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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성같은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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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장수이자 제나라 민왕(湣王) 재위기간(BC 300 ~ BC 284) 전후로 활동했다. 후일 제나라 양왕(襄王)이 안평군(安平君)으로 삼았으며 제나라 양왕을 도와 국정을 운영하였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장수이자 제나라 민왕(湣王) 재위기간(BC 300 ~ BC 284) 전후로 활동했다. 후일 제나라 양왕(襄王)이 안평군(安平君)으로 삼았으며 제나라 양왕을 도와 국정을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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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시기 = 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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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단의 혜성같은 등장 ==
 
  
 
=== 제나라의 위기 ===
 
=== 제나라의 위기 ===
제나라는 민왕 시절 중원 최고의 강국인 진(秦)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국력을 과시하였다. 민왕은 제나라의 국력을 믿고 주변 나라들을 핍박했는데 이에 연(燕), 진, 한(韓), 위(魏), 조(趙) 5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침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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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는 민왕 시절 중원 최고의 강국인 [[]](秦)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국력을 과시하였다. 민왕은 제나라의 국력을 믿고 주변 나라들을 핍박했는데 이에 연(燕), 진, 한(韓), 위(魏), 조(趙) 5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침공하였다.
 
당시 연합군의 총수이자 연나라의 명장이었던 상장군 [[악의]](樂毅)의 활약으로 제나라는 6개월만에 70여개의 성이 함락당하고 수도인 임치(臨淄)를 빼앗기는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당시 연합군의 총수이자 연나라의 명장이었던 상장군 [[악의]](樂毅)의 활약으로 제나라는 6개월만에 70여개의 성이 함락당하고 수도인 임치(臨淄)를 빼앗기는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민왕이 거(莒)성으로 도망쳤다가 그 곳에서 살해당하는 등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심지어 민왕이 거(莒)성으로 도망쳤다가 그 곳에서 살해당하는 등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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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단의 수레바퀴 축 ===
 
=== 전단의 수레바퀴 축 ===
 
전단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제나라의 수도 임치의 시장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여서 아무도 그를 알지 못했다. 전단은 전쟁이 시작되자 집안사람들과 피난을 가려고 했다. 전단은 집안사람 모두에게 수레바퀴 축의 튀어나온 끝을 자르고 철 덮개를 씌우게 했다. 사람들은 이런 전단의 말에 수레바퀴에 철 덮개를 씌우면 피난 시에 빨리 움직일 수 없을거라며 전단을 비웃었다. 하지만 피난길은 울퉁불퉁하고 험난한 도로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수레바퀴는 약하여 견디지 못하고 부셔졌고 철 덮개를 씌운 전단의 수레만이 무탈하게 동쪽의 즉묵(即墨) 땅으로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즉묵 사람들은 성의 사령관이 전사하자, 전단의 이와 같은 재주를 인정하여 즉묵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전단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제나라의 수도 임치의 시장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여서 아무도 그를 알지 못했다. 전단은 전쟁이 시작되자 집안사람들과 피난을 가려고 했다. 전단은 집안사람 모두에게 수레바퀴 축의 튀어나온 끝을 자르고 철 덮개를 씌우게 했다. 사람들은 이런 전단의 말에 수레바퀴에 철 덮개를 씌우면 피난 시에 빨리 움직일 수 없을거라며 전단을 비웃었다. 하지만 피난길은 울퉁불퉁하고 험난한 도로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수레바퀴는 약하여 견디지 못하고 부셔졌고 철 덮개를 씌운 전단의 수레만이 무탈하게 동쪽의 즉묵(即墨) 땅으로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즉묵 사람들은 성의 사령관이 전사하자, 전단의 이와 같은 재주를 인정하여 즉묵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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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와의 대결 그리고 반간계(反間計) ===
 
