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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불 취.png

吹자의 유래는 口와 으로 조성되었다. 欠자는 본래 한 사람이 입을 벌리고 공기를 배출하는 모양인데 다시 하나의 口를 더하여 입을 사용하여 숨을 내쉬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吹의 본래 뜻은 “입술을 모아서 힘껏 공기를 배출하는 것”이다.
자연계 공기의 흐름도 吹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그 예로는 风吹雨打(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아무생각 없이 함부로 지껄이고(信口开河) 말도 안 되는 소리(胡说八道)를 하는 것은 “吹牛” 혹은 “吹牛皮”라고 불린다.

상나라 시대 오락활동과 관련된 해석도 있다. 음악과 관련된 상나라 문자 가운데서 갑골문 吹자는 어떤 사람이 짧고 가느다란 악기를 불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글자의 의미로 볼 때 이 악기는 호각이나 훈과 같은 종류였을 것 이다. [1]

文化

吹와 유래가 같은 글자도 있다. 이는 (버금 차)이다.

한편, 의 윗부분은 次가 아니다. 이는 작은 점 하나가 있고 없고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次(버금 차)는 숨 쉬는 모습이다. 咨(물을 자)·姿(방자할 자)·諮(물을 자) 등은 次의 소리와 뜻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盜(훔칠 도)의 윗부분은 羨(남을 연/부러할 선)의 아랫부분과 같다. 羨(연)은 제사 때 남은 고기를 가리킨다. 盜(도)는 접시 속의 남은 고기를 훔치려고 하는 작은 도둑이 아니다. 盜(도)는 나라를 도적질하는 자이다. 그 글자에서 皿(그릇 명)의 본래는 피(血)로, 동족 간의 혈맹(血盟)을 의미한다. 곧, 盜(도)란 족맹(族盟)의 그릇에 물을 끼얹어, 맹약을 매도하여 더럽히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은 씨족을 배반하는 행위였다. 이 盜를 盜의 자형으로 적으면 그 의미를 나타낼 수가 없다. 盜(도)란 족맹으로 결속한 공동체를 버리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반체제 인물이었다. 춘추말기의 큰 도둑으로 이름이 높았던 도척(盜跖)은 부하가 수천 명이나 되고, 천하에 횡행해 제후를 두렵게 만들었다. 《시경》의 시편에 나타나는 盜는 모두 반란을 꾀한 사람들이다.[2]

그래서 盜(도)는 고대의 씨족사회가 붕괴할 때 체제로부터 이탈한 자로서 등장했다. 《좌전(左傳)》에 나오는 盜(도)는 대개 암살자 집단이다. 만일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자 盗의 경우처럼 글자의 윗부분을 次(차)로 고친다면, 부엌 그릇에 남은 음식을 향해 한숨 쉬는 불쌍한 도둑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는 작은 점 하나가 있고 없고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3]

오락활동과 관련된 어원에 대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현재 고고학적 자료 가운데서 최초로 발견된, 음악적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는 6천여년 전 절강성 여도현 하모도에서 발굴된 뼈로 만든 호각과 질나팔 훈이다. 뼈로 된 호각은 동물뼈의 속을 파내어 만든다. 이 호각이 원형 그대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잔존 조각들은 부는 구멍과 손가락을 짚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이 악기는 적어도 두 가지의 음을 낼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또 같은 시대의 서안 반파유적지에서 발굴된 질나팔 훈이 있다. 이것은 하나 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는 계량형 악기이다. 두 개의 구멍이 있는 것은 각기 입을 대는 구멍과 손가락을 짚는 구멍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이 악기의 음들은 다소 단조롭기는 했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겨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냥할 때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유인해내거나 노동할 때 어떤 리듬을 내 일을 도와주는 데 많이 사용되었을 것 같다. 이 악기들이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었든지 간에 6천년 전의 중국인들은 손가락을 짚어 소리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가락을 낼 수 있는 악기를 생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조금 후대인 산서성유적지에서 손가락으로 짚는 구멍이 두 개가 있는 질나팔 훈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마음(E)에서 라음(D)까지, 또 어떤 것은 마음(E)에서 가음(A)까지 5음계 음을 낼 수 있었다. 조금 더 후대인 감숙성 옥문(玉門) 유적지에서는 세 개의 구멍이 있는 질나팔 훈이 발견되는데, 이 구멍들로 6음 즉 현대의 7음계와 상응하는 일련의 음을 낼 수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 악기의 발성(發聲)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일정한 음을 내는 악기를 만들었는지는 알 단정할 수 없지만, 이 질나팔이 단순히 사냥만을 목적으로 제작되지 않고 의식적으로 다른 음을 낼 수 있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6]

과거 악기의 모습을 통해, 부는 방법으로 연주하는 악기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吹자는 호각과 질나팔과 같은 악기를 부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일 가능성도 있다.

  1.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353
  2. 이돈주,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 고대문화》, 태학사, 2006, pp.170-171
  3. 이돈주,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 고대문화》, 태학사, 2006, p.171
  4.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352
  5.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352
  6.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