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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登]]은 양손으로 음식을 담는 용기([[豆]])를 받쳐들고, 계단에 올라 신과 조상을 받들러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이다. 글자 윗부분에 두 발 이 있는데, 이는 빠른 속도로 위를 향해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서에서는 두 손을 생략해 없앴는데, 마치 "[[豆]]"를 들고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예서 [[登]]의 윗부분을 [[파일:오를등윗부분예서.png|30픽셀]]로 쓸 수 있는 것은 양발의 본래 뜻을 보존하여 지킨 것이다. <ref>王祥之(2009), 《图解汉字起源》, 109쪽</ref><br><br> | [[갑골문]] [[登]]은 양손으로 음식을 담는 용기([[豆]])를 받쳐들고, 계단에 올라 신과 조상을 받들러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이다. 글자 윗부분에 두 발 이 있는데, 이는 빠른 속도로 위를 향해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서에서는 두 손을 생략해 없앴는데, 마치 "[[豆]]"를 들고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예서 [[登]]의 윗부분을 [[파일:오를등윗부분예서.png|30픽셀]]로 쓸 수 있는 것은 양발의 본래 뜻을 보존하여 지킨 것이다. <ref>王祥之(2009), 《图解汉字起源》, 109쪽</ref><br><br> | ||
− | [[파일:신의승천.png|110픽셀|섬네일|왼쪽|제사 후 승천하는 신의 모습-登(예시)]]그러나 위의 주장은 발이 손보다 위에 있는 것을 설명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 판단된다. [[走]],[[奔]] 등의 많은 자형에서 발([[止]])이 다리가 있는 곳에 붙어있어, 발의 위치가 아무 곳에나 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의 설명에서는 손은 아래에, 발은 위에 있는 형태([[파일:갑골문오를등.PNG|20픽셀]])로 한 사람의 형태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위에 있는 자([[파일:오를등_위.PNG|15픽셀]])와 아래에 있는 자([[파일:오를등_아래.PNG|17픽셀]]) | + | [[파일:신의승천.png|110픽셀|섬네일|왼쪽|제사 후 승천하는 신의 모습-登(예시)]]그러나 위의 주장은 발이 손보다 위에 있는 것을 설명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 판단된다. [[走]],[[奔]] 등의 많은 자형에서 발([[止]])이 다리가 있는 곳에 붙어있어, 발의 위치가 아무 곳에나 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의 설명에서는 손은 아래에, 발은 위에 있는 형태([[파일:갑골문오를등.PNG|20픽셀]])로 한 사람의 형태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위에 있는 자([[파일:오를등_위.PNG|15픽셀]])와 아래에 있는 자([[파일:오를등_아래.PNG|17픽셀]])가 각각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시라가와 시즈카는 [[各]]의 ㅂ 은 축문 그릇으로, 夂은 밑으로 향해있는 발로 보아, [[各]]은 신의 하강하는 발의 형상으로 보았다. <ref>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세계》, pp.128-129</ref> 이와 같이, 신의 강림을 발로서 표현했다면 신의 승천 또한 발로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登]]는 [[各]]과 반대로 신의 승천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파일:갑골문오를등.PNG|20픽셀]]의 밑부분인 [[파일:오를등_아래.PNG|15픽셀]]은 신을 향해 공물을 바치고 있는 인간의 모습, 윗부분인 [[파일:오를등_위.PNG|17픽셀]]은 공물을 받고 빠르게 위로 승천하는 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 윗부분의 두 발은, 제사를 드려야만 강림하시는 신의 하강 속도에 비해, 신이 제사 후 소리소문 없이 하늘로 승천할 때의 더 빠른 속도감을 표현한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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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존하는 登의 갑골문은 두 개의 '止'와 '豆' 그리고 두 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혹 두 손 즉 收를 생략한 것도 있다. 서중서(徐中舒)는 이 갑골문들을 登자로 수록하고는 “제기(祭器)를 받쳐 들고 계단을 올라 신기(神祈)를 공경하는 뜻을 보여준다. 금문에서는 蒸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갑골문의 자형&자의와 연원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갑골문 登자는 두 손으로 제기에 담은 제물을 받쳐 들고 제단에서 신에게 예를 올리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ref>손예철 (孫叡徹), 《간명 갑골문 자전》, pp.71-72</ref> 진나라 소전은 登에서 두 손을 생략하고 두 발만 그려주는 글자를 보여주기도 한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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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의 마차는 크고 높았으며, 차체는 지면에서 70~80c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올라탈 수 없었다. 그래서 상나라의 고위층 귀족들은 받침대를 이용하여 탔을 것이다. '오르다' 또는 '올라타다'의 의미인 갑골문[[파일:갑골문오를등.PNG|20픽셀]]([[登]])자는 발판을 밟고 있는 두 발과 그것을 잡고 있는 두 손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이것은 '마차에 올라타다'라는 뜻을 지녔지만, 나중에 인신되어 어떤 것에 오르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다. <ref>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300쪽</ref><br> | 상나라의 마차는 크고 높았으며, 차체는 지면에서 70~80c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올라탈 수 없었다. 그래서 상나라의 고위층 귀족들은 받침대를 이용하여 탔을 것이다. '오르다' 또는 '올라타다'의 의미인 갑골문[[파일:갑골문오를등.PNG|20픽셀]]([[登]])자는 발판을 밟고 있는 두 발과 그것을 잡고 있는 두 손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이것은 '마차에 올라타다'라는 뜻을 지녔지만, 나중에 인신되어 어떤 것에 오르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다. <ref>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300쪽</ref><br> | ||
