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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代의 출토악기 중에는 壎(塤)이 있는데, 아직 갑골문에서 壎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여러가지 학설들이 존재하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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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代의 출토악기 중에는 壎(塤)이 있는데, 아직 [[갑골문]]에서 壎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여러가지 학설들이 존재하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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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鎮豪는 갑골복사의 기록 <ref> <49> ⧄其奏⧄三十⧄五牢。 『合集 32541』(… 을 연주하고 … 서른 … 다섯 희생을 바칠까요? </ref> 중 피리 모양의 글자가 壎을 나타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글자 역시‘奏’자와 함께 등장하고 있으므로 악기 명칭인데, 이 글자의 윗부분은 입으로 부는 구멍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주장된다. 따라서 도기 재질의 號角 혹은 壎 종류의 취주악기였을 것이라는 게 그 주장의 요지다. <ref> 김혜진, 「甲骨文을 통해서 본 商代의 音樂과 舞踊,」,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pp.53-54.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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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鎮豪는 갑골복사의 기록 <ref> <49> ⧄其奏⧄三十⧄五牢。 『合集 32541』(… 을 연주하고 … 서른 … 다섯 희생을 바칠까요? </ref> 중 피리 모양의 글자가 壎을 나타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글자 역시 ‘[[奏]]’자와 함께 등장하고 있으므로 악기 명칭인데, 이 글자의 윗부분은 입으로 부는 구멍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주장된다. 따라서 도기 재질의 號角 혹은 壎 종류의 취주악기였을 것이라는 게 그 주장의 요지다. <ref> 김혜진, 「甲骨文을 통해서 본 商代의 音樂과 舞踊,」,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pp.53-54.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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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健垣이라는 학자는, 다음의 글자가 갑골문자형이었음을 주장한다. 상대의 塤은 5개의 음공이 있는데 그 중 세 개가 앞에 있다. 2개는 위에, 1개는 아래 있어 사람의 눈코입을 묘사한 듯한 형상이 된다. <ref>따라서 상나라 사람들이 塤에 대한 상형문자를 만들려 했다면 얼굴이나 가면과 혼동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이라고 당건원은 주장하고 있다. </ref> 이를 단순화하면 品의 형이 된다. 또 그것을 간략화하여 구 대의 음공만을 사용하거나 뒤집은 형태, 오늘날 品으로 보이는 형상로 사용하기도 했다. 광동어의 방언연구에 따르면 塤(fen)과 品(ben)으로 끝이 en으로 끝날뿐 아니라 현 중국어의 f는 周 시대에는 b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두 단어는 塤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였으리라는 것이다. 더불어 고전 중국어에서 品은 입으로 연주하거나 음미하다는 뜻이다. 이 또한 品이 塤에서 발전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ref>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pp. 28-3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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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健垣이라는 학자는, 다음의 글자가 갑골문 자형이었음을 주장한다. 상대의 塤은 5개의 음공이 있는데 그 중 세 개가 앞에 있다. 2개는 위에, 1개는 아래 있어 사람의 눈코입을 묘사한 듯한 형상이 된다. <ref>따라서 상나라 사람들이 塤에 대한 상형문자를 만들려 했다면 얼굴이나 가면과 혼동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이라고 당건원은 주장하고 있다. </ref> 이를 단순화하면 品의 형이 된다. 또 그것을 간략화하여 구 대의 음공만을 사용하거나 뒤집은 형태, 오늘날 品으로 보이는 형상로 사용하기도 했다. 광동어의 방언연구에 따르면 塤(fen)과 品(ben)으로 끝이 en으로 끝날뿐 아니라 현 중국어의 f는 周 시대에는 b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두 단어는 塤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였으리라는 것이다. 더불어 고전 중국어에서 品은 입으로 연주하거나 음미하다는 뜻이다. 이 또한 品이 塤에서 발전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ref>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pp. 28-31.</ref>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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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南 輝縣 琉璃閣 150호 殷墓의 陶壎은 아랫부분이 평평하고 壎의 몸체가 계란형으로 되어있다. 壎이 세 개 있는데 하나가 크고 두 개는 작으며, 5개의 指孔을 열어 8개의 반음을 연속으로 연주할 수 있다. 이처럼 商代에 이미 이러한 질나팔의 제작이 규격화 되었고, 이렇듯 구조가 평면바닥에 계란형으로 정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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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南 輝縣 琉璃閣 150호 殷墓의 陶壎은 아랫부분이 평평하고 壎의 몸체가 계란형으로 되어있다. 壎이 세 개 있는데 하나가 크고 두 개는 작으며, 5개의 指孔을 열어 8개의 반음을 연속으로 연주할 수 있다. 이처럼 商代에 이미 이러한 질나팔의 제작이 규격화 되었고, 이렇듯 구조가 평면바닥에 계란형으로 정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br>
 
