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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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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철(蒯彻)'''. 괴통(蒯通)이라고도 부른다. 괴철은 범양(현재 하남성 정흥현) 사람으로 생몰년월이 미상이다. [[한 무제]]의 이름과 같이 피휘하기 위해 철()을 통(通)으로 바꿔 기록하였다. 후한 말 유표의 책사인 괴량(蒯良),괴월(蒯越)이 괴철의 후손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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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철(蒯徹)'''. 괴통(蒯通)이라고도 부른다. 괴철은 범양(현재 하남성 정흥현) 사람으로 생몰년월이 미상이다. [[한 무제]]의 이름과 같이 피휘하기 위해 철((徹)을 통(通)으로 바꿔 기록하였다. 후한 말 유표의 책사인 괴량(蒯良),괴월(蒯越)이 괴철의 후손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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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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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9일 (월) 16:47 기준 최신판

개요

괴철(蒯徹). 괴통(蒯通)이라고도 부른다. 괴철은 범양(현재 하남성 정흥현) 사람으로 생몰년월이 미상이다. 한 무제의 이름과 같이 피휘하기 위해 철((徹)을 통(通)으로 바꿔 기록하였다. 후한 말 유표의 책사인 괴량(蒯良),괴월(蒯越)이 괴철의 후손으로 알려져있다.

괴철(蒯徹),괴통(蒯通)
본명 괴철(蒯徹)
출생 ?
사망 ?
국적 진(秦)→한(漢)

생애

사서에 (秦) 이세황제 원년 8월 처음으로 등장한다.

초기

당시, 진(秦)의 학정으로 인해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이 일어난 상태였다. 이 때, 진승은 자신의 수하인 무신(武臣)을 시켜 옛 조나라 땅을 정벌하라 명령한다. 이 때 괴철은 당시 범양의 현령 서공(徐公)에게 항복할 것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신은 범양 백성 괴통이라고 하는데 공께서는 장차 죽게 돼 남몰래 가련히 여겨 조문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께서 저를 얻게 돼 사실 수 있으니 축하드립니다.


서공이 두 번 절하고 물었다.


"어째서 조문을 하려 했던 것이오?"


괴통이 말했다.


"족하께서 현령이 되시어 10여 년이 됐는데 그동안 남의 아버지를 죽이고 남의 자식을 고아로 만들고 남의 다리를 자르고 남의 얼굴에 경형(黥刑)을 시행한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와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가 지금까지 감히 공의 배를 칼로 찌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나라의 법이 두려워서 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하가 어지러워져 진나라의 정치가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와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가 장차 다투어 칼을 들고 공의 배를 찔러 그 원한을 갚고 공명(功名)을 이루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조문을 하려 했던 까닭입니다."


서공이 말했다.


"어째서 그대를 얻게 돼 살 수 있으니 축하한다고 한 것이오?"


"조나라 무신군은 괴통이 뛰어나지 못함을 알지 못해 사람을 시켜 나의 생사여부를 살펴서 물어올 것인데 그러면 이 괴통은 장차 무신군을 만나보고서 그에게 이렇게 설득할 것입니다.'분명히 앞으로 전쟁에서 이겨 땅을 공략할 것이고 공격을 해 성을 떨어뜨릴 것인데 신은 남몰래 이를 위태롭다 여깁니다. 신의 계책을 쓰시어 싸우지 않고서 땅을 공략하시고 공력을 하지 않고서 성을 떨어뜨려 격문을 사방으로 전해 천리를 평정하는 것이 좋기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쪽에서 물어올 것입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그러면 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범양현령은 마땅히 그 사졸들을 정돈해 전투를 준비해야할 터인데 지금 겁을 먹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탐욕스러워 부귀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먼저 성을 갖고서 군께 합옥하려 합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군께 항복했는데도 군께서 그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변방의 성들에서는 모두 서다 서로에게 말하길 "범양현령이 가장 먼저 항복했는데도 몸을 망쳤다" 라고 하면서 반드시 장차 성벽을 더욱 튼튼히 해 굳게 지키려 할 것이니 모두 금성탕지(金城湯池)가 돼 공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군을 위한 계책으로는 황옥주륜(黃屋朱輪)으로 현령을 맞이해


(중략)


무신은 수레 100승(乘), 기마 200명, 후(侯)의 인장을 가지고 서공을 맞이했다. 연나라와 조나라에서 이를 듣고서 30여 개 성이 항복했으니 과연 괴통의 계책대로 됐다.


