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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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혜문왕(惠文王)
본명 영사(嬴驷)
출생 BC 356
사망 BC 311
국적 진(秦)
활동 기간 BC 337~311
전임자 진 효공
후임자 진 무공


진혜왕(秦惠王)은 진혜문왕(秦惠文王)이라고도 부른다. 전국 시대 (秦)나라의 국군(國君). 이름은 사(駟)고, 진효공(秦孝公)의 아들이다. 기원전 338년 진효공이 죽고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처음에는 혜문군으로 불리다 후에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혜문 27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혜문(惠文)이다.

재위 기간

초기

기원전 338년 진효공이 죽고 19세의 태자 영사(嬴驷)가 왕위를 계승했다.
혜문군 원년, 초나라, 한나라, 조나라, 촉나라 사람이 와서 알현했다.
5년 공손연(公孫衍)이 대량조(大良造)가 되어 집정했다.
6년 위나라가 음진을 바쳤고 음진의 이름을 영진으로 고쳤다.
7년 공자 앙이 위나라와 싸워 그 장수 용가를 포로로 잡고 8만명의 머리를 베었다.
8년 위나라가 하서 땅을 바쳤다.
9년 하수를 건너 분음과 피지를 얻었다. 위나라 왕과 응에서 회맹했다. 초를 포위하여 항복시켰다.

상앙과 혜문왕

즉위한 초에 종실(宗室)과 원한이 많았던 상앙(商鞅)을 주살(誅殺)했다. 상앙이 처음 진나라를 위해 법령을 펼칠 때 태자였던 혜문왕이 금령을 어겼다. 법이 시행되려면 귀족과 왕족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상앙효공에게 태자 앞에서 솔선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자가 직접 벌을 받을 수 없었기에 혜문왕 대신 그의 스승들이었던 태부, 태사가 얼굴이나 몸에 죄명을 세기는 형벌인 묵형을 받았다. 효공이 죽고 혜문왕이 자리에 오르자 태자 시절 스승이었던 공자 건(虔)과 변법에 반대해온 원로세력들이 결탁하여 상앙이 반역을 꿈꿨다며 사실을 날조했다. 도망을 갔으나 결국 자신의 봉읍에서 무력 저항에 실패해 자신과 전 가족이 몰살당했다. 결국 수레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인 거열형에 처한 후 그 시신을 진나라를 순행하며 백성들에게 보였다.

소진을 돌려보내다

소진합종책을 시행하기 앞서 혜문왕을 찾아가 연횡설을 역설하며 10여 차례 유세했으나 혜문왕은 아래와 같이 말하고 소진을 쓰지 않았다. “깃털이 풍부하지 못한 새는 높이 날 수 없고, 문장을 이루지 못한 자는 죽이고 벌주는 일을 함부로 할 수 없으며, 도덕이 돈후하지 않은 자는 백성을 부릴 수 없고, 정치에 밝지 못한 자는 대신을 부릴 수 없다고 했소. 선생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와서 나를 가르치고자 하나 나는 후일에 배우기를 원하오.”

중기

10년 장의(張儀)을 재상으로 삼아 연횡책(連橫策)을 시행했다. 위나라가 상군의 열다섯 현을 바쳤다. 11년 의거를 현으로 삼았다. 위나라의 초성과 곡옥을 돌려주었다. 의거의 군주가 신하를 청했다. 소량의 이름을 하양으로 고쳤다. 12년 처음으로 납제한 해의 끝인 12월에 동물을 사냥하여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거행했다. 13년 4월 무오일에 위나라 군주가 왕을 칭하고, 한나라 또한 왕을 칭했다. 장의를 보내 섬현을 공격해 빼앗게 하고, 그곳 사람들을 내쫓아 위나라로 보냈다. 14년 혜문왕 원년으로 바꾸었다. 2년 장의가 제나라와 초나라의 대신과 설상에서 만났다. 3년 한나라와 위나라 태자가 조회하러 왔다. 장의가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5년 혜문왕이 순행하다가 북하에 이르렀다.

스스로 왕이라 칭하다

장의는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로 쳐들어가 포양 땅을 포위하여 빼앗았다. 하지만 장의는 혜문왕에게 포양 땅을 다시 위나라에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거기다 진나라의 공자를 위나라에 볼모로 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위나라 왕이 땅을 바치고 진나라를 섬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혜문왕이 그의 말을 받아들여 포양 땅을 돌려주고 공자 요繇를 볼모로 보냈다. 장의는 공자 요와 함께 위나라로 들어가서 그곳 양왕을 설득했다. 양왕이 그 말을 듣고 상군과 소량 땅을 진나라에 바쳤다. 장의가 위나라에서 돌아오자, 혜문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장의가 재상이 된 지 4년 만에 혜문왕은 마침내 제후의 칭호를 버리고 왕을 칭하게 되었다.

