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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 (화) 19:14 판
목차
표호란
표장(票庄) 또는 회태장(汇兑庄)이라고도 불리며, 청나라 시기부터 전문적으로 환 업무를 담당했던 금융기구이다. 표호를 처음으로 만든 곳이 산서(山西)성의 상인들이었다. 때문에 대표적으로 표호를 지칭할 때, 산서표호를 빼놓을 수 없다.
산서상인이 표호를 만든 이유
비교적 풍부한 물자
건륭제시기때, 산서지역에는 부유한 자본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거대한 자본가와 상인들의 출현은 자본조달과 환 업무에 관한 도움이 증가했다.
자본의 운영활동 필요
산서상인들은 장거리 물건판매에 종사하는 상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들은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사회에서 돈을 끌어다 모았다. 예를 들면, 복건성의 무이차(武夷茶), 안휘성의 곽산차(霍山茶) 등의 상품을 수로를 거쳐 북쪽지역까지 운송판매를 맡았다. 수천 리나 되는 운송 거리와 엄청난 자본물량, 느린 자본회전속도, 엄청난 물건값 등의 상황에서 산서상인들은 상업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위해 처음에는 장국(账局)을 설립하여 기본적인 예금업무를 관리하였다. 이는 나중에 표호의 토대가 되었다.
상점 간의 필요
산서상인의 상점은 전국각지에 분포했고, 이는 일정 규묘의 상업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각지에 있는 상점의 이익은 산서에 있는 본점으로 돌아오고, 계속 영업을 위해 분점으로 자본의 조달이 발생하였다. 과거에는 표행(镖行)이라는 기구가 안전하게 자본조달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건륭제 이후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표행은 자기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본조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표행이 했던 역할을 점차 표호가 맡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