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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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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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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과 戈로 구성되어, 무기로 사람의 목을 베는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목을 베다'와 '정벌하다', '자르다' 등의 뜻이 나왔고, 전공을 자랑한다는 뜻에서 '뽐내다', '자랑하다'의 뜻도 나왔다.<ref>하영삼,『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 2014, p.275</ref>
  
==[[신화와 고대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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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
==[[하]](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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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적은 적을 복종시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있다. 아주 옛날 사람들은 아마 종교, 오락 또는 어떤 자극적인 것을 위해서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기에 전쟁의 주된 목적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주 무왕이 상을 정복하고 난 뒤, 그는 상의 영토와 백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1만 4천여 개의 고옥과 1만 8천 쌍의 옥 장식품을 노획했다. 이로부터 그가 상을 정복한 목저이 재물의 약탈에 있었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백성들은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였다. 가벼운 것은 추방되는 것이며, 좀더 가혹하게는 노예로 전락되며, 가장 심한 경우는 처형되는 것이다. 갑골문 伐은 적을 베어 희생물로 바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ref>,『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438</ref>
==[[상]](商)==
 
==[[주]](周)==
 
===[[서주]](西周)===
 
===[[동주]](東周)===
 
====[[춘추]]시대(春秋)====
 
춘추시대는 평왕이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된다. ‘춘추(春秋)’시대는 공자가 지은 『춘추』가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 사이의 역사를 싣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약해져 천자의 위력이 없어지고 제후들이 강성해져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는 시기이다. 차례로 다섯 제후국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를 [[춘추오패]]라 한다. 주나라 왕실은 서주 중기부터 쇠약해졌고 동천 이후에는 제후들의 보호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서주와 비교했을 때 동주의 영토 역시 축소되었다. 또 천자의 권위가 높던 서주시기에 제후가 천장에게 정기적으로 예를 올리던 [[조빙제도]]도 춘추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명무실 해졌다. 영토와 백성이 감소하고 제후들의 조빙마저 끊기자 주나라 왕실의 재원은 바닥나게 된다.
 
====[[전국]]시대(戰國)====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진(晉)의 3분을 기점으로 하는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전국이란 이름은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이 이시기의 역사를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서 취하였다고도 하며, 여러 제후국이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전국시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진]](秦)==
 
BC221년 진시황에 의해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하였다. 현재 중국의 영어 이름인 China의 어원이 되었다. 중국어의 발음은 Qin. 국가의 색은 검은색으로 황제의 의복과 관리들의 복장, 군복, 국기 등이 검은색이었다.  
 
중원의 서부에 위치해 있어서 중원 사람들에게 야만인의 취급을 당했으나 기마민족들의 기마전술과 철기를 다루는 법을 일찍이 받아들여 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진시황의 사후, 2세 황제에 이르러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고 다음의 왕인 진왕 자영에 이르러 항우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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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자의 파생글자로 간주되는 몇몇 금문에는, 잔혹한 장면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즉 손으로 갈래창을 힘있게 쥔 채 뒤쪽에서 사람을 내리치고 있는 모습, 다시 말해 목을 베는 장면이다. 또 다른 글자는 꿇어앉은 사람을 제사의 희생물로 삼는 모습이다. 이는 1860년대 중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생각나게 한다 그 사진에는 웃통을 벗고 두 손은 묶인 채 허리를 굽힌 사람과 그 주위를 둘러싼 많은 구경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 그의 변발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망나니의 조수도 보였다.<ref>,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257,258</ref>
===[[전한]](前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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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복사]]에 의하면 은나라 사람은 '[[강족]](羌族)'을 제사 희생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이런 대량의 인간 희생은 아마도 사람의 머리만 잘라 사용했을 것이다. 희생의 법으로서 '벌강(伐羌)'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많다. 伐은 사람을 [[戈]](창 과)에 걸어서 머리를 자르는 형태의 글자이다. [[羌]](강)은 강족을 의미한다. 또한, 당시에 싸워서 이긴 경우, 상대의 주술력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적의 미녀(媚女, 샤면의 무녀)는 戈에 걸어 죽였다. 이를 나타난 글자가 [[蔑]](업신여길 멸)이다. [[蔑]]은 적의 미녀의 주술력을 없애는 의미였다. 같은 편에서 보면 이는 전쟁 공훈의 성과이다. 그래서 伐은 전쟁의 공훈, 전공의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ref>, 시라카와 시즈카,『한자 : 기원과 그 배경』,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7, p.60,79</ref>
왕망은 AD 5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평제를 살해한 후 두 살된 영을 황태자로 삼고 자신을 가황제라 했다. 이어 당시 유행하던 참위설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한 끝에 결국 8년에 한의 천하를 찬탈해 신을 건국했다.
 
