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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지아비 부.png

고대 예법에 따라, 남자는 20세가 되면, 관을 쓰고 머리를 묶어야만 했다. 그들이 이미 성년이라는 것을 표명한다. 부(夫)자는 대()와 일(一)을 따르고, “대(大)”는 사람을, “일(一)”은 머리를 묶는 비녀를 표시한다.
갑골문금문의 부(夫)자는 비녀를 머리에 꽂은 사람의 모양을 상형한 것이고, 그 본래 뜻은 성년의 남자를 가리킨다. 남자의 성년은 결혼을 성사한 사람이고, 그래서 “부(夫)”가 장부(丈夫)를 가리키는 말로 파생될 수 있었고, 여자의 배우자이며, ‘부인()’, ‘처()’와 상대된다.
성년이 되어 힘든 일을 떠맡기 시작하기에 부(夫)는 힘든 일 또는 일을 따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의 뜻을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어부, 농부 등이 있다.

文化

‘일(一)’과 ‘대(大)’로 구성되면 ‘천()’자가 되고 ‘大’와 ‘一’로 구성되면 ‘부(夫)’자가 된다. 이렇게 보면 사람과 하늘은 같은 것이다. ‘천(天)’자의 ‘一’은 ‘大’위에 덮어 썼으니 회의(會意)가 되고 ‘부(夫)’자의 ‘一’은 ‘大’의 머리를 꿰었으니 상형(象形)이 되기도 하고 회의(會意)가 되기도 한다.[1]
‘대(大)’의 의미는 ‘성인大’인데, 여기에 ‘일(一)’을 더함으로써 ‘키가 어느 정도에 달한 성인이 된 남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남성들은 전쟁에 참가할 수 있거나 혹은 노역에 종사할 수 있다. ‘성인 남성’이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볼 때, ‘부(夫)’와 ‘부()’는 동원자이고, 상고음도 같았다.[2]
중국의 통치 계급엔 경(), 대부(大夫), 사(士)의 체제가 있었는데 이는 춘추전국시대부터이다. 대부는 농부를 관리하던 사람이었고, 서주시대에는 노예를 셀 때 부(夫)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3] 후에 노예의 신분이 상승한 탓에 대부는 춘추시대에 들어서서 고급관료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쓰였다.
한 일(一)과 큰 대(大)로 구성된 지아비 부(夫)의 원형을 ‘두 이(二)’와 ‘사람 인(人)’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것은 고대 2부 2처제의 결혼제도에서 파생된 문자로 남편이 두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4] 설문해자의 여러 한계점 중의 하나는 소전에서 한자의 근원을 찾았다는데 있다. 갑골문까지 소급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이 불가능했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바 대부분의 글자는 모두 해서체에서 비롯되는데(혹은 금문), 지아비 부의 갑골문을 살펴본다면 ‘두 이(二)’와 ‘사람 인(人)’으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大자의 윗부부분에 가로획을 하나 더하면 '성인, 남편'이라는 뜻의 夫가 된다. 이 가로획은 일반적으로 성년의 머리칼임을 구별하기 위해 비녀를 덧붙여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녀는 사실 夫자가 암시하는 것처럼 단지 그렇게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즉 남자들은 비녀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의 여자들도 항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실은 상, 주나라 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에서도 증명된다. 당시 머리를 틀어 비녀를 꽂는다는 것은 성년이 됐음을 의미했다. 이는 마치 옛 처녀들이 땋은 머리를 올리면 결혼했음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비녀는 일종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즉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정교하고 아름다운 비녀를 꽂았던 것이다. 예컨대 부호는 일곱 종류의 서로 다른 비녀 499개를 갖고 있었다. 이는 갖가지 아름다운 머리 모양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둥물뼈를 둥글게 갈아 만든 비녀를 꽂았지만 국가적 의식에 참여할 때 꽂는 비녀가 따로 있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 비녀의 끝부분에는 새 모양으로 된 아름다운 옥구슬이 달려 있었다.[5]

  1.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540
  2. 류지성, 『문화문자학』, 문현, 2011, p.313
  3.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2009, pp.143-144
  4. 금유길, 『한자의 기원』, 무량수, 2011, p.242, 이 책은 갑골문보다 금문이 약 1천 년 정도 앞선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며 갑골문보다 금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5. ,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