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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弁의 명칭은 3대에 따라 달랐다. 주나라 때는 '覍', 은나라 때는 '吁', 하나라 때는 '收'라고 칭했다. 주나라 때의 '覍'에서 '皃' 위의 ‘小’는 ‘弁’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廾’을 붙여쓴 것은 두 손으로 모자를 들고 머리에 쓰는 뜻을 나타낸다. | 한편, 弁의 명칭은 3대에 따라 달랐다. 주나라 때는 '覍', 은나라 때는 '吁', 하나라 때는 '收'라고 칭했다. 주나라 때의 '覍'에서 '皃' 위의 ‘小’는 ‘弁’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廾’을 붙여쓴 것은 두 손으로 모자를 들고 머리에 쓰는 뜻을 나타낸다. |
2020년 12월 23일 (수) 16:04 판
語源
‘弁’은 고대의 모자를 뜻하는 글자로, 『图释古汉字』에서는 몽골 군관의 가죽 모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설문』은 면류관(:옛 중국의 예식 모자)을 칭한다고 설명한다.[1] 정리하자면 ‘弁’은 고대 귀족 남자들이 예복에 맞추어 썼던 관을 가리키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
한편, 弁의 명칭은 3대에 따라 달랐다. 주나라 때는 '覍', 은나라 때는 '吁', 하나라 때는 '收'라고 칭했다. 주나라 때의 '覍'에서 '皃' 위의 ‘小’는 ‘弁’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廾’을 붙여쓴 것은 두 손으로 모자를 들고 머리에 쓰는 뜻을 나타낸다. 덧붙여, 왕균(王筠)은 『설문구독』에서 주나라의 ‘弁’이라는 이름은 크고 빛을 내는 '槃'에서 나오고, 은나라의 ‘吁’는 머리를 덮는다는 뜻의 ‘幠’에서 나왔으며, 하나라의 ‘收’는 머리를 수렴(收斂)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였다.[2]
文化
‘弁’의 종류에는 조정에 출사할 때에 쓴 피변(皮弁=武冠)과 작변(爵弁=文冠)의 구별이 있었다. 피변은 흰 사슴 가죽을붙여 만들고, 작변은 면류관과 비슷하나 옥류가 달려 있지 않고 그 색깔은 붉은 색에 옅은 검정색을 띈 것이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