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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분석처럼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소수민족 지역의 GDP는 전국평균의 60% 수준으로, 매우 열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접어 들어서는 한족 지역과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 격차가 빠르게 해소됐는데, 이 이유로는 중국은 2000년대이후 후진타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화사회]]와 공동 발전의 기조 확립과 [[ | + | 위의 분석처럼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소수민족 지역의 GDP는 전국평균의 60% 수준으로, 매우 열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접어 들어서는 한족 지역과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 격차가 빠르게 해소됐는데, 이 이유로는 중국은 2000년대이후 후진타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화사회]]와 공동 발전의 기조 확립과 [[서부대개발]] 정책을 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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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대개발]] 정책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중국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공급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인 서기동수 사업과, 서부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동부 지역으로 송전하는 서전동송 사업, 칭하이에서 신장자치구까지 연결하는 칭장철로 사업, 남부의 풍부한 담수 자원을 물이 부족한 북부로 끌어오는 남수북조 사업이 그것이다. <ref>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의 서부대개발 정책 (중국 개황, 2012. 1. 3.)</ref> [[서부대개발]] 정책으로 소수민족지역의 GDP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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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는 [[일대일로]] 사업이 시행되면서 서부 소수민족 지역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서부(소수민족 지역)와 동부(한족 집중 지역)의 경제 격차는 존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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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쩌민]] 曰“당의 정확한 종교정책은 종교 신도들의 종교의 자유와 정상적 종교활동을 보호하고 있으며, 나아가 신도와 비신도 공민들의 상호 이해·화목한 관계를 촉진하고, 민족단결․사회안정․조국통일과 경제 및 문화의 발전을 위한 공동 노력을 옹호한다”<ref>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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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진타오]] 曰 “외국의 적대세력이 종교를 이용하여 국내로 잠입하는 사태는 막아야 하지만, 종교계의 독립자주·평등우호·상호존중의 기초 위에서 중국의 종교정책과 종교공작이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하겠다”<ref>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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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의 말을 고려해 볼 때, 중국의 종교적책의 성격은 온건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국에서는 신앙의 자유라는 것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보진 않는다. 신앙의 자유보다 국가가 상위 개념에 있으며, '외국의 적대세력'과 같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경우 신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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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정권이 집권하면서 소수민족의 종교 정책은 일변한다. 이전에 비해 강경해졌다는 것인데, 그 예로 '[[거극단화]]'를 들 수 있다. 거극단화란 2013~2014년에 걸쳐 빈번히 발생했던 신장자치구의 테러에 대응해, 이슬람 극단주의를 배제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는 종교의 자유 위에 국가의 안보 및 발전이 존재하고, 국가 안보 및 발전이 방해받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대대적인 종교 탄압을 하겠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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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극단화]] 조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교 문제만이 아니라, 중국 사회 전반의 종교 정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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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조)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아 아래와 같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는 극단화된 경우로서 금지한다.<br>(1)극단주의를 찬양 전파하는 경우<br>(2)타인의 종교의 자유에 간섭하거나, 타인을 종교활동에 참가하도록 강요하거나, 타인에게 종교활동 장소 제공·종교인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 제공을 강요하는 경우<br>(3)타인의 관혼상제나 유산상속 등에 간섭하는 경우<br>(4)타인·타민족·타종교신봉자의 교왕교류교융 및 공동생활을 방해하거나, 타민족·타종교 신봉자가 거주지를 벗어나는 것을 간섭하는 경우<br> (5)문화오락 활동에 참견하거나, 방송과 티브이 등 공공 콘텐츠와 서비스를 배척하고 시청을 거절하는 경우<br>(6)할랄 개념을 확대하거나, 할랄 개념을 할랄식품 이외의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거나, 할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타인의 세속적 생활을 배척하거나 참견하는 경우<br>(7)자기 스스로 얼굴을 가리는 너울이나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거나 극단화와 연관된 표식을 착용하거나, 타인에게 입고 착용하도록 강요하는 경우<br>(8)비정상적인 수염을 기르거나 종교적 열광을 드러내는 이름을 짓는 경우<br>(9)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교적 방식으로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br>(10)자녀의 의무교육을 허락하지 않아 국가 교육제도를 방해하는 경우<br>(11)위협 혹은 유혹을 통해 타인의 국가정책 수혜를 방해하거나, 고의로 거민신분증·호구증 등 국가법정문서나 국정화폐를 훼손하는 경우<br>(12)고의로 공공 혹은 사유 재물을 파괴하는 경우<br>(13)극단화된 내용의 저작물·출판물·영상물을 출판·인쇄·발행·거래·제작·적재·보관·복제·열람·복사·소지하는 경우<br>(14)고의로 산아제한정책의 실시에 대해 간섭하거나 방해하는 경우<br>(15)기타 극단화된 언급이나 행위””<ref>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 pp.7~8</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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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처럼 [[거극단화]] 정책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배제하기 위한 정책을 넘어서서, 종교 자체를 규제하려는 성격 또한 보이고 있다. | ||
