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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帝가 무엇을 형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크게 부푼 씨방을 가진 꽃의 모습을 형상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蒂(가시 체)의 본래 글자로, 역삼각형 모양으로 부풀어 있는 윗부분이 씨방이고, 중간 부분은 꽃받침, 아랫부분은 꽃대를 형상했다는 것이다. 꽃꼭지는 식물 번식의 상징이다. 정착 농경 사회로 들어서자 곡물이 인간의 생계를 이어주는 더없이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식물을 숭배하게 되었다. 또한, 번식은 동식물의 생명을 이어주는 가장 근본이 되는 것으로 식물 중에서도 번식을 상징하는 꽃 꼭지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577.</ref> | ||
− | 고대에 조상보다 더 높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들은 장작이 타올라 하늘로 치솟는 연기로써 하늘의 신과 소통하고자 했다. 갑골문 | + | 고대에 조상보다 더 높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들은 장작이 타올라 하늘로 치솟는 연기로써 하늘의 신과 소통하고자 했다. [[갑골문]]과 [[금문]]은 모두 장작 한 묶음의 형상이며, 맨 위의 한 획은 하늘을 나타낸다. 帝자는 훗날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통치자를 의미하게 되었다. 후대에 帝 위에 초두머리(艹)를 추가하여 특별히 꽃자루를 가리키는 글자가 되었으며, 帝와 갈라졌다.<ref>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2006, p.48.</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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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경사회에서 숭배 대상이었던 帝는 이후 지위가 점점 높아져 신중의 신으로 확정되어 자연계의 모든 신을 관장하고 인간의 길흉화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된다. 상나라 갑골문에는 帝에 대한 지극한 숭배와 상시적인 제사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하늘의 모든 신을 관장하는 帝를 인간세상 ‘신’인 임금과 관련지으면서, 상나라 후기에 들면 돌아가신 임금을 상제(上帝)라 부르게 된다.<br> | ||
+ | 그리고 하늘과 인간세상 모두를 관장하던 帝는 하늘만 제한적으로 관할하고 인간세상은 살아 있는 임금이 관장하는 것으로 분리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하늘의 신은 점점 인격화된 신으로 변해 갔고, 무게 중심은 현실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지상의 임금에게로 옮겨갔다. 이후 임금을 帝라 부르게 되었고 다시 황제(皇帝)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스스로를 황제의 시작이라 불렀던 시황제(始皇帝)에 이르러 帝는 최고의 인간신으로 변했다.<ref>하영삼, 『연상한자』, 예담차이나, 2004, p.49.</ref><br> | ||
+ | 상나라는 임금(帝)를 최고의 신으로 모시고 자신들이야말로 임금의 직계 자손이라고 내세웠다. 직계 자손이라는 것에 집착한 이유는 상나라에서는 임금의 직계 자손만이 임금을 모시는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 제을(帝乙), 제신(帝辛) 등의 왕이 자기 자신을 帝라고 칭하고, 왕과 신은 대등한 지위라며 자부하고 나서자 은나라는 멸망했다.<ref>시라가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2009, p.187.</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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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
2021년 2월 25일 (목) 23:01 기준 최신판
語源
帝가 무엇을 형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크게 부푼 씨방을 가진 꽃의 모습을 형상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蒂(가시 체)의 본래 글자로, 역삼각형 모양으로 부풀어 있는 윗부분이 씨방이고, 중간 부분은 꽃받침, 아랫부분은 꽃대를 형상했다는 것이다. 꽃꼭지는 식물 번식의 상징이다. 정착 농경 사회로 들어서자 곡물이 인간의 생계를 이어주는 더없이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식물을 숭배하게 되었다. 또한, 번식은 동식물의 생명을 이어주는 가장 근본이 되는 것으로 식물 중에서도 번식을 상징하는 꽃 꼭지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1]
고대에 조상보다 더 높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들은 장작이 타올라 하늘로 치솟는 연기로써 하늘의 신과 소통하고자 했다. 갑골문과 금문은 모두 장작 한 묶음의 형상이며, 맨 위의 한 획은 하늘을 나타낸다. 帝자는 훗날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통치자를 의미하게 되었다. 후대에 帝 위에 초두머리(艹)를 추가하여 특별히 꽃자루를 가리키는 글자가 되었으며, 帝와 갈라졌다.[2]
文化
농경사회에서 숭배 대상이었던 帝는 이후 지위가 점점 높아져 신중의 신으로 확정되어 자연계의 모든 신을 관장하고 인간의 길흉화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된다. 상나라 갑골문에는 帝에 대한 지극한 숭배와 상시적인 제사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하늘의 모든 신을 관장하는 帝를 인간세상 ‘신’인 임금과 관련지으면서, 상나라 후기에 들면 돌아가신 임금을 상제(上帝)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하늘과 인간세상 모두를 관장하던 帝는 하늘만 제한적으로 관할하고 인간세상은 살아 있는 임금이 관장하는 것으로 분리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하늘의 신은 점점 인격화된 신으로 변해 갔고, 무게 중심은 현실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지상의 임금에게로 옮겨갔다. 이후 임금을 帝라 부르게 되었고 다시 황제(皇帝)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스스로를 황제의 시작이라 불렀던 시황제(始皇帝)에 이르러 帝는 최고의 인간신으로 변했다.[3]
상나라는 임금(帝)를 최고의 신으로 모시고 자신들이야말로 임금의 직계 자손이라고 내세웠다. 직계 자손이라는 것에 집착한 이유는 상나라에서는 임금의 직계 자손만이 임금을 모시는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 제을(帝乙), 제신(帝辛) 등의 왕이 자기 자신을 帝라고 칭하고, 왕과 신은 대등한 지위라며 자부하고 나서자 은나라는 멸망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