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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aakdi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9월 6일 (화) 00: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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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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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금문의 铸는 양손으로 도가니[坩锅]를 잡고 아랫부분의 그릇 모양의 가운데를 향해 녹인 쇳물[铜水]을 붓는 모습으로 금속을 주조한다는 뜻이다. 소전의 铸는 金의 의미와 声의 소리를 따르며, 형성자로 바뀌었다. 铸의 본래 의미는 거푸집으로 금속을 녹여 그릇을 만드는 것으로, ‘도기를 굽고 쇠붙이를 제련하다[陶冶]’・‘제조(制造)하다’・‘기르다. 재배하다[培育]’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文化

중국은 청동기 문화가 매우 발달했던 나라이다. 화려했던 고대 중국 청동기 문화의 청동 제조법이 반영된 글자가 바로 金(금)이다. 지금은 황금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지만 옛날에는 ‘청동(靑銅)’을 지칭하는 단어로만 쓰였다. 그래서 청동기에 새겨진 문자를 금문(金文)이라 하며, 의미가 확대되긴 했지만 아직도 쇠를 대표하는 글자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쇠, 즉 금속과 관련된 글자는 모두 이를 부수로 삼고 있다. 金의 자형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청동’이라는 원래 뜻과 연계시켜 볼 때 이는 청동기물의 주조를 위해 만든 틀 즉 거푸집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鑄(주)나 割(할)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鑄는 두 손으로 청동을 녹인 쇳물을 담은 용광로를 뒤집어 거푸집 위로 붓고 있는 모습이다. 割은 거푸집을 칼로 자른다는 뜻이니, 주물을 하고서 굳어진 후 거푸집을 묶어 놓았던 새끼줄을 자른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 청동을 주조할 때 거푸집을 사용했다는 것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의 청동 주조법은 밀랍을 사용한 서양의 방법과 다르며 서양의 밀랍 주조법은 전국시대에나 이르러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때 주장되었던 청동기의 서양전래설을 부정할 수 있으며, 중국이 독자적으로 청동주조를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1]

갑골문에서 鑄로 쓰인 문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각각 한 번씩 보인다. 하나는 갑골문 인데, 이것은 주형 위에 뒤집혀진 용기를 잡고 있는 두 손을 나타낸다. 아마 용해된 금속을 붓고 있는 모양을 묘사한 것 같다. 또 다른 형태는 기도(祈禱)의 禱(도)로 가차되어진 이다. 이것은 두 손으로 용해된 금속이 들어 있는 용기를 기울여 다른 용기에 붓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두 형태의 갑골문 모두 주조(鑄造)의 과정을 나타낸다. 금문시대에는 기물을 주조하는 원인과 목적을 종종 명문 속에 기록하였으므로, 鑄 자 역시 자주 나타난다.

또한 鑄의 다른 형태도 매우 많은데, 대부분 갑골문의 기본형에 의부(義符) (金) 또는 성부(聲符) (疇, 주)가 덧붙어서 발전되었다.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자형은 로부터 발전한 이다. 金에 해당하는 은 에서 발전하였다. 갑골문 에서 은 용해된 금속을 붓는 주형(鑄型, 거푸집)을 나타낸 것이므로, 金도 역시 주형을 나타낸 것이다. 銅(동)의 금문 에서 의부 는 주형틀의 두 부분이 끈으로 꽁꽁 묶여서 용해된 금속이 가득 채워져 있는 모양과 아주 닮았다. 그러므로 금속을 대표하는 金 자는 주형주조의 개념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는 金 자가 여러 조각의 주형을 나타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인 것이다.[2]

  1.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8, pp.181-182
  2. 허진웅,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영남대 중국문학연구실, 1993,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