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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골문과 초기 | + | 갑골문과 초기 금문의 공(工)자는 손잡이가 있는 날카로운 도끼의 모양이다. 여기서 도끼는 사람이 일할 때 쓰는 도구이고, 그래서 공(工)자의 본래 의미는 ‘공구, 도구’이다.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 장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장인이 일을 할 때는 세심하고 정교한 것이 요구됐기 때문에, 공(工)자는 ‘세심한, 정교한’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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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도끼를 쥐고 있는 모습. 도끼는 장인에게 ‘중요한 도구’로서 이용됨. | [1] 사람이 도끼를 쥐고 있는 모습. 도끼는 장인에게 ‘중요한 도구’로서 이용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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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工)’자는 목수가 일을 할 때 쓰이는 삼각자라고 보인다. 그러나 평소에 볼 수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 [2] ‘공(工)’자는 목수가 일을 할 때 쓰이는 삼각자라고 보인다. 그러나 평소에 볼 수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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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 + | [3] 돌 절굿공이: 잘 이겨놓은 진흙을 길게 만들어 한 층, 한 층 쌓아 도기의 형태를 만든 뒤, 돌 절굿공이로 다졌던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장식으로 쓸 도안을 박아 고대의 성벽, 건물을 만들었다. <ref>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261.</ref> 수많은 工의 자형 대부분이 육중한 밑바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工 흙을 다질 때 사용했던 돌로 해석하는데 이유가 된다. 그 윗부분은 손잡이나 자루로 생각된다. 이러한 ‘돌 절굿공이’를 사용하는 건축방식이 ‘판축법(版築法)’이다. 중국의 초기건축물은 흙을 기본 재료로 삼았다. 지금도 황하 유역을 가면 집터를 만들거나 담을 쌓아 올릴 때 판축법을 자주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황토를 건축에 적합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흙을 제대로 다지기만하면, 건물을 황토고원에 형성된 산들과 같은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고대의 성벽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중요한 예가 되는데,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만리장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판축법에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가 바로 돌 절굿공이다. 그러한 절굿공이가 그 지역의 가장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도구라는 뜻에서 工具(공구)의 뜻이 나왔고, 공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工匠(공장), 공구를 사용한 작업을 工程(공정)이나 工作(공작)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어떤 일에 뛰어나다는 뜻도 갖게 되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63.</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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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4] 주술도구 : 신을 섬기는 무당을 뜻하는 무(巫)에 대해 <설문해자>에서는 ‘여인이 춤을 추어서 신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工과 같은 뜻이다’라고 풀이한다. 악사(樂師)나 악인(樂人) 등과 같이 신을 섬기는 사람을 공축(工祝)이라고 하므로, 공이 신을 섬기는 일과 관련된 말임을 추측할 수 있다. 무(巫) 글자의 복문에는 ‘공(工)’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양이 있다.<ref>시라카와시즈카, “한자의세계”, 솔출판사, 2008, p.80.</ref> 工은 손으로 드는 물건이며 또한 주술적인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
+ | 특히나 시라카와 시즈카는 工은 신을 부르는 주술도구이고 口는 축문을 봉납하는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즉 왼손에는 주술도구를, 오른손에는 축문 그릇을 들라는 의례 용어인 것이다. 제사장이 사당 문(門) 앞에 축문 그릇을 놓고 신에게 아뢰는 것이 ‘물을 문(問)’이오, 신의 응답을 듣고자 애쓰는 것이 ‘숨을 암(闇)’이다. | ||
+ | 비슷한 의미에서 다른 문헌에서는 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갑골문에서 손에 쥔 망치로 두드리는 대상은 주로 악기로, 손에 막대기를 잡고 어떤 것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내는 자형과는 아주 다르다. 그래서 工의 갑골문은 아마 틀에 매달려 있는 경쇠와 같은 일종의 악기일 것이다. 工은 ‘장인’, ‘장인의 기술’뿐만 아니라 ‘악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에 음악은 귀신을 불러 복을 받을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음악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악사는 의식에 참여할 수 잇는 특수 계층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의 지위는 다른 장인보다 높았고 실제로 정부 관리와 대등하였다. 후대에 음악이 오락으로 간주되고 악사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지위는 낮아졌다. 처음에는 일반 관리와 더불어 모든 관리란 뜻의 백공(百工)이라 불렸지만, 후대에는 그들의 지위가 떨어져 결국은 다른 장인과 같은 위치가 되었다. 음악은 다른 기술처럼 기본적인 지식은 배우기 쉬워도 원숙해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공’자는 ‘정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ref>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169.</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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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또 어떤 사람들은 옥을 다듬는 과정이 다른 모든 기술직에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이 글자는 옥 조각들을 꿰어 놓은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ref>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169.</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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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혹자는 이 글자가 장의 곱자(ㄱ자) 또는 실을 감는 실패의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갑골문에 손에 망치를 잡고 어떤 물건을 치고 있는 또 하나의 글자인 攻(칠 공)이 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그림은 분명히 망치질할 대상이지, 나무를 자르거나 직선을 긋는데 사용된 도구는 아니다.<ref>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169.</ref> |
2022년 12월 23일 (금) 20:24 기준 최신판
語源
갑골문과 초기 금문의 공(工)자는 손잡이가 있는 날카로운 도끼의 모양이다. 여기서 도끼는 사람이 일할 때 쓰는 도구이고, 그래서 공(工)자의 본래 의미는 ‘공구, 도구’이다.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 장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장인이 일을 할 때는 세심하고 정교한 것이 요구됐기 때문에, 공(工)자는 ‘세심한, 정교한’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文化
[전통적 해석]
[1] 사람이 도끼를 쥐고 있는 모습. 도끼는 장인에게 ‘중요한 도구’로서 이용됨.
