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중서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동중서(董仲舒)

출생 B.C 179
사망 B.C 104
생존시기 나라
주요 작품 《동자문집(董子文集)》
《춘추번로(春秋繁露)》

동중서(董仲舒)(기원전 179 ~ 기원전 104)는 광천(廣川)[1] 사람으로 한 무제(武帝) 때 유교(儒敎)에 의한 사상통일을 주장하여 유교가 국교화 되는 기초를 만들었다.

생애

동중서는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사람으로 젊어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공부했고 한 경제(景帝) 때 박사가 되었다. 한 무제(武帝)는 즉위 초에 전국의 현량과 문학의 선비들을 천거하고 이들과 시무를 논하였는데 이때 동중서도 현량으로서 의견을 진술했다.
동중서는 현량대책(賢良對策)으로 백가(百家)를 몰아내고 유교에 의한 사상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이에 무제가 의견을 채용함으로써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설치하고 이로써 유가가 2천 년 넘게 중국 사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무제에게 인정을 받은 동중서는 일찍이 강도왕(江都王)과 교서왕(膠西王) 아래 상(相) 대신을 지냈으며 후에 병을 핑계로 퇴직하여 학문과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큰 일이 생기면 늘 정위(廷尉:사법장관)인 장탕(張湯)이 직접 그의 집에 찾아가 해결 방법을 상의했다고 한다.

사상

天과 음양오행

동중서는 기존의 유가사상에 음양가(陰陽家)의 종교적 체계를 결합했다.
그가 말하는 하늘은 서주(西周)시대의 천명사상처럼 만물을 창조하는 자이며, 만물을 주제하는 자이며, 도덕의 근원자라는 종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이 사상에 당시 유행하던 음양오행(陰陽五行)설을 나름대로 변용해서 만물을 초월하여 만물을 파생시킨다고 하는 천(天)・지(地)・인(人)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십수(十數)’ 혹은 ‘십단(十端)’이라고 하는 우주의 선천모식을 만들었다. 또한 하늘이란 여러 신들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 다른 신들은 별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늘은 지고무상한 지위와 존엄을 지니고 있고, 인격적인 인애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하늘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 역시 지니고 있다고 했다.

천인감응

음양가의 논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동중서는 자연계에서 같은 부류끼리 서로 같이 움직이는 감응현상을 보고 동류상동(同類相動)을 주장했고, 같은 부류끼리 서로 같이 움직이는 이유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면서 하늘과 인간은 서로 같은 부류, 즉 천인동류(天人同類)이기 때문에 서로 같이 움직인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펼쳤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늘이 결정하며 자연계의 모든 만물 역시도 하늘의 의지대로 움직이므로, 군왕 역시도 하늘이 내려준 인물이며 신성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하늘은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은 하늘 없이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또한 “하늘은 덕 있는 자를 황제로 삼는다.”, “황제는 곧 천자이다.” 등의 주장으로 왕권 강화에 힘을 썼다. 그가 이처럼 강력히 왕권강화를 주장한 이유는 전국시대 이후 끊임없이 일어나던 전쟁과 봉기를 미연에 방지하여 강력한 통치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군주가 덕을 잃으면 하늘은 우선 재해와 괴이한 일로 경고를 한 다음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망하게 한다고 했고, 군주가 덕으로 잘 다스리면 하늘은 상서로운 조짐을 내려서 그를 장려한 다음 계속 잘하면 흥하게 한다고 했다.

성삼품설

동중서는 인성을 성인(聖人)의 성(性)과 중민(中民)의 성, 그리고 못난 사람(두소(斗筲))의 성으로 구분했다. 이것이 바로 성삼품설(性三品說)이다. 그는 성인의 성은 선천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교화할 필요가 없고, 못난 사람의 성은 선천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교화를 하더라도 선하게 될 수 없어서 성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며,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중민의 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선은 쌀과 같고 성은 벼와 같아서 성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니지만 선한 바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화를 통해 선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성삼품론에 의하면 중민계급만이 교회의 대상인데, 사람들의 대다수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중민계급은 선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교화를 통해 선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급을 말한다. 이 때 가르침을 베푸는 사람은 바로 군왕이므로 백성 된 자는 군왕의 뜻에 따라 피교육자로써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그는 공자의 고대 유가사상을 기초로 하면서 맹자순자의 인성론을 종합적으로 수용했다. 이러한 계급적인 교육관은 유가가 관학으로 자리 잡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봉건시대의 주류 사상으로 굳건할 수 있게 했다.

