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참고문헌)
 
18번째 줄: 18번째 줄:
 
백규는 큰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는 큰 이익이 반드시 비싼 상품을 운영하거나 거래에서 비싸게 팔아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규는 보통 상인들과 달리 욕장전, 취하곡의 상업 방침을 고수했다. 백규는 판매대상이 대부분 평민이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박리다매의 경영 책략을 채택하고 가격을 높이지 않았다. 대신 상품 유통속도와 판매속도를 빨리 하는 방법을 더욱 많은 이익을 얻었다. 또한 농민의 생산을 중시하고 그것을 자신의 상품 조달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농민에게 우량 품종을 공급하면서 장석두, 취상종의 주장을 제기하였다. 즉, 농민들의 곡물 생산이 증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더욱 풍부한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다. 장석두, 취상종의 의미는 농민이 풍년을 바란다면 반드시 우수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등의 고급 종자를 사들여야만 곡물의 생산이 증가하여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백규는 큰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는 큰 이익이 반드시 비싼 상품을 운영하거나 거래에서 비싸게 팔아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규는 보통 상인들과 달리 욕장전, 취하곡의 상업 방침을 고수했다. 백규는 판매대상이 대부분 평민이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박리다매의 경영 책략을 채택하고 가격을 높이지 않았다. 대신 상품 유통속도와 판매속도를 빨리 하는 방법을 더욱 많은 이익을 얻었다. 또한 농민의 생산을 중시하고 그것을 자신의 상품 조달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농민에게 우량 품종을 공급하면서 장석두, 취상종의 주장을 제기하였다. 즉, 농민들의 곡물 생산이 증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더욱 풍부한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다. 장석두, 취상종의 의미는 농민이 풍년을 바란다면 반드시 우수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등의 고급 종자를 사들여야만 곡물의 생산이 증가하여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1.사마천,『사기 열전』
+
* 사마천,『사기 열전』
2.소준섭,『중국사 인물 열전』, 현대지성, 2018
+
* 소준섭,『중국사 인물 열전』, 현대지성, 2018
3.[https://baike.baidu.com/item/%E7%99%BD%E5%9C%AD/20728?fr=aladdin 바이두백과 白圭]
+
* [https://baike.baidu.com/item/%E7%99%BD%E5%9C%AD/20728?fr=aladdin 바이두백과 白圭]

2020년 6월 29일 (월) 22:13 기준 최신판

생애

백규(白圭)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유명한 상인이다. 사람들은 그를 ‘천하 치생의 비조’라면서 속칭 ‘인간 재신’이라 부른다. 백규는 경제 전략가이자 이재가로서 도주공 범여도 그에게 치부의 방법을 자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의 통일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는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새롭게 봉건지주제도도 확립되었다. 생산력의 신속한 제고에 따라 시장의 상품도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사람들의 소비력도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거상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백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정치인 백규

백규는 일찍이 위나라 혜왕의 대신이었다. 당시 위나라 수도인 대량은 황하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 항상 홍수의 피해를 받아야 했다. 백규는 뛰어난 치수 능력을 발휘하여 대량의 수환을 막아냈다. 하지만 위나라가 갈수록 부패해지자 백규는 위나라를 떠나 중산국과 제나라를 잇달아 방문하였다. 이 두 나라 왕들은 모두 치국에 도움을 받고자 그에게 자기 나라에 남아 있기를 간청 했지만 백규는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는 제나라를 떠난 뒤 진나라로 들어갔는데, 당시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백규는 상앙의 중농억상 정책을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진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백규는 점점 정치에 대하여 혐오감이 강해졌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하였다.

상인 백규

본래 낙양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도시였다. 낙양 출신인 백규는 본래부터 상업에 뛰어난 눈을 지니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시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 무렵 상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상인 집단이 대규모로 형성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공평한 매매와 정당한 경영을 실행하였다. 하지만 일부는 희귀한 물건을 대량으로 매점매석하고 시장을 독점하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고리대를 하여 폭리를 취했다. 당시에 상인들을 두 종류로 분류하여 한 쪽을 성고(誠賈)이나 염상(廉商) 혹은 양상(良商)이라 하였고, 다른 쪽은 간고(奸賈)나 탐고(貪賈) 혹은 영상(佞商)이라고 지칭하였다.