=== 악의와의 대결 그리고 반간계(反間計) ===
당시 최고의 명장이던 악의 마저 제나라 즉묵과 거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단은 즉묵에 모든 병사들을 결집시키고 공격을 버텨냈다. 결국 악의는 성을 공격하는 대신 성을 포위하여 장기전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연나라에서는 악의를 신임하던 소왕(昭王)이 병으로 죽고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즉위하였다. 혜왕은 소왕과 달리 직언을 아끼지 않는 악의를 미워하였다. 전단은 이에 악의는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돌아오지 않고 제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끌면서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제나라 사람이 따르지 않기에 즉묵 땅을 공격하는 것을 늦추고 있으며 제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장수가 와서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반간계를 펼쳤다. 혜왕은 이에 넘어가 악의를 해임시키고 기겁(騎劫)을 대장으로 삼았다. 악의가 해임당한 것을 안 전단은 신사(神師)가 명령을 내려주고 있다고 소문을 냈다. 또한 연나라 군대가 사로잡은 제나라 병사들의 코를 베고 연나라 군대가 성 밖의 무덤을 파헤쳐서 선조를 욕보이게 하는 것이 두렵다고 소문을 냈고 소문을 들은 연나라 군대는 그대로 행했고 제나라 군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출전하기를 원했다. 전단은 군대가 안정되고 난 후 젊은 병사들은 매복시키고 성 위에 노약자와 여자들만 세워 적군에게 보이고 사신을 보내 항복을 약속하자 연나라 장수 기겁은 방심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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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고의 명장이던 [[악의]] 마저 제나라 즉묵과 거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단은 즉묵에 모든 병사들을 결집시키고 공격을 버텨냈다. 결국 악의는 성을 공격하는 대신 성을 포위하여 장기전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연나라에서는 악의를 신임하던 소왕(昭王)이 병으로 죽고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즉위하였다. 혜왕은 소왕과 달리 직언을 아끼지 않는 악의를 미워하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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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은 이에 악의는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돌아오지 않고 제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끌면서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제나라 사람이 따르지 않기에 즉묵 땅을 공격하는 것을 늦추고 있으며 제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장수가 와서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반간계를 펼쳤다. 혜왕은 이에 넘어가 악의를 해임시키고 기겁(騎劫)을 대장으로 삼았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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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가 해임당한 것을 안 전단은 신사(神師)가 명령을 내려주고 있다고 소문을 냈다. 또한 연나라 군대가 사로잡은 제나라 병사들의 코를 베고 연나라 군대가 성 밖의 무덤을 파헤쳐서 선조를 욕보이게 하는 것이 두렵다고 소문을 냈고 소문을 들은 연나라 군대는 그대로 행했고 제나라 군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출전하기를 원했다. 전단은 군대가 안정되고 난 후 젊은 병사들은 매복시키고 성 위에 노약자와 여자들만 세워 적군에게 보이고 사신을 보내 항복을 약속하자 연나라 장수 기겁은 방심을 하게 되었다.       
  
 
=== 화우지계(火牛之計) ===
 
=== 화우지계(火牛之計) ===
전단은 연나라 장군 기겁이 방심한 틈을 타 성안에 있는 천여 마리의 소를 모아 붉은 비단옷을 입히고, 오색 용무늬를 그리고, 뿔에 날카로운 쇠붙이를 묶고, 꼬리에는 기름에 적신 갈대를 묶어 그 끝에 불을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은밀히 성문이 아닌 쪽에 있는 성벽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고, 밤이 되자 그곳으로 소를 내보내고 군사 5천 명이 뒤따르게 했다. 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앞으로 돌진하여 연나라 군대로 달려갔고, 연나라 군대는 갑작스러운 야습으로 놀라서 서로 부딪히거나 소떼에 밟혀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다. 뒤 따르던 군사들이 연나라 군대를 치자, 성안에서는 노약자들이 북을 두드리거나 구리그릇을 두드리며 함성을 지르니, 연나라 군대는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 상황에 연나라 장수 기겁은 전사하였고 연나라 군대는 사분오열로 정신없이 달아나고, 제나라 군대는 도망가는 자들을 추격하니 성과 고을을 지날 때마다 연나라가 점령했던 성읍의 사람들이 전단에게 투항했고 마침내 BC 279년 빼앗겼던 제나라의 70여개의 모든 성을 되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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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은 연나라 장군 기겁이 방심한 틈을 타 성안에 있는 천여 마리의 소를 모아 붉은 비단옷을 입히고, 오색 용무늬를 그리고, 뿔에 날카로운 쇠붙이를 묶고, 꼬리에는 기름에 적신 갈대를 묶어 그 끝에 불을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은밀히 성문이 아닌 쪽에 있는 성벽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고, 밤이 되자 그곳으로 소를 내보내고 군사 5천 명이 뒤따르게 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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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앞으로 돌진하여 연나라 군대로 달려갔고, 연나라 군대는 갑작스러운 야습으로 놀라서 서로 부딪히거나 소떼에 밟혀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다. 뒤 따르던 군사들이 연나라 군대를 치자, 성안에서는 노약자들이 북을 두드리거나 구리그릇을 두드리며 함성을 지르니, 연나라 군대는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 상황에 연나라 장수 기겁은 전사하였고 연나라 군대는 사분오열로 정신없이 달아나고, 제나라 군대는 도망가는 자들을 추격하니 성과 고을을 지날 때마다 연나라가 점령했던 성읍의 사람들이 전단에게 투항했고 마침내 BC 279년 빼앗겼던 제나라의 70여개의 모든 성을 되찾게 되었다.
  