+ | 현재 중국은 [[티베트자치구]]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민들이 종교적 자유를 주장하고, 독립 운동까지 주장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과거 정권과의 달리 강경하게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시진핑]] 정권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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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 자치구의 종교 상황은 [[티베트 독립운동 역사]] [[신장위구르자치구]] 참조 바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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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억 역, ⟨신중국 소수민족간부정책 60년⟩, 중국사 연구, 2011 | 김일억 역, ⟨신중국 소수민족간부정책 60년⟩, 중국사 연구,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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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재두,⟨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경제격차⟩, 중국과 중국학, 20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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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 중국연구 제78권, 2019 |
2019년 6월 26일 (수) 11:35 기준 최신판
한족(漢族) | 좡족(壯族) | 후이족(回族) | 먀오족(苗族) | 위구르족(維吾爾族) | 투자족(土家族) | 이족(彛族) | 몽골족(蒙古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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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설
중국은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다.(총 56개의 민족) 2011년을 기준으로 약 8.5%의 소수민족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한족이 약 91.5%)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장 제4조에 의거하여 소수민족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내용에는 평등, 공동발전, 언어 보존, 풍습의 자유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인구에서는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영토에서는 전혀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소수민족이 중국의 약 64%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영토 중에는 중국 발전의 핵심적인 자원이 분포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소수민족의 통합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소수민족 구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필요에 의한 임의적인 것이며, 약 70만명 정도가 식별되지 않은 소수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 1강 제 4조 전문
第四條 中華人民共和國各民族一律平等。國家保障各少數民族的合法的權利和利益﹐維護和發展各民族的平等﹑團結﹑互相關係。禁止對任何民族的歧視和壓迫﹐禁止破壞民族團結和製造民族分裂的行為。 國家根據各少數民族的特點和需要﹐幫助各少數民族地區加速經濟和文化的發展。 各少數民族聚居的地方實行區域自治﹐設立自治機關﹐行使自治權。各民族自治地方都是中華人民共和國不可分離的部份。 各民族都有使用和發展自己的語言文字的自由﹐都有保持或者改革自己的風俗習慣的自由。
제 4조 중화인민공화국 각 민족은 일률적으로 평등하다. 국가는 각 소수민족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고 각 민족의 평등․단결․상호협조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어떠한 민족에 대한 차별과 압박도 금지하고, 민족단결을 파괴하고 민족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국가는 각 소수민족의 특징과 필요를 근거로 각 소수민족지구가 경제․문화의 발전을 가속시키는 것을 돕는다. 각 소수민족 집거(聚居)지방은 구역자치를 실행하고 자치기관을 설립하고 자치권을 행사한다. 각 민족자치지방 모두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각 민족은 모두 자기의 언어문자를 사용하고 발전시킬 자유가 있고, 자기의 풍속습관을 유지하고 개혁할 자유가 있다.
배경
명분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명분상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고 있다. 1848년 마르크스는 독일 통일에 대해, 국가 중심의 중앙집권제를 주장한 바 있다. 이는 권력의 분산을 지양하는 것으로, 즉 민족 연방제에 대한 철저한 배재였다. 마를크스를 계승한 레닌은 민족구역 자치제를 시행했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이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여, 민족구역 자치제를 시행하고 있다. 덩샤오핑 또한 1993년 민족구역 자치제에 대해 "민족문제 해결에서 중국이 채택한 것"이며 "중국의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동화 정책과 유화 정책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의 방향성은 크게 동화(同化) 정책과 유화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 시대(60~70년대)를 동화 정책기로, 80년대 이후를 유화 정책기로 구분할 수 있다. 건국 초기에는 국가의 안정화를 목적으로, 소수 민족에게 자치권을 인정하고, 각 민족의 문화 및 풍습에 맞는 정책을 시행토록 했다. 한편 백화제방 백가쟁명 운동을 시작으로 소수민족에 대한 특별 정책을 비판하고 한족과 동일한 정책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문화대혁명 시기로 들어와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하는 중국 대통합을 내세우고 한족중심의 불평등한 사회를 반성하면서 '민족 문제=계급 문제'라는 도식화 속에서 소수민족의 자치구마저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적인 정책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나아가지 못했고, 덩샤오핑 시기에 들어와 유화 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1978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각 민족의 고유문화를 발전시키며 민족대표권을 보장하고 자치조례를 스스로 제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소수민족 간부를 양성한다' 등의 소수민족 자치 강화에 대한 규정을 추가하기도 했으며, 1984년에는 《민족구역자치법》이 개정되기도 한다. 소수민족의 문화 존중과 경제 발전을 내세우는 정책 기조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중화민족 다원 일체론
민속사회학자인 페이샤오퉁(費孝通)이 1988년 홍콩중문대학에서 개최된 심포지움에서 제시한 이론으로, 다시말해 중화민족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각 소수민족은 한족과 교류망을 형성해왔으며 때로는 중원의 패권을 갖기 위해 투쟁해왔으며, 이에 따라 한족과 소수민족은 '중화세계'를 공유하는 일종의 구성원이며, 애초에 '한족'조차도 역사속에서 여러 민족들과 융합해왔다는 것이다.
