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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과 역법(曆法)을 주관하고, 황실의 서가를 관장하였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 봉선대전(封禪大典)을 거행할 때 주남(周南)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죽기 전에 자신이 찬술하던 사서(史書)를 나중에 아들 [[사마천]]이 <<[[사기]](史記)>>로 완성했다. | 천문과 역법(曆法)을 주관하고, 황실의 서가를 관장하였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 봉선대전(封禪大典)을 거행할 때 주남(周南)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죽기 전에 자신이 찬술하던 사서(史書)를 나중에 아들 [[사마천]]이 <<[[사기]](史記)>>로 완성했다. | ||
2016년 5월 13일 (금) 18:31 판
생애
사마담(司馬談)(B.C. ? ~ B.C. 110)은 전한 하양(夏陽, 섬서성 한성) 사람이다. 자는 백달(伯達)이고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이 그의 아들이다. 당도(唐都)에게 천문학을 배웠고, 양하(楊何)에게 <<주역(周易)>>을 배웠으며, 황생(黃生)에게 도가(道家의) 이론을 익혔다. 무제(武帝) 건원(建元)과 원봉(元封) 연간에 걸쳐 태사령(太史令)의 관직에서 관리 생활을 했다.
천문과 역법(曆法)을 주관하고, 황실의 서가를 관장하였다. 원봉 원년(기원전 110) 봉선대전(封禪大典)을 거행할 때 주남(周南)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죽기 전에 자신이 찬술하던 사서(史書)를 나중에 아들 사마천이 <<사기(史記)>>로 완성했다.
저서
저서에 음양가(陰陽家)와 유가(儒家), 묵가(墨家), 명가(名家), 법가(法家), 도가(道家)의 학설을 총결한 <<논육가요지(論六家要旨)>>가 있다
참고문헌
-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0, ISBN 9788981074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