 
== 전단의 이야기 ==
 
== 전단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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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司馬遷)의 논평 ===
 
=== [[사마천]](司馬遷)의 논평 ===
 
사마천 『[[사기]](史記)』 전단열전
 
사마천 『[[사기]](史記)』 전단열전
  太史公曰:兵以正合, 以奇勝. 善之者, 出奇無窮. 奇正還相生, 如環之無端. 夫始如処女, 適人開戸, 後如脫免, 適不及距:其田単之謂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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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史公曰:兵以正合, 以奇勝. 善之者, 出奇無窮. 奇正還相生, 如環之無端. 夫始如処女, 適人開戸, 後如脫免, 適不及距:其田単之謂邪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전투는 정면으로 겨루되 기발한 책략으로 이기는 것이다. (전투를) 잘하는 사람의 기발한 책략은 무궁하다. 정공법과 기발한 책략을 서로 돌아가며 구사하는 것이 마치 둥근 고리에 끄트머리가 없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약해 보이지만 적으로 하여금 문을 활짝 열게 만들며, 나중에는 도망치는 토끼 같아서 적이 막을 겨를이 없게 만든다. 전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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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정면으로 겨루되 기발한 책략으로 이기는 것이다. (전투를) 잘하는 사람의 기발한 책략은 무궁하다. 정공법과 기발한 책략을 서로 돌아가며 구사하는 것이 마치 둥근 고리에 끄트머리가 없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약해 보이지만 적으로 하여금 문을 활짝 열게 만들며, 나중에는 도망치는 토끼 같아서 적이 막을 겨를이 없게 만든다. 전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 제나라 양왕의 일화 ===
 
=== 제나라 양왕의 일화 ===
어느 날, 전단이 치수(淄水)를 지나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걷지 못하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았다. 전단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자신의 갑옷을 벗어 입혀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양왕은 전단이 인심을 베푸는 것은 본인의 나라를 차지하려는 것이라는 마음이 일었다. 양왕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 구슬을 꿰고 있는 자를 불러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구슬을 꿰고 있던 자는 선행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편이 낫다고 조언을 했고 양왕은 곧 전단을 위해 소를 잡아 술과 함께 내리며 그의 선행을 칭찬하였다. 며칠 뒤 구슬 꿰는 자가 양왕을 뵙고 조회하는 날에 전단을 불러 뜰에서 읍하고 노고를 치하하라고 조언을 했다. 양왕은 신하의 선행을 공개적으로 치하하여 군주로서 포용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왕은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하는 백성을 찾는다는 명령을 내려서는 그들을 거두어 돌본 뒤 마을마다 사람을 풀어 소문을 돌게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들과 사인(士人)들이 전단이 백성을 아끼는 것이 왕께서 가르친 덕분이라고 하나같이 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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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전단이 치수(淄水)를 지나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걷지 못하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았다. 전단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자신의 갑옷을 벗어 입혀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양왕은 전단이 인심을 베푸는 것은 본인의 나라를 차지하려는 것이라는 마음이 일었다. 양왕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 구슬을 꿰고 있는 자를 불러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구슬을 꿰고 있던 자는 선행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편이 낫다고 조언을 했고 양왕은 곧 전단을 위해 소를 잡아 술과 함께 내리며 그의 선행을 칭찬하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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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구슬 꿰는 자가 양왕을 뵙고 조회하는 날에 전단을 불러 뜰에서 읍하고 노고를 치하하라고 조언을 했다. 양왕은 신하의 선행을 공개적으로 치하하여 군주로서 포용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왕은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하는 백성을 찾는다는 명령을 내려서는 그들을 거두어 돌본 뒤 마을마다 사람을 풀어 소문을 돌게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들과 사인(士人)들이 전단이 백성을 아끼는 것이 왕께서 가르친 덕분이라고 하나같이 말하게 되었다.
 
