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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의 고문자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처형이나 제의에 사용된 도끼의 형상을 단순화 시킨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사회에서 처형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부(斧)와 월(鉞)이라는 대형 도끼였다. 후한(後漢) 말의 학자 정현(鄭玄)의 주(註)에 따르면 요참형의 경우는 도끼, 기시형의 경우는 칼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서상의 해석이고 실제로는 머리를 자를 경우에도 부와 월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례로 상대(商代) 청동기에 그려진 도상에는 사람 위에 도끼를 놓고 머리 부분이 없는 인형의 형상이 있는데, 이는 인형의 머리 부분이 잘린 것을 나타낸다. 즉, 머리를 자를 때도 부와 월과 같은 대형도끼가 사용되었던 것이다.<ref> 도미야 이따루, 『유골의 증언』, 서경문화사, pp.91-92</ref> 죄인을 처형할 때 도끼를 사용하게 되면서 도끼는 왕의 재판권을 상징하게 되었고, 곧 도끼를 본뜬 글자가 왕을 표현하게 되었다.<ref>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p.47</ref>   
 
王의 고문자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처형이나 제의에 사용된 도끼의 형상을 단순화 시킨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사회에서 처형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부(斧)와 월(鉞)이라는 대형 도끼였다. 후한(後漢) 말의 학자 정현(鄭玄)의 주(註)에 따르면 요참형의 경우는 도끼, 기시형의 경우는 칼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서상의 해석이고 실제로는 머리를 자를 경우에도 부와 월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례로 상대(商代) 청동기에 그려진 도상에는 사람 위에 도끼를 놓고 머리 부분이 없는 인형의 형상이 있는데, 이는 인형의 머리 부분이 잘린 것을 나타낸다. 즉, 머리를 자를 때도 부와 월과 같은 대형도끼가 사용되었던 것이다.<ref> 도미야 이따루, 『유골의 증언』, 서경문화사, pp.91-92</ref> 죄인을 처형할 때 도끼를 사용하게 되면서 도끼는 왕의 재판권을 상징하게 되었고, 곧 도끼를 본뜬 글자가 왕을 표현하게 되었다.<ref>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p.4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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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王이 나타내는 도끼가 단순한 의례용 도구였다는 설이 있다. 중국에서는 옥으로 만든 도끼나 상감 또는 문양이 많이 장식된 비실용적인 청동제 도끼머리가 다수 발굴되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의례에 사용되던 도구였다. 王은 이 의례용 도끼의 머리 부분을 본뜬 글자인 것이다. 다만 王이 큰 도끼를 뜻하는 鉞(월)과 같은 음으로 불렸기 때문에 생긴 가차인지, 아니면 큰 도끼의 머리 부분자체가 왕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도구였기 때문에 왕을 의미하게 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ref>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p.4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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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皇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의례도구로서의 도끼는 그 윗부분에 옥돌을 박아서 장식하는데, 皇은 아마도 그 아름다움을 뜻하는 문자인 것으로 생각된다. 『설문해자』에서는 皇을 “크다[大].”라고 풀이하고, 자형에 대해서는 “自(자)의 뜻을 따른다. 自는 시작이다.”라고 했다. 『설문해자』에서는 皇을 인간 왕의 시작으로 본 것인데, 중국의 고대는 삼황(三皇)・오제(五帝)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인간 왕의 시대에 이른다고 여겨졌다. 皇의 자형에 대해서도 불[火]이 흙[土]을 비추는 모양, 王 이 땅속에 있는 불의 모양이듯이 해가 뜰 때의 모양, 왕관의 모양,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모양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皇의 자형에서 王의 윗부분은 옥으로 된 장식이나 옥이 빛나는 모양인 것은 분명하다. 皇자가 王의 자형으로부터 나왔다면 왕의 시대에 앞서 황제의 시대가 있었다는 고대사관은 문자학상으로도 부정될 것이다.<ref> 시라카와 시즈카, 『漢子의 世界』, p.9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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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 시즈카에 따르면 신이 강림하는 신 사다리[神梯(신제)]의 앞은 신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성스러운 곳으로, 신 사다리 앞에는 그 신령함과 위엄을 표시하는 옥(玉)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옥은 왕위의 상징으로서 옥좌 앞에 놓이는 도끼, 즉 월두(鉞頭)의 윗부분에도 상감(象嵌)되었다. 현재 그렇게 옥이 상감된 도끼[鉞]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옥좌의 월(鉞)은 옥 때문에 휘황찬란한 광휘를 뿜었으며, 皇(임금 황)은 그러한 광휘를 나타내는 것이다. 신 사다리의 의식은 본래 구혼을 위한 가무 모임이었으나 왕권의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ref> 시라카와 시즈카, 『漢子 백가지 이야기』, pp.74-75</ref>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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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6일 (화) 13:11 기준 최신판

語源

임금 황.png

금문의 皇자를 보면 아랫부분은 "王", 윗부분은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皇은 고대 제왕이 일종의 관모(冠帽)를 착용한 것이다. 『예기(禮記) ․ 왕제(王制)』의 "有虞氏皇而祭(유우씨는 황관(皇冠, 왕관)을 쓰고 제례를 주관했다.)"라는 기록과 같이 제왕, 삼황오제와 같은 군주, 황제 등의 의미가 새롭게 파생되었다. 皇자는 원래 황관(皇冠)을 의미했으나 관면당황(冠冕堂皇)[1]처럼 '휘황찬란하다. 화려하고 정교하다'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또한 군주라는 뜻에서 파생된 황천(皇天), 황고((皇考)처럼 '위대하다. 지극히 존귀하다" 등의 의미를 따른다.