  
===[[후한]](後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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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서]](徐中舒)는 '갑골문 伐은 이체자가 상당히 많은데, 창으로 사람을 격살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도 있고, [[]](도끼 월)이나 [[斤]](도끼 근)과 같은 도끼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도 있다. 사람이 창이나 도끼를 손에 든 모양을 형상화하여, 베어 죽이는 행동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마음대로 베어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하면서, 베어 죽임을 당하고 죽어 죽이는 행위의 차이는 있지만, 글자들이 모두 '베어 죽이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은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서중서]]는 [[蔑]](업신여길 멸)에 대해서 '蔑에서는 눈과 눈썹으로 머리를 대신 나타낸 사람 모양과 창으로 사람의 몸을 찌르는 것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곧 창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갑골문 伐과 뜻하는 바가 같다. 蔑과 伐은 같은 글자였는데, 후세에 두 글자로 분화되었다.'라고 했다.<ref>, 손예철,『간명 갑골문자전』, 박이정, 2017, p.390</ref>
[[광무제|유수]](劉秀)가 서기 25년에 호()에서 제위에 올랐다. 이 때 적미병이 장안으로 들어가 유현을 죽이자 유수는 적미병을 토벌하고 도읍을 낙양으로 옮겼다. 이 나라를 후한이라 부르며, 왕망의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한나라 황실의 후예인 유수가 바로 후한의 [[광무제]]이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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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은 상나라 때에 사람을 제사의 제물로 바칠 때, 그 제물을 세는 단위였다. 묘지나 건물의 기초를 쌓을 때 사람의 머리나, 머리를 벤 시체를 같이 수장한 것이 자주 보인다.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벤 인간재물'이라고 이른다.<ref>, 허진웅,『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동문선, 1991, p.430</ref>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는 동한 말의 건안년간(196-219)로부터 수(隨)나라 개황 9년(589) 진(陳)나라가 멸망한 시기까지 400년 동안을 말한다. 이 시기는 크게 위·촉·오(魏·蜀·吳)의 삼국시대(三國時代), 진(晋), 5호16국(5胡16國)시대와 남북조(南北朝)시대로 나뉜다. <br>
 
삼국 시대(三國時代)는 2세기 말, 즉 위(魏)가 건립된 220년부터 오(吳)가 멸망한 280년까지 이르는 시기를 가리킨다. <br>
 
진(晋)은 서진(西晋, 265년 ~ 316년)과 동진(東晋, 317년 ~ 419년)으로 나뉜다. <br>
 
5호 16국 시대는 304년부터 439년까지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5개의 비한족과 16개의 국가가 여러 나라를 세우며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말한다. 5호(五胡)에서 호(胡)는 비한족을 낮춰 부르는 말로 다섯개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 5는 오행설(五行說)에 결부되어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오호는 “비한족계 여러 민족”이란 말로 해석된다. 16국은 북위 말엽 사관 최홍(崔鴻)이 쓴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서 유래하였으며, 실제로 5호 16국 시대에 세워진 나라의 숫자는 16개가 넘는다고 한다.<br>
 
남북조(南北朝)시대는 남조와 북조가 대립하게 되는 420년부터 수나라가 통일하는 589년까지를 가리킨다. 특히 남조는 크게 강남지역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4개 왕조의 흥망한 시기를 가리킨다
 
===[[삼국 시대]](三國時代)===
 
====[[위]](魏)====
 
====[[촉]](蜀))====
 
====[[오]](吳)====
 
===[[진]](晉)===
 
====[[서진]](西晉)====
 
====[[동진]](東晉)====
 
===[[5호 16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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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수]](隋)(581-619)==
 
==[[당]](唐)(618-907)==
 
==[[오대십국]](五代十國)(907-960)==
 
 
 
==[[송]](宋)==
 
===[[북송]](北宋)===
 
===[[남송]](南宋)===
 
==[[예케 몽골 울루스 - 대몽골국|원]](元)==
 
 
 