 
— <한서>, 괴통전

한신을 만나다

기원전 203년, 한의 장수 한신(韩信)이 위왕 표(豹)를 포로로 잡고 조(趙), 대(代)를 대파했으며, 또한, 연(燕)을 항복시켰다. 이후 군대를 부려 제(齊)를 공격하려 할 때, 한신은 유방이 역이기(酈食其)를 제나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한신이 군을 멈추려하자 괴철이 한신에게 나타나 말하길


"장군꼐서 조서를 받아 제나라를 치려 하는데 한왕이 단독으로 간사(間使-밀사)를 보내 제나라를 항복시키긴 했지만 오히려 장군께 진격을 그만두라는 조서가 있습니까? 그러니 어찌 진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역생(酈生)은 일개 선비일 뿐인데도 식(軾)에 엎드려 세 치 혀를 놀려 제나라의 70여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는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한 해가 넘도록 조나라의 50여 개 성을 항복시켰을 뿐입니다; 장군이 되신 지 여러 해가 됐는데 도리어 일개 보랄것 없는 선비의 공로만도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 <한서>, 괴통전

이에 제나라 왕은 역이기가 자신을 속인 것으로 여기고 물을 끓여 그를 삶아 죽였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이후 괴통은 천하의 형세가 한신의 움직임에 달려있음을 깨닫고, 한신에게 유방을 배반할것을 종용한다.

"제가 일찍이 사람을 살피는 술법을 배운 적이 있어 군(君)의 얼굴을 보니 후(侯)에 봉해지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도 위태로워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군의 등을 보니 귀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한신이 말했다.

"무슨 말이오?"

통이 이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것을 청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중략)

바야흐로 지금 족하를 위한 계책으로는 양쪽을 다 이롭게 하면서 두 임금을 모두 존속시켜 천하를 세으로 나누어 큰 쇠통의 밥처럼 서 있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되면 그 형세상으로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한신은 망설이면서도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고, 또 스스로 공로가 많다 여겨 유방이 자신의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통의 말을 물리쳤다. 이에 통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후환을 두려워해 마침내 겉으로 미친 척 하고 무당이 됐다.

(이하생략)


 
— <후한서>, 괴통전

죽을 위기에 처하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서, 한신은 죄를 물어 폐위되고, 회음후가 되었다가 모반을 꾸며 사형에 처해졌다. 죽음을 앞두고 한신이 탄식하며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아 여자의 손에 죽게 되는 것이 한스럽구나!"

라 말했다. 이에 유방이 괴통을 잡아들여 삶아 죽이려 하며 물었다.

"네가 한신에게 모반을 종용했다는데 왜 그랬는가?"

괴통이 말했다.

"개가 짖는 것은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신은 오직 제나라 왕 한신만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진(秦)이 그 사슴을 잃어버리자 천하는 모두 그 사슴을 쫓았고 재주가 뛰어난 자가 먼저 그 사슴을 잡았습니다. 천하가 흉흉해지자 다투어 폐하께서 하신 것처럼 해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능력이 모자랐을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주살하시겠습니까?


 
— <한서>, 괴통전

이에 유방은 괴통을 용서해 주었다.

이후

이후 괴통은 제나라 상국 조참이 초청으로 그의 빈객이 된다. 전국시대 논객(說士)들의 권변(權變)을 기록한 『준영(雋永)』81권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 반고 저, 이한우 역『완역 한서』, 21세기북스,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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