[1]

항량의 부하들은 강가에 위치한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서 촌장의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 미심을 발견하여 미심과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귀환하였다. 항량은 미심이 도착하자마자 즉위식을 진행하였고 기원전 208년 미심은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종리매는 말을 세 마리 더 구해서 행장을 꾸리기 무섭게 출발하였다.부인과 동자, 촌장도 항장군의 영문으로 향했다.

항량과 범증의 기쁨은 컸다. 
즉시 택일하여 미심 소년의 즉위식을 거행했다.
며칠 전까지 촌장집에서 양치기 머슴살이 하던 동자가 하루아침에 초나라의 회왕이 된 것이다.[2]

왜 왕명이 회왕인가?

성(姓)은 미(芈), 씨(氏)는 웅(熊),이름은 괴(槐)로 미괴(羋槐) 혹은 웅괴(熊槐)인 초(楚)나라 38대 국군 22대 왕, 회왕이라고 불렸던 사람의 손자가 바로 미심이다.

그의 조부가 회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자를 '회왕'이라 한 것은 망해버린 왕실의 후손이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더 확실하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3]

유방과의 첫 만남

즉위식이 있고 이틀 후, 회왕은 대군을 이끌고 회남땅을 출발하게되는데 회하강가에서 유방의 군대를 마주쳤다. 유방은 회왕과 함께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항량이 이끄는 군대에 합류하고 싶다고 청원하였다. 회왕의 신하 범증은 유방을 보고 그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고 유방에게서 왕기를 느꼈다.

범증은 회왕과 무신군 뒤에 잇대어서 수레를 타고 따라가다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심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이상히 생각하면서 그대로 행진했다.

가까이 올수록 보랏빛 나는 기운이 더욱 뚜렷했다.

'왕기가 분명하다! 저 가운데 반드시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범증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마주보고 오던 행렬 가운데로부터 한 사람이 말을 달려 뛰어나와 회왕과 무신군 앞에 이르러 인사를 했다. 용준용안(우뚝한 코와 용의 얼굴, 곧 임금의 얼굴) 요미순목(요임금의 눈썹과 순임금의 눈)이라는 말이 있지만 범증의 눈에는 이사람의 얼굴이 보통 인간의 얼굴에서 뛰어나게 잘생긴 인상으로 보였다. 범증은 고개를 수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잘못했다! 초나라에 붙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는 이렇게 후회했다.[4]

항우는 동쪽으로 유방은 서쪽으로

항우가 회왕에게 찾아와 진나라를 공격하자는 청을 하고 회왕은 유방과 항우를 필두로 두 개의 군대로 나누어 동서로 진군시키려는 계획을 말하였다. 그는 유방과 항우에게 함양에 먼저 가는 사람이 왕이되고 늦게 도착한 사람이 신하가 되라는 명을 내렸다. 유방과 항우는 명을 받아들이고 진나라의 군대를 향해 진군하였다.

누가 동서로갈지 결정하지 못하는 와중에 제비뽑기로 길을 택하게되고 
회왕은 유방과 항우에게 바램을 말한다.
"경들은, 진의 이세가 시황의 무도보다도 더욱 심하게 흉악하므로
나를 초왕으로 세우고 민심을 거두려고 하는 줄 아오마는, 
나는 나이도 어리고 몸도 약하고 재주도 없고..."
회왕은 잠깐 동안 말을 멈추고 있다가 다시 계속했다.
"이제 경들이 동서로 진격하는 데 거리는 같다하니 먼저 함양에 들어가는사람이 왕이 되고,다음에 들어가는 사람이 신하가 되도록 하시오.
반드시 이같이 실행하기 바라오. 
그런 후에 천하가 안정되거든 그때 나를 한가한 땅에서 책이나 보면서 몸을 보존하게 해주기 바라오." [5]

관련 고사성어

진퇴유곡(進退維谷)

