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語源==
 
==語源==
 +
[[파일:정성 건.png|500픽셀|오른쪽]]
 +
정성 건(虔)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정성스럽다', '경건하다'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br>
 +
옛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는데 호랑이 몸에 있는 특유의 줄무늬만 봐도 놀라서 두려워했다. 호랑이를 나타내는 호피무늬 호(虍)에 무늬를 뜻하는 문(文)이 더해져 호랑이 무늬를 나타내었고, 이를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경건해지는 것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다.<ref>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ref>
 +
이에 비해 호피무늬 호(虍)가 의미부이고 글월 문(文)이 소리부로 구성된 형성자로,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가 걸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에서부터 위엄과 무용을 갖춘 ‘의젓함’을 그렸고 여기에서 다시 '경건하다',' 정성을 다하다', '공경하다'는 뜻으로 발전했다는 주장도 있다. <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f>
  
[[파일:정성 건.png|500픽셀|오른쪽]]
 
정성 건(虔)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하게끔 한다는 뜻으로 파생되었는데 예를 들면 정성스럽다, 경건하다 등이 있다. 옛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는데 호랑이 몸에 있는 특유의 줄무늬만 보면 놀라서 두려워했다. 호랑이를 나타내는 호피무늬 호(虍)에 무늬를 뜻하는 문(文)이 더해져 호랑이 무늬를 나타내었고, 이를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경건해지는 것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다.<ref>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ref>
 
이에 비해 한자어원사전에서는 호피무늬 호(虍)가 의미부 글월 문(文)이 소리부로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가 걸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에서부터 위엄과 무용을 갖춘 ‘의젓함’을 그렸고 다시 경건하다 정성을 다하다, 공경하다는 뜻으로 발전하였다고 해석하고 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f>
 
 
==文化==
 
==文化==
옛날 주나라 시절에 호랑이의 형상을 군부로 사용하는 특수한 문화가 있었는데 이러한 군부를 “호부”라고 불렀다. 호부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동으로 만든 호랑이 형상이었는데, 한쪽은 황제가 한쪽은 밖에서(외곽) 주둔하고  
+
옛날 주나라 시절에 호랑이의 형상을 군부로 사용하는 특수한 문화가 있었는데 이러한 군부를 '호부(虎符)'라고 불렀다. 호부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호랑이 형상이었는데, 한쪽은 황제가 한쪽은 밖에서(외곽) 주둔하고 있는 장군이 보관했다. 두 개가 합체할 때 장군은 그제서야 출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호부는 극도로 높은 권력을 상징했고 황제가 병력을 이동시키고 장수를 파견하는데 사용하는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또한  한나라 때는 호랑이 가죽으로 의복을 제작했는데 이러한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옷은 장군들만이 걸칠 수 있었다. <후한서>에 기재되어 있기를, 동한(東漢)시기에 원소가 조조를 동군태수로 임명한다. 이후에 연주(兖州) 자사가 황건적에게 살해를 당하자 원소는 또 조조를 연주자사로 임명하고는 호랑이 옷과 많은 군대를 그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br>  
있는 장군이 보관했다. 두 개가 합체할 때 장군은 그제서야 출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호부는 극도로 높은 권력을 상징했고 황제가 병력을 이동시키고 장수를 파견하는데 사용하는 중요한 증거물이었다.호부의 응용(사용)이외에도 한나라 때는 호랑이 가죽으로 의복을 제작했다. 이러한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옷은 장군들만이 걸칠 수 있었다. <후한서>에 기재되어 있기를, 동한(東漢)시기에 원소가 조조를 동군태수로 임명한다. 이후에 연주(兖州) 자사가 황건적에게 살해를 당하자 원소는 또 조조를 연주자사로 임명하고는 호랑이 옷과 많은 군대를 그에게 준다.<br>  
 
 
(<후한서 : “호문을 입고, 별동대로 쓰이다”>)
 
(<후한서 : “호문을 입고, 별동대로 쓰이다”>)
  

2020년 7월 27일 (월) 13:33 기준 최신판

語源

정성 건.png

정성 건(虔)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정성스럽다', '경건하다'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옛사람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는데 호랑이 몸에 있는 특유의 줄무늬만 봐도 놀라서 두려워했다. 호랑이를 나타내는 호피무늬 호(虍)에 무늬를 뜻하는 문(文)이 더해져 호랑이 무늬를 나타내었고, 이를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경건해지는 것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다.[1] 이에 비해 호피무늬 호(虍)가 의미부이고 글월 문(文)이 소리부로 구성된 형성자로,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가 걸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에서부터 위엄과 무용을 갖춘 ‘의젓함’을 그렸고 여기에서 다시 '경건하다',' 정성을 다하다', '공경하다'는 뜻으로 발전했다는 주장도 있다. [2]

文化

옛날 주나라 시절에 호랑이의 형상을 군부로 사용하는 특수한 문화가 있었는데 이러한 군부를 '호부(虎符)'라고 불렀다. 호부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호랑이 형상이었는데, 한쪽은 황제가 한쪽은 밖에서(외곽) 주둔하고 있는 장군이 보관했다. 두 개가 합체할 때 장군은 그제서야 출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호부는 극도로 높은 권력을 상징했고 황제가 병력을 이동시키고 장수를 파견하는데 사용하는 중요한 증거물이었다. 또한 한나라 때는 호랑이 가죽으로 의복을 제작했는데 이러한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옷은 장군들만이 걸칠 수 있었다. <후한서>에 기재되어 있기를, 동한(東漢)시기에 원소가 조조를 동군태수로 임명한다. 이후에 연주(兖州) 자사가 황건적에게 살해를 당하자 원소는 또 조조를 연주자사로 임명하고는 호랑이 옷과 많은 군대를 그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후한서 : “호문을 입고, 별동대로 쓰이다”>)

주석

  1. 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2.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