후기

7년 약지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韓)나라와 조(趙)나라, 위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등이 흉노를 거느리고 함께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는 서장 질을 보내 수어에서 싸우게 하니, 그들의 장수 신차를 포로로 잡고 조나라 공자 갈과 한나라 태자 환을 무찔러 수급 8만2000을 베었다. 8년 장의가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9년 사마조가 촉나라를 정벌해 멸망시켰다. 조나라의 중도와 서양을 정벌해 빼앗았다. 10년 한나라 태자 창이 볼모로 왔다. 한나라의 석장을 정벌하며 빼앗았다. 조나라 장수 니를 정벌하여 쳐부쉈다. 의거의 스물다섯 성을 정벌하여 빼앗았다. 11년 저리질이 위나라의 초성을 공격해 항복을 받았다. 안문에서 한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수급 1만을 베었고, 한나라 장수 서수가 달아났다. 공자 통을 촉 땅에 봉했다. 연나라 군주가 신하 자지에게 선양했다. 12년 진나라 왕이 양나라왕과 임진에서 회맹했다. 서장 질이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 장수 장을 포로로 잡았다. 장의가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13년 서장 장이 단양에서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 장수 굴개를 포로로 잡고 수급 8만을 베었다. 또 한중에서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楚)나라 한중(漢中) 땅 600리를 빼앗고, 한중군을 설치했다. 초나라가 옹지를 포위하자 진나라는 서장 질로 하여금 한나라를 돕고 동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게 했으며, 도만은 위나라를 도와 연나라를 침략했다. 14년 초나라를 정벌해 소릉을 빼앗았다. 단과 리가 신하를 칭했다. 촉 재상이 촉후를 죽이고 항복했다. 혜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무왕이 자리에 올랐다. 한나라, 위나라, 제나라, 초나라, 원나라가 모두 진나라에 복종했다.

장의와 사마착

진나라의 서쪽에 있는 두 소국이 싸웠는데, 두 나라가 모두 진나라에 구원 요청을 하였다. 혜문왕은 촉을 치고자 하였으나 촉을 치려면 험하고 좁은 길을 가야해서 공격이 어려웠고, 한나라가 쳐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때 장의와 사마착 두 사람에게 방법을 물었다. 장의는 촉나라를 치지 말고 한나라를 먼저 치라고 했다. 사마착은 이에 반대하며 촉나라를 칠 것을 주장하였다. 혜문왕은 사마착의 의견을 듣고 촉나라를 쳐서 빼앗고 촉왕을 낮춰 후로 부르며 진장을 파견하여 그곳의 재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촉이 진에 예속되자 진나라의 땅이 넓어지고 입지도 강화되었다.

장의를 아낀 혜문왕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로 건너갔다. 그는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섬기게 한 뒤, 다른 나라도 위나라를 본받게 하면 진나라가 천하 패권을 쥘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진나라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 위나라로 가서 그곳 양왕을 섬기며 위나라 재상이 되었다. 장의는 여러 말로 위나라 양왕을 설득하여 진나라를 섬기라고 했지만, 양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혜문왕이 분노하여 군대를 출동시켜 위나라를 공격했다. 위나라는 싸움에서 져서 곡옥과 평주 땅을 잃었다. 하지만 혜문왕은 여전히 장의에게만은 극진하게 대접했다.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 혜문왕에게 연횡이 성립되었음을 알렸다. 그러자 혜문왕은 그를 다시 재상 자리에 앉혔다.

혜문왕은 위를 굴복시킨 여세를 몰아 제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제나라는 남쪽의 초나라와 동맹을 맺고 대항했다. 장의는 그들의 동맹을 깨기 위해 초나라 회왕을 찾아갔다. 제나라와의 합종을 끊고 땅 600리를 초나라에 바치기로 약속했다. 장의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회왕은 장군 굴개屈匃에게 진나라를 치게 했다. 그러나 굴개는 진나라 장수 저리자樗里子에게 패하여 8만의 군대를 잃고 전사했으며, 초나라는 단양과 한중의 땅을 빼앗겼다. 회왕은 더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진을 공격했지만, 역시 패했다. 결국 회왕은 두 성을 진나라에 떼주고 강화를 맺어야만 했다. 진나라는 이때 검중 땅을 얻으려고 검중과 무관 밖의 땅을 바꾸자고 제의했다. 초왕은 장의만 보내주면 땅을 바꾸지 않고 검중 땅을 그냥 주겠다고 했다. 혜문왕은 땅은 탐났지만 차마 장의를 보내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장의는 자진하여 초나라로 가기를 청했다. 하지만 혜문왕은 초나라 회왕이 장의에게 보복할까 염려했다. 장의는 감옥에 갇혔지만 계책으로 풀려난 후, 회왕을 설득해 초나라가 진나라와 친교를 맺도록 했다.

참고문헌

  • 사마천, 『사기본기』,민음사, 2015.
  • 박영규, 『춘추전국사』, 웅진지식하우스, 2015.
  • 홍이, 『이것이 중국의 역사다 1』, 비전비앤피,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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