==[[명]](明)==
 
 
 
==[[청]](淸)==
 
 
 
==[[중화민국]](中華民國)==
 
===[[북양 정부]](北洋政府)===
 
===[[중화민국(국민정부)]](國民政府)===
 
===[[대만|중화민국(대만)]]===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분류:중국의 역사| ]]
 

2020년 12월 7일 (월) 18:17 판

語源

칠 벌.png

人과 戈로 구성되어, 무기로 사람의 목을 베는 모습을 그렸고, 이로부터 '목을 베다'와 '정벌하다', '자르다' 등의 뜻이 나왔고, 전공을 자랑한다는 뜻에서 '뽐내다', '자랑하다'의 뜻도 나왔다.[1]

文化

전쟁의 목적은 적을 복종시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있다. 아주 옛날 사람들은 아마 종교, 오락 또는 어떤 자극적인 것을 위해서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기에 전쟁의 주된 목적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주 무왕이 상을 정복하고 난 뒤, 그는 상의 영토와 백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1만 4천여 개의 고옥과 1만 8천 쌍의 옥 장식품을 노획했다. 이로부터 그가 상을 정복한 목저이 재물의 약탈에 있었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백성들은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였다. 가벼운 것은 추방되는 것이며, 좀더 가혹하게는 노예로 전락되며, 가장 심한 경우는 처형되는 것이다. 갑골문 伐은 적을 베어 희생물로 바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2]

이 글자의 파생글자로 간주되는 몇몇 금문에는, 잔혹한 장면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즉 손으로 갈래창을 힘있게 쥔 채 뒤쪽에서 사람을 내리치고 있는 모습, 다시 말해 목을 베는 장면이다. 또 다른 글자는 꿇어앉은 사람을 제사의 희생물로 삼는 모습이다. 이는 1860년대 중국의 모습을 담은 한 사진을 생각나게 한다 그 사진에는 웃통을 벗고 두 손은 묶인 채 허리를 굽힌 사람과 그 주위를 둘러싼 많은 구경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또 그의 변발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망나니의 조수도 보였다.[3]

갑골복사에 의하면 은나라 사람은 '강족(羌族)'을 제사 희생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이런 대량의 인간 희생은 아마도 사람의 머리만 잘라 사용했을 것이다. 희생의 법으로서 '벌강(伐羌)'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많다. 伐은 사람을 (창 과)에 걸어서 머리를 자르는 형태의 글자이다. (강)은 강족을 의미한다. 또한, 당시에 싸워서 이긴 경우, 상대의 주술력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적의 미녀(媚女, 샤면의 무녀)는 戈에 걸어 죽였다. 이를 나타난 글자가 (업신여길 멸)이다. 은 적의 미녀의 주술력을 없애는 의미였다. 같은 편에서 보면 이는 전쟁 공훈의 성과이다. 그래서 伐은 전쟁의 공훈, 전공의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4]

서중서(徐中舒)는 '갑골문 伐은 이체자가 상당히 많은데, 창으로 사람을 격살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도 있고, (도끼 월)이나 (도끼 근)과 같은 도끼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도 있다. 사람이 창이나 도끼를 손에 든 모양을 형상화하여, 베어 죽이는 행동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마음대로 베어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하면서, 베어 죽임을 당하고 죽어 죽이는 행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글자들이 모두 '베어 죽이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은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서중서(업신여길 멸)에 대해서 '蔑에서는 눈과 눈썹으로 머리를 대신 나타낸 사람 모양과 창으로 사람의 몸을 찌르는 것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곧 창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갑골문 伐과 뜻하는 바가 같다. 蔑과 伐은 같은 글자였는데, 후세에 두 글자로 분화되었다.'라고 했다.[5]

伐은 상나라 때에 사람을 제사의 제물로 바칠 때, 그 제물을 세는 단위였다. 묘지나 건물의 기초를 쌓을 때 사람의 머리나, 머리를 벤 시체를 같이 수장한 것이 자주 보인다.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벤 인간재물'이라고 이른다.[6]

  1. 하영삼,『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 2014, p.275
  2.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438
  3. ,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257,258
  4. , 시라카와 시즈카,『한자 : 기원과 그 배경』,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7, p.60,79
  5. , 손예철,『간명 갑골문자전』, 박이정, 2017, p.390
  6. , 허진웅,『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동문선, 1991, p.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