수이성을 수도를 정한 후, 진나라를 토벌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도중에 진나라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진나라의 승상 조고가 장한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초나라의 군사를 전멸시키라는 명을 내렸지만 장한은 참패를 하고 후퇴하였다. 하지만 장한은 필히 초나라의 군대가 방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항우는 경솔하게 대적할 장수가 아니니 증원병이 도착하기까지 대적해 싸우지 않고 항우의 군사가 교만해지고 마음놓고 있을 때 승부를 결정하리라고 장한은 계획을 세웠다.[6]

장한의 예상대로 초나라의 군대는 장한의 군대를 얕보게 되었다. 초나라의 대장군인 항량은 진나라의 성문앞에 진영을 치고난 후 술을 마시며 방심하다가 진군의 기습에 당하여 항량은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듣은 회왕은 한탄하고 비통해 하였다.항량의 목을 베게되어 진나라의 군대는 조나라를 향했고 조나라의 왕 헐은 초나라에 사신을보내어 도움을 요청한다.

회왕은 대장군으로 송의를, 부장군으로 항우를 임명하고 진나라의 군대를 토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대장군 송의는 부하들에게 하염없이 대기라하는 지시만 내릴 뿐 병사들이 굶어 죽거나 전의를 상실하게 되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항우는 이런 송의의 명령에 항의하지만 송의는 명령에 따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항우는 자신의 부하로부터 송의가 송의의 아들을 제나라에보내어 출세시키고 자신도 제나라에서 재상이 되려고 한다는 음모를 듣게 되고, 단칼에 송의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 후, 자신의 부하들을 동원하여 송의의 아들 또한 죽이고 회왕에게 보고를 하여 항우는 대장군으로 임명받았다.

대장군이 된 즉시 항우는 진군을 토벌하러 나섰다. 진나라의 장한은 항우에게 대적할 계획을 세웠지만 너무나도 뛰어난 항우의 무술실력과 무력에 의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본진으로 도망갔다. 그는 자신의 부하인 사마흔에게 승상 고조가 배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나라에 돌아가게되도 죽고, 항우에게 잡혀도 죽는다는 신세를 한탄하다가 결국 항우에게 항복하고 항우의 군대에 합류하였다.

"진퇴유곡(進退維谷: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이 궁지에 몰려있음)이라더니 나야말로 그 꼴이 되었구나!"

장한은 길게 탄식했다. 항우는 멀지 않은 곳까지 추격해 와 있다. 강적을 막을 길이 없어 구원병을 속히 파견해 달라는 급사를 여러 번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도리어 패전한 책임을 씌워서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니 세상에 조고 같은 간신이 또 어디 있으랴. 장한은 분하고 난처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7]

관인후덕(寬仁厚德)

회왕은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귀환한 항우를 위해 큰 잔치를 열어준다. 잔치에서 회왕을 중앙으로, 항우와 그의 부하장수들을 측면에 참석시키고 그 반대편에는 유방과 유방의 부하장수들을 참석시켰다. 회왕은 항우의 공이 대단하지만 유방에 대한 신뢰가 더 두터웠다.

우는 도산에 있는 우왕묘에서 오천 근이나 되는 돌솥을 공깃돌 같이 들어 보인 힘센 장사일 뿐 아니라, 장한과 접전할 때에 사흘 동안에 아홉 번이나 대전하여 연전연승한 용맹이 있었다. 이같이 항우는 당시에 당할 사람이 없는 기운 센 장수이기 때문에 부하들이 많이 생겼지만, 유방의 부하는 그 후로 저절로 조금씩 증가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회왕은 어린나이이지만 항우보다 유방이 훨씬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패공은 장자(長者)야."

회왕은 유방을 관인후덕(寬仁厚德: 마음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덕이 있음)한 장자라고 인정하고 속마음으로 더 믿고 기대했다. [8]

참고문헌

  • 바이두 문서 义帝
  • 중국어위키 義帝
  • 사마천, 『완역 사기 본기 2』, 김영수 역, 알마, 2012.
  • 사마천, 『사기 본기』, 김원중 역, 민음사, 2015.
  • 사마천, 『사기 세가, 김원중 역, 민음사, 2015.
  •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각주

  1.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30.
  2.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32.
  3.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32.
  4.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34.
  5.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52.
  6.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36.
  7.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36.
  8. 신윤석, 초한지 2, 붐북, 2012, 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