− | 그러나 위의 허진웅의 주장은 [[登]] 안의 [[豆]] 부분을 잘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豆]]는 원래 곡식이나 음식을 담는 굽 높은 제기(祭器)를 그린 자이다.<ref>하영삼(2014),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163쪽</ref> [[豆]]가 발받침대인 것보다는 제기(祭器)인 것이 더욱 신빙성 있어 허진웅의 주장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 + | 그러나 위의 허진웅의 주장은 [[登]] 안의 [[豆]] 부분을 잘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豆]]는 원래 곡식이나 음식을 담는 굽 높은 제기(祭器)를 그린 자이다.<ref>하영삼(2014),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163쪽</ref> [[豆]]가 발받침대인 것보다는 제기(祭器)인 것이 더욱 신빙성 있어 허진웅의 주장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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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登에 대해 설문해자에서는 “登은 수레에 오르는 것이다. 癶와 豆를 따른다. 수레에 오르는 모습을 본뜨고 있다. ([[파일:登 명서.png|20픽셀]])은 주문(籒文)의 登이고, 廾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이 해석에 보이는 주문은 갑골문의 자형과 마찬가지로, 두손에 낮은 걸상을 받들고 다른 사람이 두 발로 밟고 올라가게 하는 모습을 본뜨고 있다.<ref>허진웅 (許進雄), 《중국 문자학 강의》, 108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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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의. 癶(등질 발)과 豆(콩 두)로 구성되어, 굽 높은 제기에 담긴 음식이나 곡식을 신전으로 가져가 '드리는' 모습을 그렸으며, 이로부터 올리다, 오르다, 곡식이 익다, 장부에 기록하다 등의 뜻이 생겼다. 이후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廾(받들 공)이 더해져 공손하게 올림을 강조하기도 했으나 지금의 다시 원래의 자형으로 돌아갔다.<ref>하영삼(2014),《한자어원사전》, 165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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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1일 (금) 18:24 기준 최신판
語源
갑골문 登은 양손으로 음식을 담는 용기(豆)를 받쳐들고, 계단에 올라 신과 조상을 받들러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이다. 글자 윗부분에 두 발 이 있는데, 이는 빠른 속도로 위를 향해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서에서는 두 손을 생략해 없앴는데, 마치 "豆"를 들고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예서 登의 윗부분을 로 쓸 수 있는 것은 양발의 본래 뜻을 보존하여 지킨 것이다. [1]
그러나 위의 주장은 발이 손보다 위에 있는 것을 설명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 판단된다. 走,奔 등의 많은 자형에서 발(止)이 다리가 있는 곳에 붙어있어, 발의 위치가 아무 곳에나 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의 설명에서는 손은 아래에, 발은 위에 있는 형태()로 한 사람의 형태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 있는 자()가 각각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시라가와 시즈카는 各의 ㅂ 은 축문 그릇으로, 夂은 밑으로 향해있는 발로 보아, 各은 신의 하강하는 발의 형상으로 보았다. [2] 이와 같이, 신의 강림을 발로서 표현했다면 신의 승천 또한 발로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登는 各과 반대로 신의 승천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의 밑부분인 은 신을 향해 공물을 바치고 있는 인간의 모습, 윗부분인 은 공물을 받고 빠르게 위로 승천하는 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 윗부분의 두 발은, 제사를 드려야만 강림하시는 신의 하강 속도에 비해, 신이 제사 후 소리소문 없이 하늘로 승천할 때의 더 빠른 속도감을 표현한 듯 하다.
현존하는 登의 갑골문은 두 개의 '止'와 '豆' 그리고 두 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혹 두 손 즉 收를 생략한 것도 있다. 서중서(徐中舒)는 이 갑골문들을 登자로 수록하고는 “제기(祭器)를 받쳐 들고 계단을 올라 신기(神祈)를 공경하는 뜻을 보여준다. 금문에서는 蒸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갑골문의 자형&자의와 연원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갑골문 登자는 두 손으로 제기에 담은 제물을 받쳐 들고 제단에서 신에게 예를 올리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진나라 소전은 登에서 두 손을 생략하고 두 발만 그려주는 글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文化
상나라의 마차는 크고 높았으며, 차체는 지면에서 70~80c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올라탈 수 없었다. 그래서 상나라의 고위층 귀족들은 받침대를 이용하여 탔을 것이다. '오르다' 또는 '올라타다'의 의미인 갑골문(登)자는 발판을 밟고 있는 두 발과 그것을 잡고 있는 두 손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이것은 '마차에 올라타다'라는 뜻을 지녔지만, 나중에 인신되어 어떤 것에 오르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다. [4]
그러나 위의 허진웅의 주장은 登 안의 豆 부분을 잘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豆는 원래 곡식이나 음식을 담는 굽 높은 제기(祭器)를 그린 자이다.[5] 豆가 발받침대인 것보다는 제기(祭器)인 것이 더욱 신빙성 있어 허진웅의 주장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登에 대해 설문해자에서는 “登은 수레에 오르는 것이다. 癶와 豆를 따른다. 수레에 오르는 모습을 본뜨고 있다. ()은 주문(籒文)의 登이고, 廾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이 해석에 보이는 주문은 갑골문의 자형과 마찬가지로, 두손에 낮은 걸상을 받들고 다른 사람이 두 발로 밟고 올라가게 하는 모습을 본뜨고 있다.[6]
회의. 癶(등질 발)과 豆(콩 두)로 구성되어, 굽 높은 제기에 담긴 음식이나 곡식을 신전으로 가져가 '드리는' 모습을 그렸으며, 이로부터 올리다, 오르다, 곡식이 익다, 장부에 기록하다 등의 뜻이 생겼다. 이후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廾(받들 공)이 더해져 공손하게 올림을 강조하기도 했으나 지금의 다시 원래의 자형으로 돌아갔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