 
==언급==
 
 
곽박, 『이아』(석악)에 의하면  "壎은 흙으로 만든다". "큰 壎은 嘂라 칭한다, 큰 것은 거위알만한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평평하여 저울추모양이고 구멍이 6개이며, 작은 것은 달걀만하다고 하였다. 최초에는 구멍이 한 개 뿐이었으나 후에 증가했다." 라고 하고 있다. 塤은 篪(저이름 지)와 더불어 아악에서 사용하였는데, 화음이 좋았다고 한다.
 
곽박, 『이아』(석악)에 의하면  "壎은 흙으로 만든다". "큰 壎은 嘂라 칭한다, 큰 것은 거위알만한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평평하여 저울추모양이고 구멍이 6개이며, 작은 것은 달걀만하다고 하였다. 최초에는 구멍이 한 개 뿐이었으나 후에 증가했다." 라고 하고 있다. 塤은 篪(저이름 지)와 더불어 아악에서 사용하였는데, 화음이 좋았다고 한다.

2018년 12월 26일 (수) 00:00 판

語源

질나발훈.png

商代의 출토악기 중에는 壎(塤)이 있는데, 아직 갑골문에서 壎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여러가지 학설들이 존재하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설1.png

宋鎮豪는 갑골복사의 기록 [1] 중 피리 모양의 글자가 壎을 나타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글자 역시 ‘’자와 함께 등장하고 있으므로 악기 명칭인데, 이 글자의 윗부분은 입으로 부는 구멍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주장된다. 따라서 도기 재질의 號角 혹은 壎 종류의 취주악기였을 것이라는 게 그 주장의 요지다. [2]

설2.png

唐健垣이라는 학자는, 다음의 글자가 갑골문 자형이었음을 주장한다. 상대의 塤은 5개의 음공이 있는데 그 중 세 개가 앞에 있다. 2개는 위에, 1개는 아래 있어 사람의 눈코입을 묘사한 듯한 형상이 된다. [3] 이를 단순화하면 品의 형이 된다. 또 그것을 간략화하여 구 대의 음공만을 사용하거나 뒤집은 형태, 오늘날 品으로 보이는 형상로 사용하기도 했다. 광동어의 방언연구에 따르면 塤(fen)과 品(ben)으로 끝이 en으로 끝날뿐 아니라 현 중국어의 f는 周 시대에는 b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두 단어는 塤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였으리라는 것이다. 더불어 고전 중국어에서 品은 입으로 연주하거나 음미하다는 뜻이다. 이 또한 品이 塤에서 발전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4]

발굴된壎.png

河南 輝縣 琉璃閣 150호 殷墓의 陶壎은 아랫부분이 평평하고 壎의 몸체가 계란형으로 되어있다. 壎이 세 개 있는데 하나가 크고 두 개는 작으며, 5개의 指孔을 열어 8개의 반음을 연속으로 연주할 수 있다. 이처럼 商代에 이미 이러한 질나팔의 제작이 규격화 되었고, 이렇듯 구조가 평면바닥에 계란형으로 정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곽박, 『이아』(석악)에 의하면 "壎은 흙으로 만든다". "큰 壎은 嘂라 칭한다, 큰 것은 거위알만한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평평하여 저울추모양이고 구멍이 6개이며, 작은 것은 달걀만하다고 하였다. 최초에는 구멍이 한 개 뿐이었으나 후에 증가했다." 라고 하고 있다. 塤은 篪(저이름 지)와 더불어 아악에서 사용하였는데, 화음이 좋았다고 한다.

  1. <49> ⧄其奏⧄三十⧄五牢。 『合集 32541』(… 을 연주하고 … 서른 … 다섯 희생을 바칠까요?
  2. 김혜진, 「甲骨文을 통해서 본 商代의 音樂과 舞踊,」,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pp.53-54.
  3. 따라서 상나라 사람들이 塤에 대한 상형문자를 만들려 했다면 얼굴이나 가면과 혼동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이라고 당건원은 주장하고 있다.
  4.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pp. 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