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소식(蘇軾)의 리텔링) |
|||
55번째 줄: | 55번째 줄: | ||
송대 이후 이렇게 서시가 고국 월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바뀌는 한편, 범려는 '요사스러운 마귀'인 서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성실하게 임무를 완수한 뒤 명철보신(明哲保身)<ref>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ref>한 존재로 이상화된다. 그야말로 사대부적인 이상형이다. | 송대 이후 이렇게 서시가 고국 월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바뀌는 한편, 범려는 '요사스러운 마귀'인 서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성실하게 임무를 완수한 뒤 명철보신(明哲保身)<ref>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ref>한 존재로 이상화된다. 그야말로 사대부적인 이상형이다. | ||
− | =====[[소식(蘇軾) | + | =====[[소식]](蘇軾)의 리텔링===== |
물빛 반짝이는 맑은 날이 좋거니와 (水光瀲灩晴方好) <br/> | 물빛 반짝이는 맑은 날이 좋거니와 (水光瀲灩晴方好) <br/> | ||
산색 몽롱한 비올 때도 특별하네 (山色空蒙雨亦奇) <br/> | 산색 몽롱한 비올 때도 특별하네 (山色空蒙雨亦奇) <br/> | ||
61번째 줄: | 61번째 줄: | ||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다 어울리네 (淡妝濃抹總相宜) <br/> |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다 어울리네 (淡妝濃抹總相宜) <br/> | ||
이 시는 소식이 항저우 통판으로 재직하던 1073년에 지어진 것이다. 동일한 제목으로 쓴 시 2수 중에서 뒤의 시이다.<br/> | 이 시는 소식이 항저우 통판으로 재직하던 1073년에 지어진 것이다. 동일한 제목으로 쓴 시 2수 중에서 뒤의 시이다.<br/> | ||
− | 서시와 같은 미인은 본래 화장을 어떻게 하든지 아름답듯이 서호 역시 그렇다는 의미이다.<br/> 맑은 날이 본래 좋은 줄 알지만 비가 와도 좋은 것을 알기에는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듯이 인생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다. | + | 서시와 같은 미인은 본래 화장을 어떻게 하든지 아름답듯이 서호 역시 그렇다는 의미이다.<br/> 맑은 날이 본래 좋은 줄 알지만 비가 와도 좋은 것을 알기에는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듯이 인생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다. |
==참고 문헌== | ==참고 문헌== |
2019년 6월 25일 (화) 20:53 판
서시 西施 | |
---|---|
| |
본명 |
시이광 施夷光 |
출생 |
춘추시대 (기원전 770~430년) 말기 |
국적 | 월나라 |
별칭 |
침어 沈魚 |
직업 | 월나라의 스파이, 오왕 부차의 후궁 |
배우자 |
오왕 부차 |
목차
개요
서시는 춘추시대 말기 오왕 부차를 매혹시켜 오나라를 망하게 한 월나라의 절세가이다. 빼어난 미모로 인해, 시와 소설 및 희곡같은 장르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전설적인 미인이다. 일반적으로 왕소군, 양귀비, 초선과 함께 중국 사대 미녀[1]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생애
출생
서시의 본명은 시이광으로 춘추시대 월나라 저라촌(苧羅村)이라는 마을에 사는 나무꾼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광(夷光)이며, 범려에게 발탁되기 전까지 빨래를 하면서 사는 평범한 사람이였다고 한다. 서시의 고향인 저라촌은 동촌과 서촌으로 나뉘었으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시(施)씨였다고 한다. 서시는 저라촌의 서촌에 살았었기에 서시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스파이 수련시절
월나라의 구천은 와신상담하며 오나라 부차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고, 범려의 아이디어로 미인계에 대한 묘책을 세운다. 이에 따라 월나라의 전국각지에서 미인을 뽑게되고, 서시는 정단(鄭旦)이라는 미인과 함께 선발된다.
범려는 서시와 정단의 집에 각각 백 냥씩의 금을 주고 수레에 태워 수도로 보냈고, 서시가 도성으로 들어오는 날, 서시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범려는 "미인을 보려거든 1전씩 내라"는 내용의 포고문을 붙였고, 그녀의 전설적인 미모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로 인해, 서시가 궁에 들어가는 데에 사흘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범려는 그 수익금 전액을 국고에 바쳐 군자금으로 사용하게 했다. [2]
범려는 전문가들로 하여금 서시에게 가무와 몸가짐, 기본예절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는 법과 방중술(房中術)등 스파이로서 갖춰야할 교육을 시킨다. 서시의 미션은 오나라의 왕인 부차를 유혹하여 그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지도록 함으로써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에 있었다.
