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야연도리원서
원문
주석
1) 역려(逆旅): 객사와 같으며 여관을 의미한다. ‘역’은 마중하다, 곧 나그네를 맞이하는 곳.
2) 광음(光陰): ‘광’은 일, ‘음’은 월, 곧 세월을 말한다.
3) 부생(浮生): 인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인간 세상이 헛되고 안정됨이 없는 것을 부생이라고 한다.
4) 위환(爲歡): 즐겁게 노는 것을 가리킨다.
5) 병촉야유(秉燭夜遊): 촛불을 가지고 밤에 노는 것을 말한다. ‘병’은 잡다, 들다.
6) 양유이(良有以): 진실로 매우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양’은 진실로, 틀림없이. ‘이’는 원인, 근거.
7) 연경(煙景): 아지랑이 낀 봄날의 경관.
8) 대괴(大塊): 천지, 대자연을 의미한다. 《장자ㆍ제물론(莊子ㆍ齊物論)》에 “대자연이 트림한다”라 하였다
9) 가(假): 차(借)와 같은 의미로 ‘빌려주다’라는 뜻이다.
10) 문장(文章): 아름다운 색깔 혹은 무늬인데, 여기에서는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리킨다.
11) 방원(芳園): 꽃이 핀 정원.
12) 군계(群季): 여러 동생이란 뜻이다. 옛 사람들은 백(伯)ㆍ중(仲)ㆍ숙(叔)ㆍ계(季)로 형제간의 장유(長幼)의 순서를 의미하였다.
13) 혜련(惠連): 사혜련(謝惠連)을 말한다. 남조 송나라 진군(陳群) 양하(陽夏) 사람으로, 사령운(謝靈運)과 더불어 시를 잘 지었다.
14) 강락(康樂): 사령운을 말한다. 강락공(康樂公)에 봉해졌으므로 사강락이라고 한다.
15) 경연(瓊筵): 구슬방석. 화려한 연회 자리를 비유한다.
16) 좌화(坐花):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인 곳에 앉는다.
17) 우상(羽觴): 두 개의 귀가 달린 참새 모양의 술잔이다.
18) 취월(醉月): 달 아래에서 술에 취한다는 뜻.
19) 신(伸): 토로하다.
20) 금곡주수(金谷酒數): 진(晉)나라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園)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고 이 자리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술 세 말을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해설
이시의 저자인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더불어 성당(盛唐)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청신하고 화려한 시구에 자유분방한 천재적인 시풍과 도가적인 풍모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시선(詩仙)이라 불렀다. 하지장(賀知章)은 이백을 귀양온 신선[謫仙]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이태백집(李太白集)》 30권이 있다. <춘야연도리원서>는 이백이 봄날 화려한 정원에서 여러 형제들과 모여 잔치를 벌이며 서로 시와 부를 지으며 놀았는데, 이때 지은 시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면서 그 서문으로 쓴 글이다. 꽃피는 정원에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면서도 인생무상의 짙은 애수를 느끼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처음 시작부분에서 천지를 여관에, 시간을 나그네에, 인생을 꿈에 비유하고 있다. 당시 이백이 살던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60세가 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백은 이러한 세상을 잠시 왔다가 가는 여관으로 표현하여 인생무상의 짙은 애수를 나타내며 글을 시작하고 있다. 또한 인생을 ‘부생’이라 하여 알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떠다니는 삶은 연못 위의 부평초에 비유했다. 이 또한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이백은 촛불을 들고 밤늦게 까지 노닐던 옛사람들은 다름이 아니고 짧은 삶의 기쁨을 누리려는 것이니 이는 실로 당연한 것이라며 공감을 하고 있다. 이어서 봄날에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사랑하는 형제들과 시회(詩會)를 하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백이 시를 짓고 읊는 것을 ‘천지가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었다’라고 표현하였는데, ‘빌려주다’라는 것은 시를 짓는 능력 또한 이백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유효한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유한한 삶을 말하고 있다. 함께 시를 읊고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새 모양의 술잔을 주고받는 모습은 새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여 잔치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마지막에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시가 빠질 수 없다며 좋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자라는 부분에서는 술 한말에 시 백편을 지어내던 이백의 호방함이 드러난다.
감상
나는 이 작품이 삶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저번 주에 배운 왕희지의 난정집서에서도 인생의 유한성을 이야기 하며 그에 대한 슬픈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왕희지의 난정집서와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 나는 왕희지의 난정집서에서는 저자가 인생의 유한성을 슬퍼하고 한탄하며 영원함을 갈망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에서는 난정집서에서처럼 인생의 유한함을 똑같이 애석하게 여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인생을 더욱이 제대로 즐겨야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평소에 왕희지처럼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함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불안해하고 슬퍼한 경험이 많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우리의 삶은 영원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 순간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해하던 내 자신과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이백의 태도가 비교 되었다. 더불어 오늘날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기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쉬지도 못하고 불안해하며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지, 하나뿐인 짧은 인생의 행복을 제대로 누리며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백처럼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제대로 즐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