삼강오상

동중서는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윤리・정치제도를 건립했다. 그는 군주는 양(陽)이고 신하는 음(陰)이며, 아버지는 양이고 자식은 음이며, 지아비는 양이고 지어미는 음이라고 하면서 양은 귀하고 음은 비천하다는 원칙하에 삼강(三綱)을 말했다. 삼강이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는데, 이것은 군신관계, 부자관계, 부부관계의 필수적인 도덕적 규범을 마련했다. 그는 이러한 삼강(三綱)은 하늘의 뜻이며 음양의 도이기 때문에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삼강과 함께 맹자의 인(仁)・의(義)・예(禮)・지(智)에 신(信)을 더하여 오행의 도에 의거한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五常)을 말했다. 오상 역시 삼강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뜻이며 영원불변한 윤리규범이라고 했다.

문교정책

현량대책

한나라 초기의 정치 풍토는 도가의 영향을 받아 ‘무위사상(無爲思想)’이 만연되어 있었다. ‘무위사상’은 백성들에게 많은 휴식과 수양의 기회를 주었지만 백성들의 나태함과 허무함 등의 사회문제를 부각시켰다. 그래서 무제는 ‘무위’를 ‘유위(有爲)’로 전환할 수 있는 개혁안이 필요했다. 이 때 동중서는 《현량대책(賢良對策)》 삼편(三篇)을 제출했는데, 이 책은 특히 천인관계를 논했기 때문에 ‘천인삼책(天人三策)’이라고도 한다.

현량대책의 첫 번째 주장은, ‘유가를 부흥시키고 기타 학파를 배격하는 것’이다. 즉, 동중서는 ‘유위’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는 반드시 통일된 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법가의 법치주의로 인해 멸망한 진나라를 예로 들면서, 법치주의보다는 유가의 덕치주의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유가는 중국 봉건사회의 중심사상으로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유가를 기초로 한 사상적 통일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더욱 강화되어 엄격한 계급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태학(太學)을 부흥시켜 인재를 배양하는 것’이다. 그는 한나라가 우수한 인재를 얻지 못하는 원인이 산만하고 미흡한 교육정책에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한나라는 사학(私學)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각 학파를 통해 교육받는 인재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통치사상을 통일하기 위해서 먼저 국가가 인재를 교육하고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태학을 부흥시킨다는 것은 사학에서 중앙으로 교육통제권이 전환됨을 의미했다. 즉, 교권(敎權)을 국가가 가짐으로써 군왕에게 충성할 유가의 인재만이 등용될 수 있도록 주장했다.

세 번째는, ‘인재 선발과 임용을 중시하여 능력에 맞게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다. 당시는 각 학파의 이해관계가 인재등용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기 때문에 형평성 있는 인재배치와 국가가 주관하는 과거제도가 필요했다. 그는 국가가 주관하는 과거제도를 강화하고 구체적인 상벌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하며 임현사능(任賢使能)’을 주장했다. ‘임현사능’이란 능력과 덕을 겸비한 인재를 등용하고 배치해야 함을 뜻하며, 선발 및 배치된 인재의 사상은 유가가 지향하는 바와 일맥상통해야 함을 의미한다.

저서

저서에《동자문집(董子文集)》과《춘추번로(春秋繁露)》 등이 있다. 《춘추번로》는 동중서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저서이고 오늘날까지 현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영수,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창해(2006), ISBN 89-7919-738-1
  •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2010) ISBN 9788981074654
  • 김백현, 《중국철학사상사》, 차이나하우스(2006)
  • 박영진, 《중국교육사상가》, 도서출판 장서원(2005)
  •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경현(景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