부차의 후궁
3년 동안 범려의 지시에 따라 모든 훈련을 완벽하게 익힌 서시는 정단과 함께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바치는 선물로 보내졌다. 부차는 서시를 보자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오자서가 이를 경계해 "하나라는 매희(妹喜)로 인해 망하고, 은나라는 달기(妲己), 주나라는 포사(褒姒)때문에 망했다. 미녀는 군주를 주색에 빠지게 해서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니 이들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간언했다. 하지만 부차는 두 미녀, 특히 서시를 총애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오나라는 차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부차는 왕손웅에게 서시를 위해 영임위에 관애궁을 짓게 하고, 온갖 보석으로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또한 향섭랑을 만들어,[3]서시가 그 위를 지날 때마다 신발 끄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도록 했다. 오늘날의 영암사 원조탑 앞의 작고 기울어진 주랑이 바로 향섭랑의 터이다. 부차는 서시를 위해, 산 위에 완화지, 완월지 그리고 오왕정이라는 연못을 만들고, 서시가 연꽃을 딸 때는 비단으로 돛폭을 만든 금범경을 탔다고 한다. 또한 성의 남쪽 장주원에서 사냥을 하며, 여름에는 소하만으로 피서가곤 하였다. 부차는 서시를 얻은 후부터 고소대에서만 기거하며 서시와 함께 가무, 산수를 즐기는 데에만 열중하였다.
결국, 서시를 위한 국고 낭비로 피폐한 상태에서 오나라의 군대는 기강은 해이해져 월나라와의 세 번의 전투에서 모두 패하고, 부차는 고소성까지 쫓겨간 후 자살했다. 부차가 자살하고 오나라가 멸망한 뒤 서시의 행방 여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구천이나 범려에게 살해되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범려와 함께 국외로 탈출했다는 설이다. 후한시대 조엽이 오월 지방의 민간전승을 기록하여 서시 전설의 기본 문헌이 된 『오월춘추(吳越春秋)』나 후한 원강(袁康)과 오평(吳平)이 쓴『월절서(越絶書)』, 당나라 때 육광미(陸廣微)가 오나라의 지리와 풍습을 기록한 『오지기(吳地記)』등은 모두 국외 탈출설을 취하고 있다.
관련 장소
===서호===
서호는 항저우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관련 고사
침어
강물에 비친 서시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물고기도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헤엄칠 생각을 잊고 가라앉아 버렸다는 뜻이다.
동시효빈
서시는 어렸을때부터 가슴앓이 병을 가지고 있어 늘 가슴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조차도 너무 아름다웟다고 한다. 옆 동네의 동촌의 추녀 동시(東施)가 서시의 찡그린 모습을 따라하였더니 더욱 못생겨 보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동시효빈(東施效顰)이라 하였는데, 자신의 주제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남을 흉내내는 것을 뜻한다.
관련 작품
제자(諸子)에서의 리텔링
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서시를 언급한 묵자의 친사편(親士篇)에서는 "서시가 강물 속에 빠짐은 그 미모 때문이다.(西施之沉,其美也)"라는 구절이 있다.
장자에서는 서시의 미모에 대해 세 번이나 언급되는데 위에서 언급한 동시효빈의 출처이기도 하다. 동시효빈 고사는 장자의 천운편(天運篇)에 나온다. 또한 제물론(齊物論)에도 서시가 두 차례 언급된다. 제물론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모장과 서시를 아름답게 여기는데,그들을 보면 물고기는 물 속으로 깊이 도망가고, 새는 하늘로 높이 날아가고, 사슴들은 빨리 달려 도망간다. 넷 가운데 누가 천하의 바른 미를 아는 것일까?(毛嬙西施人之所美也,魚見之深入,鳥見之高飛,麋鹿見之決驟,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라는 내용이 있다.[4]
맹자의 이루장구(離婁章句) 하(下)편에서 "서시같은 미인도 불결한 것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갈 것이며(西子蒙不潔,則人皆掩鼻而過之), 이와 반대로 비록 추악한 사람이라도 목욕재계를 하면 하느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齊戒沐浴,則可以祀上帝) [5]
오지기(吳地記)[6] 리텔링
춘추시대에 태어난 서시의 전설은 서서히 형태를 바꾸면서 2천년이 넘도록 전해져왔다. 그 변화의 흐름을 살펴볼 때, 고대부터 당나라 말기(9세기 말부터 10세기 초)까지는 범려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범려가 서시를 오나라로 데려가는 도중에 사랑에 빠져 3년 동안 동거하면서 자식까지 낳았다는 내용이다. 이후에야 서시는 오나라에 가서 오왕 부차의 총애를 받았다. 따라서 오나라가 멸망했을 때 서시는 당연한듯 범려 곁으로 돌아와 함께 월나라를 떠났다는 것이다.
