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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羞자는 羊자와 又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으로 양고기를 받들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羞자의 원래 의미는 음식을 받드는 것이었지만, 珍羞(보기 드물게 진귀한 음식)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 이 글자는 ‘부끄러움’ 혹은 ‘부끄러워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며, 이 글자의 본래 의미는 饈자로 표현된다. | 고대의 羞자는 羊자와 又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으로 양고기를 받들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羞자의 원래 의미는 음식을 받드는 것이었지만, 珍羞(보기 드물게 진귀한 음식)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 이 글자는 ‘부끄러움’ 혹은 ‘부끄러워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며, 이 글자의 본래 의미는 饈자로 표현된다. | ||
+ | 羞의 갑골문, 금문은 모두 손으로 양을 끌고 가는 상형문자다. 전서는 곧 손(手)이 丑(扭의 본래 글자)로 변했다. 扭는 양 한 마리를 잡고 다른 사람의 얼굴 앞에서 사죄하는 것을 나타낸다.<ref>廖文豪,『漢字樹 4』,(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ref> | ||
+ | 한자어원사전에서는 羊이 의미부이고 丑(소 축)자가 소리부인 형성자라고 한다.<ref>하영삼,『한자어원사전』(도서출판3, 2014)</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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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左传>에 기록된 바로는 춘추시대에 정백은 당시의 패자(맹주)였던 초장왕의 미움을 받았다. 초장왕은 엄하게 질책했다. 3개월이 지나 성을 포위한 후에 정나라를 쳐부수었다. 정백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위해, 양 한 마리를 잡고, 머리위의 동곳을 제거하고, 한쪽 상의를 벗은 몸으로 초장왕을 향해 죄를 자백하였고, 정나라를 바쳤다. 이러한 성의있는 행동은 초장왕을 감동시켰고, 그리하여 초장왕은 군대를 철수하고 떠났다고 한다. 또한 남당의 군주 이욱(李煜 li yu 李后主 이후주)는 송태조 조광윤에 윗옷 한 쪽을 벗고 양을 끌고 가(肉袒牽羊)맞이하였고, 승복을 표시하였다. 뜻밖에도 몇 년 후에 북송은 멸망했다. 휘와 흠 두 황제는 금나라 사람에 의해 포로로 잡혔고, 또한 윗옷 한 쪽을 벗고 양을 끌고 가 금나라 사람의 태조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ref>廖文豪,『漢字樹 4』,(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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羞자는 갑골문부터 전문시기의 형태에서도 모두 잘 드러나듯이 羊자와 '손'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갑골문부터 금문시기의 손의 모양은 又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문시기의 손 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형태가 살짝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형태는 손의 모양을 상형한 丑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묶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ref>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염정삼, 서울대학교 출판부, p.721</ref> | 羞자는 갑골문부터 전문시기의 형태에서도 모두 잘 드러나듯이 羊자와 '손'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갑골문부터 금문시기의 손의 모양은 又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문시기의 손 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형태가 살짝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형태는 손의 모양을 상형한 丑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묶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ref>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염정삼, 서울대학교 출판부, p.721</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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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의미가 담긴 '진수성찬(珍羞盛饌)'이라는 단어도 쓰이지만 이보다는 '부끄러움'의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데, 대표적인 단어로는 '수치(羞恥)'와 사단(四端)의 하나로써 자기(自己)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 수 있다. | 본래의 의미가 담긴 '진수성찬(珍羞盛饌)'이라는 단어도 쓰이지만 이보다는 '부끄러움'의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데, 대표적인 단어로는 '수치(羞恥)'와 사단(四端)의 하나로써 자기(自己)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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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4일 (일) 22:31 기준 최신판
語源
고대의 羞자는 羊자와 又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으로 양고기를 받들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羞자의 원래 의미는 음식을 받드는 것이었지만, 珍羞(보기 드물게 진귀한 음식)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 이 글자는 ‘부끄러움’ 혹은 ‘부끄러워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며, 이 글자의 본래 의미는 饈자로 표현된다. 羞의 갑골문, 금문은 모두 손으로 양을 끌고 가는 상형문자다. 전서는 곧 손(手)이 丑(扭의 본래 글자)로 변했다. 扭는 양 한 마리를 잡고 다른 사람의 얼굴 앞에서 사죄하는 것을 나타낸다.[1] 한자어원사전에서는 羊이 의미부이고 丑(소 축)자가 소리부인 형성자라고 한다.[2]
文化
<左传>에 기록된 바로는 춘추시대에 정백은 당시의 패자(맹주)였던 초장왕의 미움을 받았다. 초장왕은 엄하게 질책했다. 3개월이 지나 성을 포위한 후에 정나라를 쳐부수었다. 정백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위해, 양 한 마리를 잡고, 머리위의 동곳을 제거하고, 한쪽 상의를 벗은 몸으로 초장왕을 향해 죄를 자백하였고, 정나라를 바쳤다. 이러한 성의있는 행동은 초장왕을 감동시켰고, 그리하여 초장왕은 군대를 철수하고 떠났다고 한다. 또한 남당의 군주 이욱(李煜 li yu 李后主 이후주)는 송태조 조광윤에 윗옷 한 쪽을 벗고 양을 끌고 가(肉袒牽羊)맞이하였고, 승복을 표시하였다. 뜻밖에도 몇 년 후에 북송은 멸망했다. 휘와 흠 두 황제는 금나라 사람에 의해 포로로 잡혔고, 또한 윗옷 한 쪽을 벗고 양을 끌고 가 금나라 사람의 태조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3]
羞자는 갑골문부터 전문시기의 형태에서도 모두 잘 드러나듯이 羊자와 '손'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갑골문부터 금문시기의 손의 모양은 又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문시기의 손 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형태가 살짝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형태는 손의 모양을 상형한 丑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묶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4]
즉 손으로 양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양고기를 바친다는 뜻이다. 양고기가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드리다'라는 뜻이 생겼으며, 맛있는 음식을 내놓을 때에는 으레 겸손치레를 하기 마련이므로 '수줍어하다'나 '부끄러워하다'라는 뜻이 생겨난 것이다.[5]
본래의 의미가 담긴 '진수성찬(珍羞盛饌)'이라는 단어도 쓰이지만 이보다는 '부끄러움'의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데, 대표적인 단어로는 '수치(羞恥)'와 사단(四端)의 하나로써 자기(自己)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