   
 
   
 
=== 광일미구(曠日彌久) ===
 
=== 광일미구(曠日彌久) ===

2020년 6월 29일 (월) 15:47 판

혜성같은 등장

전단.jpg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장수이자 제나라 민왕(湣王) 재위기간(BC 300 ~ BC 284) 전후로 활동했다. 후일 제나라 양왕(襄王)이 안평군(安平君)으로 삼았으며 제나라 양왕을 도와 국정을 운영하였다.

전단(田單)
출생 ??
사망 ??
생존시기 전국시대

제나라의 위기

제나라는 민왕 시절 중원 최고의 강국인 (秦)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국력을 과시하였다. 민왕은 제나라의 국력을 믿고 주변 나라들을 핍박했는데 이에 연(燕), 진, 한(韓), 위(魏), 조(趙) 5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침공하였다. 당시 연합군의 총수이자 연나라의 명장이었던 상장군 악의(樂毅)의 활약으로 제나라는 6개월만에 70여개의 성이 함락당하고 수도인 임치(臨淄)를 빼앗기는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민왕이 거(莒)성으로 도망쳤다가 그 곳에서 살해당하는 등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전단의 수레바퀴 축

전단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제나라의 수도 임치의 시장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여서 아무도 그를 알지 못했다. 전단은 전쟁이 시작되자 집안사람들과 피난을 가려고 했다. 전단은 집안사람 모두에게 수레바퀴 축의 튀어나온 끝을 자르고 철 덮개를 씌우게 했다. 사람들은 이런 전단의 말에 수레바퀴에 철 덮개를 씌우면 피난 시에 빨리 움직일 수 없을거라며 전단을 비웃었다. 하지만 피난길은 울퉁불퉁하고 험난한 도로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수레바퀴는 약하여 견디지 못하고 부셔졌고 철 덮개를 씌운 전단의 수레만이 무탈하게 동쪽의 즉묵(即墨) 땅으로 피난을 갈 수 있었다. 즉묵 사람들은 성의 사령관이 전사하자, 전단의 이와 같은 재주를 인정하여 즉묵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장수로서의 전단

악의와의 대결 그리고 반간계(反間計)

당시 최고의 명장이던 악의 마저 제나라 즉묵과 거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단은 즉묵에 모든 병사들을 결집시키고 공격을 버텨냈다. 결국 악의는 성을 공격하는 대신 성을 포위하여 장기전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연나라에서는 악의를 신임하던 소왕(昭王)이 병으로 죽고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즉위하였다. 혜왕은 소왕과 달리 직언을 아끼지 않는 악의를 미워하였다.
전단은 이에 악의는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돌아오지 않고 제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끌면서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제나라 사람이 따르지 않기에 즉묵 땅을 공격하는 것을 늦추고 있으며 제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장수가 와서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반간계를 펼쳤다. 혜왕은 이에 넘어가 악의를 해임시키고 기겁(騎劫)을 대장으로 삼았다.
악의가 해임당한 것을 안 전단은 신사(神師)가 명령을 내려주고 있다고 소문을 냈다. 또한 연나라 군대가 사로잡은 제나라 병사들의 코를 베고 연나라 군대가 성 밖의 무덤을 파헤쳐서 선조를 욕보이게 하는 것이 두렵다고 소문을 냈고 소문을 들은 연나라 군대는 그대로 행했고 제나라 군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출전하기를 원했다. 전단은 군대가 안정되고 난 후 젊은 병사들은 매복시키고 성 위에 노약자와 여자들만 세워 적군에게 보이고 사신을 보내 항복을 약속하자 연나라 장수 기겁은 방심을 하게 되었다.

