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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족은 제국의 교통을 위해 도로가 아니라 역참을 건설하였다. 몽골족은 칭기스 칸 시대 때부터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몇 킬로미터에 하나씩 역을 만들고 그 사이를 말들이 달리게 했는데, 이는 칸의 명령‧보고 사항들을 역에서 역으로 연결하여 신속하게 광활한 대지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몽골족은 기동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유목민이었기에, 말을 활용하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교통 네트워크를 창출‧운영했던 것이다. 몽골제국 당시 중국 안에 두어진 역참의 숫자는 1519개소에 이르렀고, 5만여 마리의 말‧노새, 9천여 마리의 소, 6천여 척의 배가 존재했다. 역참 네트워크는 황실의 정치‧재정을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상인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를 토대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망을 확립하였고, 이는 분명 동‧서 교류의 밑받침이 되었다. | + | : 몽골족은 제국의 교통을 위해 도로가 아니라 역참을 건설하였다. 이를 몽골어로는 '잠'이라고 불렀다. 몽골족은 칭기스 칸 시대 때부터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몇 킬로미터에 하나씩 역을 만들고 그 사이를 말들이 달리게 했는데, 이는 칸의 명령‧보고 사항들을 역에서 역으로 연결하여 신속하게 광활한 대지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몽골족은 기동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유목민이었기에, 말을 활용하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교통 네트워크를 창출‧운영했던 것이다. 몽골제국 당시 중국 안에 두어진 역참의 숫자는 1519개소에 이르렀고, 5만여 마리의 말‧노새, 9천여 마리의 소, 6천여 척의 배가 존재했다. 역참 네트워크는 황실의 정치‧재정을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상인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를 토대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망을 확립하였고, 이는 분명 동‧서 교류의 밑받침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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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1일 (화) 18:12 기준 최신판
- 몽골족은 제국의 교통을 위해 도로가 아니라 역참을 건설하였다. 이를 몽골어로는 '잠'이라고 불렀다. 몽골족은 칭기스 칸 시대 때부터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몇 킬로미터에 하나씩 역을 만들고 그 사이를 말들이 달리게 했는데, 이는 칸의 명령‧보고 사항들을 역에서 역으로 연결하여 신속하게 광활한 대지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몽골족은 기동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유목민이었기에, 말을 활용하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교통 네트워크를 창출‧운영했던 것이다. 몽골제국 당시 중국 안에 두어진 역참의 숫자는 1519개소에 이르렀고, 5만여 마리의 말‧노새, 9천여 마리의 소, 6천여 척의 배가 존재했다. 역참 네트워크는 황실의 정치‧재정을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상인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를 토대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망을 확립하였고, 이는 분명 동‧서 교류의 밑받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