오지기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범려와 서시 사이의 연애관계를 상징하는 민간전승은 폭넓게 퍼져있고 유의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래 이야기에서 서시는 월나라 정권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장기말에 불과했지만, 처음부터 범려와 사랑의 도피가 계획이 되었던 것이라면, 뚜렷한 자각을 가지고 산 여성이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송대의 장편 가곡 박미(薄媚)에서의 리텔링
서시 전설을 소재로 한 장편 가곡이나 희곡이 잇따라 지어진 송대 이후에는 극히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오나라가 멸망한 뒤 서시도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는 미녀라 하여 살해된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이런작품의 선구를 이루는 송대의 장편 가곡 박미(薄媚)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구천이) 명령했다.
"오나라가 멸망했는데 그 여자를 용서하면
월나라도 오나라와 똑같은 꼴이된다.
오나라는 원망하고 월나라도 의심한다.
공론에 따라 요사스러운 마귀는 제거해야 한다.
초승달처럼 구부러진 아름다운 눈썹을 가진 여인도
마침내 인어가 짠 비단에 목숨을 잃어
향기로운 뼈는 진흙이 되었다."
이것은 서시가 목 졸려 죽은 것을 암시한다. 또한 범려와 서시의 관계는 이 가곡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송대 이후 이렇게 서시가 고국 월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바뀌는 한편, 범려는 '요사스러운 마귀'인 서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성실하게 임무를 완수한 뒤 명철보신(明哲保身)[7]한 존재로 이상화된다. 그야말로 사대부적인 이상형이다.
소식(蘇軾)의 리텔링
물빛 반짝이는 맑은 날이 좋거니와 (水光瀲灩晴方好)
산색 몽롱한 비올 때도 특별하네 (山色空蒙雨亦奇)
서호의 경치를 서시에 비교한다면 (欲把西湖比西子)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다 어울리네 (淡妝濃抹總相宜)
이 시는 소식이 항저우 통판으로 재직하던 1073년에 지어진 것이다. 동일한 제목으로 쓴 시 2수 중에서 뒤의 시이다.
서시와 같은 미인은 본래 화장을 어떻게 하든지 아름답듯이 서호 역시 그렇다는 의미이다.
맑은 날이 본래 좋은 줄 알지만 비가 와도 좋은 것을 알기에는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듯이 인생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다.
참고 문헌
구성희,『한 권으로 읽는 중국 여성사』,이담 Books,2012
서영,『중국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책벗,2015
묵자 지음, 신동준 역주,『묵자 : 겸애와 비공을 통해 이상사회를 추구한 사상가 : 국내 최초 완역판 / 수정증보판』,인간사랑,2018
장자 지음, 안병주, 전호근 역주,『장자 (莊子)1』,전통문화연구회,2016
장자 지음, 안병주, 전호근 역주,『장자 (莊子)2』,전통문화연구회,2016
이석명,『장자, 나를 깨우다.』,북스톤,2016
맹자 지음, 김학주 역주,『신완역 맹자 (孟子)』,명문당,2002
기타
- 서시는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고 일컬어 진다.
각주
- ↑ 중국 4대 미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음.
- ↑ 범려는 사기에 따르면 훗날 제나라로 가서 상업에 종사해 거부가 되었는데 오늘날 중국인들은 그를 재신(財神)으로 떠받들고 있다.
- ↑ 향섭랑은 땅을 파서 큰 옹기를 묻어 평평하게 한 후 그 위를 다시 두꺼운 나무로 덮은 회랑이다.
- ↑ 세상에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비유이다.
- ↑ 인의(仁義)는 타고난 것이 아니므로 부족한 사람이라도 부단한 수양으로 이를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 ↑ 당나라 때 육광미(陸廣微)가 오나라의 지리와 풍습을 기록한 책임.
- ↑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