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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중(郎中)의 직무는 궁문을 지키고 수레나 말을 모는 등 황제를 시종하는 일이었다. 한나라 때의 낭관(郎官)은 의랑(議郞), 중랑(中郞), 시랑(侍郞), 낭중(郎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의랑과 중랑은 연봉 6백석에 버금갔고 시랑은 연봉 4백 석에 버금갔다. 낭중은 그 중 가장 낮아 3백석이었다. 낭관은 정해진 인원이 없었으며 많은 경우에는 천 명 이상을 둘 수 있었다.<br> | + | '''낭중'''(郎中)의 직무는 궁문을 지키고 수레나 말을 모는 등 황제를 시종하는 일이었다. 한나라 때의 낭관(郎官)은 의랑(議郞), 중랑(中郞), 시랑(侍郞), 낭중(郎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의랑과 중랑은 연봉 6백석에 버금갔고 시랑은 연봉 4백 석에 버금갔다. 낭중은 그 중 가장 낮아 3백석이었다. 낭관은 정해진 인원이 없었으며 많은 경우에는 천 명 이상을 둘 수 있었다.<br> |
[[수]](隨), [[당]](唐)에서 [[청]](淸)나라 때까지 낭중은 상서(尙書)와 시랑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지만 청나라 말에 폐지되었다. | [[수]](隨), [[당]](唐)에서 [[청]](淸)나라 때까지 낭중은 상서(尙書)와 시랑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지만 청나라 말에 폐지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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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치엔쿤, <<사마천과 사기>>, 장세후 역, 연암서가, 2004, ISBN 978-89-94054-76-6 03990 | * 양치엔쿤, <<사마천과 사기>>, 장세후 역, 연암서가, 2004, ISBN 978-89-94054-76-6 03990 | ||
* 김영수,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창해, 2006, ISBN 89-7919-738-1 | * 김영수,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창해, 2006, ISBN 89-7919-738-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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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0일 (월) 15:49 기준 최신판
낭중(郎中)의 직무는 궁문을 지키고 수레나 말을 모는 등 황제를 시종하는 일이었다. 한나라 때의 낭관(郎官)은 의랑(議郞), 중랑(中郞), 시랑(侍郞), 낭중(郎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의랑과 중랑은 연봉 6백석에 버금갔고 시랑은 연봉 4백 석에 버금갔다. 낭중은 그 중 가장 낮아 3백석이었다. 낭관은 정해진 인원이 없었으며 많은 경우에는 천 명 이상을 둘 수 있었다.
수(隨), 당(唐)에서 청(淸)나라 때까지 낭중은 상서(尙書)와 시랑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지만 청나라 말에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양치엔쿤, <<사마천과 사기>>, 장세후 역, 연암서가, 2004, ISBN 978-89-94054-76-6 03990
- 김영수,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창해, 2006, ISBN 89-7919-7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