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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북 출신의 장각이 창시한 주술적인 색채가 강한 신흥종교단체를 말한다. 태평도는 황제와 노자의 사상을 추앙하는 황로도를 기본으로 해 여러 민간신앙을 섞어 질병을 치료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주술로 인기를 얻었다. 태평도는 훗날 오두미도와 함께 위진남북조시기에 도교로 발전했다. 오두미도는 사천지역에서 장릉이 창시해 그 손자인 장로까지 이어진 종교이다. 이들도 태평도와 비슷하게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인심을 얻었으며, 신도를 규합해 사천지역에서 3대에 걸친 종교왕국을 성립했다. 오두미도란 명칭은 질병이 치유되면 쌀 5두를 바치는 데서 비롯되었다. . | + | 하북 출신의 장각이 창시한 주술적인 색채가 강한 신흥종교단체를 말한다. 태평도는 황제와 노자의 사상을 추앙하는 황로도를 기본으로 해 여러 민간신앙을 섞어 질병을 치료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주술로 인기를 얻었다. 태평도는 훗날 오두미도와 함께 위진남북조시기에 도교로 발전했다. 오두미도는 사천지역에서 장릉이 창시해 그 손자인 장로까지 이어진 종교이다. 이들도 태평도와 비슷하게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인심을 얻었으며, 신도를 규합해 사천지역에서 3대에 걸친 종교왕국을 성립했다. 오두미도란 명칭은 질병이 치유되면 쌀 5두를 바치는 데서 비롯되었다. |
+ | ===태평도·오두미도가 유행하게 된 배경=== | ||
+ | 태평도와 오두미도의 확대는 단순한 종교교단의 확대가 아니라 향리공동체의 붕괴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원래 한대에는 농민의 공동의식이 강화되고 향리의 전통적인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호족의 성장에 의해 이러한 공동의식이 붕괴되자 농민들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환관과 외척의 대립으로 인해 농민들에게 무관심하였고, 과중한 부역의 부담은 곧 소농민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여기에 자연재해와 토지의 상실은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때 나타난 주술적인 경향은 띤 두 종교는 농민의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해 줄 뿐 아니라, 그들을 경제적으로도 교단조직에 의지하게 만들어 신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
2016년 5월 14일 (토) 14:00 기준 최신판
하북 출신의 장각이 창시한 주술적인 색채가 강한 신흥종교단체를 말한다. 태평도는 황제와 노자의 사상을 추앙하는 황로도를 기본으로 해 여러 민간신앙을 섞어 질병을 치료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주술로 인기를 얻었다. 태평도는 훗날 오두미도와 함께 위진남북조시기에 도교로 발전했다. 오두미도는 사천지역에서 장릉이 창시해 그 손자인 장로까지 이어진 종교이다. 이들도 태평도와 비슷하게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인심을 얻었으며, 신도를 규합해 사천지역에서 3대에 걸친 종교왕국을 성립했다. 오두미도란 명칭은 질병이 치유되면 쌀 5두를 바치는 데서 비롯되었다.
태평도·오두미도가 유행하게 된 배경
태평도와 오두미도의 확대는 단순한 종교교단의 확대가 아니라 향리공동체의 붕괴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원래 한대에는 농민의 공동의식이 강화되고 향리의 전통적인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호족의 성장에 의해 이러한 공동의식이 붕괴되자 농민들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환관과 외척의 대립으로 인해 농민들에게 무관심하였고, 과중한 부역의 부담은 곧 소농민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여기에 자연재해와 토지의 상실은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때 나타난 주술적인 경향은 띤 두 종교는 농민의 개인적인 고민을 해결해 줄 뿐 아니라, 그들을 경제적으로도 교단조직에 의지하게 만들어 신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