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년 샤오핑(电影往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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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소년 샤오핑(电影往事)> -100년 중국 영화사 맛보기
<사진1> <영화소년 샤오핑> 속 노천극장

학기 초, 우리가 감상할 작품을 선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점적으로 본 요소는 영화에 반영된 시대상이었다. 역사적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더라도 그 당시를 잘 표현한 영화를 선택하고자 하였다. 역사적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더라도 그 당시를 잘 표현한 영화를 선택하고자 하였다. 중국 영화는 그 역사가 시작된 이래 100여 년 간, 중국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변화가 잘 투영된 결과물이다. 또한 현대에 일어난 각종 역사적 사건들에 밀접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에 따른 뚜렷한 시대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상영 영화로 선정한 <영화 소년 샤오핑>은 어떤 역사적 인물이나 특정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설정하진 않지만 중국 영화 감상 소모임으로서 의미 있는 첫 영화였다. 영화는 2004년 소강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문화대혁명 직후시기로 묘사한다. <사진 1>과 같이 그들은 어린 시절 같이 노천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여 주인공의 어머니는 노천극장에서 마을 사람들의 구박을 받기도 한다. 이를 통해 그 시절 중국인들에게 노천영화가 얼마나 밀접하고 친숙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시대적 배경 때문에 여 주인공 ‘링링’의 어머니는 문화대혁명 당시 아나운서로서, 실수로 금지된 곡을 방송에 내보내 한순간 나락으로 빠지기도 한다.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영화를 사랑하는 소년과 소녀가 우연히 다시 만나 한 번 더 영화를 매개체로 인연을 이어 나가게 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중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으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야기의 감동 말고도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다.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시대 별 대표 작품이 무엇인지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중국의 영화사는 도드라진 특징을 띄고 있어 영화 속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다. 영화 <영화소년 샤오핑>에서 엿볼 수 있는 영화는 <표 1>을 통해 알 수 있고 중국 영화의 세대별 특징은 <표 2> [1]와 같이 정리된다.

<길거리의 천사/1937/유안 무찌 연출,쩌우 쉬엔 주연>

전쟁 전 상하이에서 영화 산업이 일어난 시기부터 가장 사랑 받아온 작품 중 하나이다. 상하이가 일본에 함락되기 바로 직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비록 문화대혁명 시기에 상영 금지 당하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배급될 만큼 인기를 끈 작품 중 하나이다.

<철도 유격대/1956/짜오 밍 연출>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모험 영화는 반일 운동을 벌인 저항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논스톱으로 진행되는 액션과 빠르게 움직이는 기차 등 역동적인 장면들 덕분에 당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고 한다.

<빛나는 붉은 별/1974/리준, 리상 연출>

반일전쟁 당시 소년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 군대가 설립한 스튜디오에서 제작해 문화 혁명 당시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공산당 선전영화이다. 어린 선동자 판똥즈는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을 심어주기 위해 의도되었으며, 실제로 당시 많은 아이들이 그를 동경했다고 한다.

<뒷골목/1981/양안진 연출>

이 영화는 세 가지 다른 결말을 가진, 당시엔 대단히 실험적인 사랑이야기였다. 전통적인 공산당 선전영화의 틀을 완벽히 깼기에 더욱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 <어린 군인, 짱가/1963>, <붉은 등/1971>, <붉은 여성 파견대/1971>, <불굴의 승리> 등.
<표 1> <영화소년 샤오핑>속 영화
세대 내용
제 1세대 (1905~1931) 1905년 베이징에서 경극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그 연기 장면을 찍어 만든 <정군산>이 중국 최초의 영화이다. 이후 상하이, 광둥, 홍콩 등지를 중심으로 영화가 제작되었으나 경극이나 간단한 풍경을 영상으로 찍는 정도에 그쳤으며, 1913년 중국 영화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장스촨과 정정치우가 공동 제작한 <철없는 부부>를 기점으로 영화에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했다.
제 2세대 (1931~1949) 제 2세대 영화는 1931년 중국 최초의 유성영화 <여가수 홍무단>가 시초가 된다. 이 시기에는 오락적인 상업영화 외에도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의식 있는 감독들은 국내 정치적 혼란과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영화를 통해 일반 대중을 각성시키고자 노력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엔 영화산업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영화 또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초점이 맞춰 질 수 밖에 없었다.
제 3세대 (1949~1966)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영화산업은 국유화되어 국가정책의 선전을 우선적으로 표방하게 되었다. 즉, 제3세대 영화의 특징은 사회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혁명영화가 주류를 이루었고, 미학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준수하면서 민족적 특표징을 부각시키는 영상을 추종하였다. <소년병 장가>(1963)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수작으로 꼽힌다.
문화대혁명시기의 영화 (1966~1976) 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화는 시대적 상황이 증명하듯이 극히 제한적으로 제작되었다. 1970년까지 제작된 극영화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혁명모범극 영화는 진정한 의미의 영화에 포함시키기에는 형편없는 졸작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후반기로 접어들면 영화에 대한 정치적 간섭도 다소 줄어들어, 1973년 이후 문화대혁명 끝나는 3년간은 79편의 극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본래 모습을 점차 회복하게 된다.
제 4세대 (1976~1982) 문화대혁명 이후 탄탄한 영화 지식을 바탕으로 문화대혁명 기간의 예술적 공백을 메우고 제5세대의 영상예술을 이끌어 내는 중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제 5세대 (1982년 이후) 문화대혁명 이후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은 영화 인재를 첫 배출했다. 이들은 제 5세대라 불리며 중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주도한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중국의 역사와 민중의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려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기존의 영화와 다른, 단순한 줄거리에 의존하는 방식을 벗어나 화면과 색채를 통해 영상 언어의 탁월한 묘미를 화면에 담아냈고, 중국의 향토적 서정과 민족적 정취를 예술적인 기교로 전달함으로써 중국 영화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대표작<패왕별희(覇王別姬)>(1993).
제 6세대 (1990년 이후) 5세대를 이어 톈안먼 사태를 겪은 90년대 중반의 신흥 감독들은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 전혀 다른 뚜렷한 개성을 나타내며 등장했다. 대개 1960년 이후 출생한 이들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반역을 기치로 '지하영화' 또는 '6세대'라 명명되며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여 새로운 영상미학을 창조하는 데 주력한다.
제 7세대 (2000년대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영화 제작환경과 배급체계에 많은 변화가 생김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영화들이 만들어진다. 대개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이들은 영화의 상업성과 관객의 요구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 영화는 확실히 어느 특정한 양식이 흐름을 좌우하는 양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감독들이 상호 경쟁적 구도를 형성하며 영화계의 판도를 이어가고 있다.
<표 2> 중국영화 세대별 특징
  1. 김태만, 김창경, 박노종 외 1명, 『쉽게 이해하는 중국문화』, 다락원,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