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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 06:25 판
서시 西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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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시이광 施夷光 |
출생 |
춘추시대 (기원전 770~430년) 말기 |
국적 | 월나라 |
별칭 |
침어 沈魚 |
직업 | 오왕 부차의 후궁 |
배우자 |
오왕 부차 |
개요
서시는 춘추시대 말기 오왕 부차를 매혹시켜 오나라를 망하게 한 월나라의 절세가이다. 현대까지도 시와 소설 및 희곡같은 장르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전설적인 미인이다. 일반적으로 왕소군, 양귀비, 초선과 함께 중국 사대 미녀[1]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생애
관련 장소
관련 고사
서시에 대한 리텔링
부차가 자살하고 오나라가 멸망한 뒤 서시의 행방 여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구천이나 범려에게 살해되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범려와 함께 국외로 탈출했다는 설이다. 후한시대 조엽이 오월 지방의 민간전승을 기록하여 서시 전설의 기본 문헌이 된 『오월춘추(吳越春秋)』나 후한 원강(袁康)과 오평(吳平)이 쓴『월절서(越絶書)』, 당나라 때 육광미(陸廣微)가 오나라의 지리와 풍습을 기록한 『오지기(吳地記)』등은 모두 국외 탈출설을 취하고 있다.
오지기에서의 리텔링
범려가 서시를 오나라로 데려가는 도중에 사랑에 빠져 3년 동안 동거하면서 자식까지 낳았다는 내용이다. 이후에야 서시는 오나라에 가서 오왕 부차의 총애를 받았다. 따라서 오나라가 멸망했을 때 서시는 당연한듯 범려 곁으로 돌아와 함께 월나라를 떠났다는 것이다.
현대에 리텔링된 서시
기타
- 서시는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고 일컬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