“네가 오면 내가 물러나고, 내가 오면 네가 가는(你來我去, 我來你去)” ->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我中有你, 你中有我)”
위 이론을 분석해보면, 중화민족론에는 크게 혈연적 연결성과 정치•문화적 연결성이라는 두가지 요소가 존재하고 있으며, 민족간의 이질성을 봉합하기 위해 제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중화민족론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자 이론에 불과하며, 현실에서 실증된 것은 아니다. 또한 위 개념의 바탕에는 사회주의의 몰락과 개혁개방 정책 속 혼란한 상황에서 이를 봉합하고 국가 통합을 위한 목적성이 내재해 있었다. 따라서 중화민족의 개념은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부 정책
1 민족 자치 정책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 정책은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 및 자치향으로 구분을해놓고 있다. 현재 5개 자치구, 30개 자치주, 120개 자치현 및 약 1,000여 개의 자치향이 존재하며 [[중화인민공화국민족구역자치법]]에 의거하여 시행되고 있다. 자치법을 요약하면, 위 법은 중화인민으로 소속된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공동번영과 발전을 위한 것으로, 모든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통일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치구는 비교적 높은 독립성이 보장되며 내몽고자치구(네이멍구자치구), 광서장족자치구, 티베트자치구(시짱자치구), 닝샤후이족자치구, 신장위구르자치구의 5개의 차지구가 설치되어 있다.
2 공동 발전 정책
빈부 격차 문제는 현대 중국의 핵심 정잼이었다. 절대 다수의 한족이 절대 다수의 재화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수민족들은 중국 영토의 약 64%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 위치가 도시와는 거리가 먼 변경이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빈부 격차 문제는 여전히 주목해야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고공행진을 하던 기간 중의 일부인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기간 동안 전국평균 GDP의 60%에 이르는 가장 낮은 1인당 GDP비율을 보였다는 것은 경제성장의 결과 소수민족지역의 거주자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1]
위의 분석처럼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소수민족 지역의 GDP는 전국평균의 60% 수준으로, 매우 열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접어 들어서는 한족 지역과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 격차가 빠르게 해소됐는데, 이 이유로는 중국은 2000년대이후 후진타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화사회와 공동 발전의 기조 확립과 서부대개발 정책을 들 수 있다.
서부대개발 정책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중국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공급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인 서기동수 사업과, 서부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동부 지역으로 송전하는 서전동송 사업, 칭하이에서 신장자치구까지 연결하는 칭장철로 사업, 남부의 풍부한 담수 자원을 물이 부족한 북부로 끌어오는 남수북조 사업이 그것이다. [2] 서부대개발 정책으로 소수민족지역의 GDP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는 일대일로 사업이 시행되면서 서부 소수민족 지역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서부(소수민족 지역)와 동부(한족 집중 지역)의 경제 격차는 존재한다.
3 민족 간부 정책
제 13기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총 2980명 중 소수민족 의원의 수는 438명으로 약 14.7%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아무리 작은 민족이더라도 그 민족을 대표하는 의원이 적어도 1명은 선출되어야한다는 불문율에 근거한다.
4 언어 문화 정책
56개 민족이 80여 종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보통 중국어로 통칭되는 한어(漢語)는 한족과 소수민족 가운데 회족(回族)과 만주족이 사용하며, 야오족(瑤族)의 경우는 3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며, 징포족(景頗族)・위구족(裕固族)은 두 종류의 언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토착어(소수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30개 정도는 문자를 함께 사용하며, 또한 20개 정도는 그 사용자의 수가 10,000명 이하이다.