화우지계(火牛之計)

전단은 연나라 장군 기겁이 방심한 틈을 타 성안에 있는 천여 마리의 소를 모아 붉은 비단옷을 입히고, 오색 용무늬를 그리고, 뿔에 날카로운 쇠붙이를 묶고, 꼬리에는 기름에 적신 갈대를 묶어 그 끝에 불을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은밀히 성문이 아닌 쪽에 있는 성벽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고, 밤이 되자 그곳으로 소를 내보내고 군사 5천 명이 뒤따르게 했다.
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앞으로 돌진하여 연나라 군대로 달려갔고, 연나라 군대는 갑작스러운 야습으로 놀라서 서로 부딪히거나 소떼에 밟혀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다. 뒤 따르던 군사들이 연나라 군대를 치자, 성안에서는 노약자들이 북을 두드리거나 구리그릇을 두드리며 함성을 지르니, 연나라 군대는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 상황에 연나라 장수 기겁은 전사하였고 연나라 군대는 사분오열로 정신없이 달아나고, 제나라 군대는 도망가는 자들을 추격하니 성과 고을을 지날 때마다 연나라가 점령했던 성읍의 사람들이 전단에게 투항했고 마침내 BC 279년 빼앗겼던 제나라의 70여개의 모든 성을 되찾게 되었다.

전단의 이야기

사마천(司馬遷)의 논평

사마천 『사기(史記)』 전단열전

太史公曰:兵以正合, 以奇勝. 善之者, 出奇無窮. 奇正還相生, 如環之無端. 夫始如処女, 適人開戸, 後如脫免, 適不及距:其田単之謂邪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전투는 정면으로 겨루되 기발한 책략으로 이기는 것이다. (전투를) 잘하는 사람의 기발한 책략은 무궁하다. 정공법과 기발한 책략을 서로 돌아가며 구사하는 것이 마치 둥근 고리에 끄트머리가 없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약해 보이지만 적으로 하여금 문을 활짝 열게 만들며, 나중에는 도망치는 토끼 같아서 적이 막을 겨를이 없게 만든다. 전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제나라 양왕의 일화

어느 날, 전단이 치수(淄水)를 지나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걷지 못하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았다. 전단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자신의 갑옷을 벗어 입혀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양왕은 전단이 인심을 베푸는 것은 본인의 나라를 차지하려는 것이라는 마음이 일었다. 양왕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 구슬을 꿰고 있는 자를 불러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구슬을 꿰고 있던 자는 선행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편이 낫다고 조언을 했고 양왕은 곧 전단을 위해 소를 잡아 술과 함께 내리며 그의 선행을 칭찬하였다.
며칠 뒤 구슬 꿰는 자가 양왕을 뵙고 조회하는 날에 전단을 불러 뜰에서 읍하고 노고를 치하하라고 조언을 했다. 양왕은 신하의 선행을 공개적으로 치하하여 군주로서 포용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왕은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하는 백성을 찾는다는 명령을 내려서는 그들을 거두어 돌본 뒤 마을마다 사람을 풀어 소문을 돌게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들과 사인(士人)들이 전단이 백성을 아끼는 것이 왕께서 가르친 덕분이라고 하나같이 말하게 되었다.

광일미구(曠日彌久)

광일미구는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일을 오래 끎'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시대 말기, 연나라가 처들어오자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제나라로 사신을 보내 성 세 개를 떼어 주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의 파견을 요청했다. 이러한 조치에 불만을 품은 조나라 장수 조사(趙奢)가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평원군이 이를 묵살해 버리자 조사는 "제나라와 연나라가 원수지간이긴 합니다만, 조나라가 강해지면 제나라의 패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전단은 전력을 대해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병권을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조나라는 전단에게 지휘권을 맡겼지만 결국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사마천, 『사기(史記)』

박영규, 『춘추전국사』, 웅진지식하우스, 2015

우한, 『명장 : 그들에게 난세는 기회였다』, 김숙향 역, 살림, 2008

사진출처 전단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