文化

皇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王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임금 왕(王)을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을 의미하는 석 삼(三)을 하나로 꿰뚫은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이것은 갑골문의 형상을 반영하지 않고 단순히 소전의 자형을 근거로 한 해석이므로 잘못된 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왕’의 관념, 즉 왕은 천지의 질서자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설명한 점에서는 틀리지 않다.[2]

王의 고문자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처형이나 제의에 사용된 도끼의 형상을 단순화 시킨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사회에서 처형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부(斧)와 월(鉞)이라는 대형 도끼였다. 후한(後漢) 말의 학자 정현(鄭玄)의 주(註)에 따르면 요참형의 경우는 도끼, 기시형의 경우는 칼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서상의 해석이고 실제로는 머리를 자를 경우에도 부와 월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례로 상대(商代) 청동기에 그려진 도상에는 사람 위에 도끼를 놓고 머리 부분이 없는 인형의 형상이 있는데, 이는 인형의 머리 부분이 잘린 것을 나타낸다. 즉, 머리를 자를 때도 부와 월과 같은 대형도끼가 사용되었던 것이다.[3] 죄인을 처형할 때 도끼를 사용하게 되면서 도끼는 왕의 재판권을 상징하게 되었고, 곧 도끼를 본뜬 글자가 왕을 표현하게 되었다.[4]

한편으로는 王이 나타내는 도끼가 단순한 의례용 도구였다는 설이 있다. 중국에서는 옥으로 만든 도끼나 상감 또는 문양이 많이 장식된 비실용적인 청동제 도끼머리가 다수 발굴되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의례에 사용되던 도구였다. 王은 이 의례용 도끼의 머리 부분을 본뜬 글자인 것이다. 다만 王이 큰 도끼를 뜻하는 鉞(월)과 같은 음으로 불렸기 때문에 생긴 가차인지, 아니면 큰 도끼의 머리 부분자체가 왕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도구였기 때문에 왕을 의미하게 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5]

그렇다면 皇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의례도구로서의 도끼는 그 윗부분에 옥돌을 박아서 장식하는데, 皇은 아마도 그 아름다움을 뜻하는 문자인 것으로 생각된다. 『설문해자』에서는 皇을 “크다[大].”라고 풀이하고, 자형에 대해서는 “自(자)의 뜻을 따른다. 自는 시작이다.”라고 했다. 『설문해자』에서는 皇을 인간 왕의 시작으로 본 것인데, 중국의 고대는 삼황(三皇)・오제(五帝)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인간 왕의 시대에 이른다고 여겨졌다. 皇의 자형에 대해서도 불[火]이 흙[土]을 비추는 모양, 王 이 땅속에 있는 불의 모양이듯이 해가 뜰 때의 모양, 왕관의 모양,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모양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皇의 자형에서 王의 윗부분은 옥으로 된 장식이나 옥이 빛나는 모양인 것은 분명하다. 皇자가 王의 자형으로부터 나왔다면 왕의 시대에 앞서 황제의 시대가 있었다는 고대사관은 문자학상으로도 부정될 것이다.[6]

시라카와 시즈카에 따르면 신이 강림하는 신 사다리[神梯(신제)]의 앞은 신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성스러운 곳으로, 신 사다리 앞에는 그 신령함과 위엄을 표시하는 옥(玉)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옥은 왕위의 상징으로서 옥좌 앞에 놓이는 도끼, 즉 월두(鉞頭)의 윗부분에도 상감(象嵌)되었다. 현재 그렇게 옥이 상감된 도끼[鉞]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옥좌의 월(鉞)은 옥 때문에 휘황찬란한 광휘를 뿜었으며, 皇(임금 황)은 그러한 광휘를 나타내는 것이다. 신 사다리의 의식은 본래 구혼을 위한 가무 모임이었으나 왕권의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7]

  1. ‘겉모양이 번지르르하다. 혹은 허울이 좋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2.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pp.111-112
  3. 도미야 이따루, 『유골의 증언』, 서경문화사, pp.91-92
  4.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p.47
  5.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p.46
  6. 시라카와 시즈카, 『漢子의 世界』, p.96
  7. 시라카와 시즈카, 『漢子 백가지 이야기』, pp.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