소수민족의 언어 정책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문화대혁명 이후의 일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동화 정책을 반성하면서 소수 민족이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대대적인 제도적 조치가 시행됐다. 중국의 소수 민족 언어 정책의 기조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언어와 문자는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며, 언어 및 문자의 평등은 민족 평등의 대전제'이며 '민족 언어 및 문자의 사용은 민족의 생산발전의 전제'라는 것이다. 소수 민족이 고유의 언어를 지키는 것은 그 자체로 평등의 상징이자 자치구 내에서도 생산력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 속에서, 한어(漢語)의 위상이 높아지는 반면, 소수 민족의 언어가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다시말해, 중국의 전반적인 한어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의 정책 기조는 소수 민족의 언어를 보존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고, 이중언어 교육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게 된다. 한어(漢語)와 해당 소수 민족의 언어를 같이 배우게 되는 것이다.
5 풍습 및 종교 정책
오늘날 중국의 종교 정책은 기본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장쩌민 曰“당의 정확한 종교정책은 종교 신도들의 종교의 자유와 정상적 종교활동을 보호하고 있으며, 나아가 신도와 비신도 공민들의 상호 이해·화목한 관계를 촉진하고, 민족단결․사회안정․조국통일과 경제 및 문화의 발전을 위한 공동 노력을 옹호한다”[3]
후진타오 曰 “외국의 적대세력이 종교를 이용하여 국내로 잠입하는 사태는 막아야 하지만, 종교계의 독립자주·평등우호·상호존중의 기초 위에서 중국의 종교정책과 종교공작이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하겠다”[4]
위의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의 말을 고려해 볼 때, 중국의 종교적책의 성격은 온건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국에서는 신앙의 자유라는 것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보진 않는다. 신앙의 자유보다 국가가 상위 개념에 있으며, '외국의 적대세력'과 같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경우 신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권이 집권하면서 소수민족의 종교 정책은 일변한다. 이전에 비해 강경해졌다는 것인데, 그 예로 '거극단화'를 들 수 있다. 거극단화란 2013~2014년에 걸쳐 빈번히 발생했던 신장자치구의 테러에 대응해, 이슬람 극단주의를 배제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는 종교의 자유 위에 국가의 안보 및 발전이 존재하고, 국가 안보 및 발전이 방해받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대대적인 종교 탄압을 하겠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는 것이다.
거극단화 조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교 문제만이 아니라, 중국 사회 전반의 종교 정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제9조)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아 아래와 같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는 극단화된 경우로서 금지한다.
(1)극단주의를 찬양 전파하는 경우
(2)타인의 종교의 자유에 간섭하거나, 타인을 종교활동에 참가하도록 강요하거나, 타인에게 종교활동 장소 제공·종교인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 제공을 강요하는 경우
(3)타인의 관혼상제나 유산상속 등에 간섭하는 경우
(4)타인·타민족·타종교신봉자의 교왕교류교융 및 공동생활을 방해하거나, 타민족·타종교 신봉자가 거주지를 벗어나는 것을 간섭하는 경우
(5)문화오락 활동에 참견하거나, 방송과 티브이 등 공공 콘텐츠와 서비스를 배척하고 시청을 거절하는 경우
(6)할랄 개념을 확대하거나, 할랄 개념을 할랄식품 이외의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거나, 할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타인의 세속적 생활을 배척하거나 참견하는 경우
(7)자기 스스로 얼굴을 가리는 너울이나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거나 극단화와 연관된 표식을 착용하거나, 타인에게 입고 착용하도록 강요하는 경우
(8)비정상적인 수염을 기르거나 종교적 열광을 드러내는 이름을 짓는 경우
(9)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교적 방식으로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
(10)자녀의 의무교육을 허락하지 않아 국가 교육제도를 방해하는 경우
(11)위협 혹은 유혹을 통해 타인의 국가정책 수혜를 방해하거나, 고의로 거민신분증·호구증 등 국가법정문서나 국정화폐를 훼손하는 경우
(12)고의로 공공 혹은 사유 재물을 파괴하는 경우
(13)극단화된 내용의 저작물·출판물·영상물을 출판·인쇄·발행·거래·제작·적재·보관·복제·열람·복사·소지하는 경우
(14)고의로 산아제한정책의 실시에 대해 간섭하거나 방해하는 경우
(15)기타 극단화된 언급이나 행위””[5]
이처럼 거극단화 정책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배제하기 위한 정책을 넘어서서, 종교 자체를 규제하려는 성격 또한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은 티베트자치구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민들이 종교적 자유를 주장하고, 독립 운동까지 주장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과거 정권과의 달리 강경하게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시진핑 정권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각 자치구의 종교 상황은 티베트 독립운동 역사 신장위구르자치구 참조 바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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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경제격차 p12
- ↑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의 서부대개발 정책 (중국 개황, 2012. 1. 3.)
- ↑ 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
- ↑ 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
- ↑ 김영구,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신장 위구르사회에 대한 강경 정책의 심화 과정: ‘거극단화’의 달성을 목표로 한 종교정책의 추이를 중심으로 p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