[2] ‘공(工)’자는 목수가 일을 할 때 쓰이는 삼각자라고 보인다. 그러나 평소에 볼 수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최근 해석]
[3] 돌 절굿공이: 잘 이겨놓은 진흙을 길게 만들어 한 층, 한 층 쌓아 도기의 형태를 만든 뒤, 돌 절굿공이로 다졌던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장식으로 쓸 도안을 박아 고대의 성벽, 건물을 만들었다. [1] 수많은 工의 자형 대부분이 육중한 밑바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工 흙을 다질 때 사용했던 돌로 해석하는데 이유가 된다. 그 윗부분은 손잡이나 자루로 생각된다. 이러한 ‘돌 절굿공이’를 사용하는 건축방식이 ‘판축법(版築法)’이다. 중국의 초기건축물은 흙을 기본 재료로 삼았다. 지금도 황하 유역을 가면 집터를 만들거나 담을 쌓아 올릴 때 판축법을 자주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황토를 건축에 적합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흙을 제대로 다지기만하면, 건물을 황토고원에 형성된 산들과 같은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고대의 성벽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중요한 예가 되는데,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만리장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판축법에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가 바로 돌 절굿공이다. 그러한 절굿공이가 그 지역의 가장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도구라는 뜻에서 工具(공구)의 뜻이 나왔고, 공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工匠(공장), 공구를 사용한 작업을 工程(공정)이나 工作(공작)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어떤 일에 뛰어나다는 뜻도 갖게 되었다.[2]
[4] 주술도구 : 신을 섬기는 무당을 뜻하는 무(巫)에 대해 <설문해자>에서는 ‘여인이 춤을 추어서 신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工과 같은 뜻이다’라고 풀이한다. 악사(樂師)나 악인(樂人) 등과 같이 신을 섬기는 사람을 공축(工祝)이라고 하므로, 공이 신을 섬기는 일과 관련된 말임을 추측할 수 있다. 무(巫) 글자의 복문에는 ‘공(工)’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양이 있다.[3] 工은 손으로 드는 물건이며 또한 주술적인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나 시라카와 시즈카는 工은 신을 부르는 주술도구이고 口는 축문을 봉납하는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즉 왼손에는 주술도구를, 오른손에는 축문 그릇을 들라는 의례 용어인 것이다. 제사장이 사당 문(門) 앞에 축문 그릇을 놓고 신에게 아뢰는 것이 ‘물을 문(問)’이오, 신의 응답을 듣고자 애쓰는 것이 ‘숨을 암(闇)’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다른 문헌에서는 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갑골문에서 손에 쥔 망치로 두드리는 대상은 주로 악기로, 손에 막대기를 잡고 어떤 것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내는 자형과는 아주 다르다. 그래서 工의 갑골문은 아마 틀에 매달려 있는 경쇠와 같은 일종의 악기일 것이다. 工은 ‘장인’, ‘장인의 기술’뿐만 아니라 ‘악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에 음악은 귀신을 불러 복을 받을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음악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악사는 의식에 참여할 수 잇는 특수 계층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의 지위는 다른 장인보다 높았고 실제로 정부 관리와 대등하였다. 후대에 음악이 오락으로 간주되고 악사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지위는 낮아졌다. 처음에는 일반 관리와 더불어 모든 관리란 뜻의 백공(百工)이라 불렸지만, 후대에는 그들의 지위가 떨어져 결국은 다른 장인과 같은 위치가 되었다. 음악은 다른 기술처럼 기본적인 지식은 배우기 쉬워도 원숙해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공’자는 ‘정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4]
[5] 또 어떤 사람들은 옥을 다듬는 과정이 다른 모든 기술직에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이 글자는 옥 조각들을 꿰어 놓은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5]
[6] 혹자는 이 글자가 장의 곱자(ㄱ자) 또는 실을 감는 실패의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갑골문에 손에 망치를 잡고 어떤 물건을 치고 있는 또 하나의 글자인 攻(칠 공)이 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그림은 분명히 망치질할 대상이지, 나무를 자르거나 직선을 긋는데 사용된 도구는 아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