후세에 미친영향

백규의 자성체계인 상업경영 사상은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명청까지만 해도 최대 상인 휘상은 2천년 전 백규의 유풍을 간직하고 있었다. 근대의 저명한 민족자본가인 영종경도 백규의 '인기아취(人棄我取,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한다)'는 경영원칙을 지켰고, 남양의 가장 유명한 화교 기업가인 진가경이 세운 '인기아취 인쟁아피(人棄我取, 人爭我避,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사람들이 투쟁하면 나는 피한다'는 경영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유명한 역사학자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백규를 높이 평가하며 "천하 언치생조백규"라고 했다. 백규는 후세의 상인에 의해 자신의 업계의 조상으로 추앙받는 그의 경영 마인드는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지도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경영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할 만하다.

시장 시세를 예측하다

백규의 상업사상의 중심 내용은 시장의 시세 변화를 예측해 재테크 의사결정을 하는 '낙관시변'이다. 이 중 '시'는 시장시세를, '관시변'은 시장시세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가지고 사람들이 가지면 나는 준다"는 재테크 의사결정 사상을 제시했다.이 중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가진다는 것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때 틈을 타서 사들이는 것이다. 그는 '천하면 극히 비싸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급 과잉을 틈타 가격이 저렴할 때 사들였다.'인취아요'는 내 손에 있는 상품이 공급이 안 돼 가격이 오를 때 팔린다는 말이다. 백규가 말하는 시변은 농업 풍작이 상품가격과 수급에 미치는 영향도 포함한다. 그는 이번해가 흉년이면 다음 해 또한 흉년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풍년일때의 식량 가격이 다른 농산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흉년이일때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나타났다. 그러면 농업의 풍작을 예측할 수 있어야지, 흉작이 이미 나타난 뒤에 가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백규는 농업의 풍작을 예측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정책의 결정은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정책을 실행하는데에 주저하고 관망하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사기열전'은 백규가 "때를 틈타 맹수와 새처럼" 재테크의 결정에서 벼락부자가 된 그의 정신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경영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

백규는 재테크를 하려면 좋은 사람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가 말하는 좋은 사람을 고르기 위해 '지', '용', '인', '강' 네 가지를 요구했다. 이것은 그의 고용 기준이다. 좋은 관리자가 관리자와 함께 일할 때 '식사, 호욕, 절의를 가볍게 할 수 있고, 용무와 고락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관리자가 피관리자의 작업 성과와 그들의 인품, 정서, 심리에 중대한 관계가 있음을 이미 인식했다. 그래서 사람을 쓸 때는 강압과 회유에 의존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동고동락의 공생법으로 그들 내면에 일종의 격동기를 일으킨다.이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선진적인 것으로 보인다.

박리다매를 기본원칙으로 삼아야한다

백규는 큰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는 큰 이익이 반드시 비싼 상품을 운영하거나 거래에서 비싸게 팔아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규는 보통 상인들과 달리 욕장전, 취하곡의 상업 방침을 고수했다. 백규는 판매대상이 대부분 평민이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박리다매의 경영 책략을 채택하고 가격을 높이지 않았다. 대신 상품 유통속도와 판매속도를 빨리 하는 방법을 더욱 많은 이익을 얻었다. 또한 농민의 생산을 중시하고 그것을 자신의 상품 조달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농민에게 우량 품종을 공급하면서 장석두, 취상종의 주장을 제기하였다. 즉, 농민들의 곡물 생산이 증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더욱 풍부한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다. 장석두, 취상종의 의미는 농민이 풍년을 바란다면 반드시 우수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등의 고급 종자를 사들여야만 곡물의 생산이 증가하여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사마천,『사기 열전』
  • 소준섭,『중국사 인물 열전』, 현대지성, 2018
  • 바이두백과 白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