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 퇴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중이는 공자 시절, 아버지의 애첩 여희의 모함으로 이순의 나이가 넘도록 유랑하게 된다. 그의 현복들은 국내로 다시 돌아와 왕위를 이...)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 | 중이는 공자 시절, 아버지의 애첩 여희의 모함으로 이순의 나이가 넘도록 유랑하게 된다. 그의 현복들은 국내로 다시 돌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고하지만, 이를 사양하고, 셋째 이오가 혜공이란 이름으로 왕위를 잇게 한다. 하지만 혜공은 자신보다 나이 많고 뛰어난 중이가 적국에 있다는 사실로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래서 혜공은 중이를 암살하려 했고, 중이는 유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 |
− | + | 제나라에 가는 도중 위나라에 머물렀는데, 위나라 왕으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다음 도착한 제나라에선 환공의 후대를 받아 그의 딸을 처로 삼고 80여필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공자의 위업을 위하는 일행의 반대로 강제로 수레에 실어졌고 진나라로 향하게 되었다. 일행은 우선 조나라에 도착하는데, 조나라 왕에게서 심한 푸대접을 받게 된다. 중이 일행은 다시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향한다. [[송양공]]은 그들을 후대해주었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나라라고 판단되어 갈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다음 도착한 정나라에서도 그들를 냉대하여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 |
− | + | 이렇게 많은 홀대와 냉대를 받으며 중이 일행은 초나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송양공과 마찬가지로 국군의 예의로 그들을 맞아주었고 향연을 베풀어 주었다. 초나라 성왕은 주연 자리에서 중이에게 농담 삼아 성공적으로 귀국하면 무엇으로 보답할지를 물었다. 그러자 초나라엔 왠만한 진귀한 물건들이 많았고, 그는 고심한 끝에 초나라에 3사 퇴보를 약속하였다. | |
{{인용문|그럼 이렇게 하지요. 장차 불행하게 귀국과 우리 진나라가 전쟁하게 된다면 나는 진나라 군대에게 3사를 양보하여 물러나도록 명령하지요|박인수|춘추전국의 패자와 책사들}} | {{인용문|그럼 이렇게 하지요. 장차 불행하게 귀국과 우리 진나라가 전쟁하게 된다면 나는 진나라 군대에게 3사를 양보하여 물러나도록 명령하지요|박인수|춘추전국의 패자와 책사들}} | ||
1사는 10리로, 전쟁시에 30리를 물러나겠다는 약속이었다. 초나라 대신 중에는 중이의 태도가 오만하다며 죽이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성왕은 이 약속을 받아들인다. 이후 정말로 초와 진이 전쟁을 벌일 때가 있었는데, 중이는 그때의 약속을 지켜 3사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 1사는 10리로, 전쟁시에 30리를 물러나겠다는 약속이었다. 초나라 대신 중에는 중이의 태도가 오만하다며 죽이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성왕은 이 약속을 받아들인다. 이후 정말로 초와 진이 전쟁을 벌일 때가 있었는데, 중이는 그때의 약속을 지켜 3사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
2016년 6월 21일 (화) 21:08 기준 최신판
중이는 공자 시절, 아버지의 애첩 여희의 모함으로 이순의 나이가 넘도록 유랑하게 된다. 그의 현복들은 국내로 다시 돌아와 왕위를 이을 것을 권고하지만, 이를 사양하고, 셋째 이오가 혜공이란 이름으로 왕위를 잇게 한다. 하지만 혜공은 자신보다 나이 많고 뛰어난 중이가 적국에 있다는 사실로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래서 혜공은 중이를 암살하려 했고, 중이는 유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제나라에 가는 도중 위나라에 머물렀는데, 위나라 왕으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다음 도착한 제나라에선 환공의 후대를 받아 그의 딸을 처로 삼고 80여필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공자의 위업을 위하는 일행의 반대로 강제로 수레에 실어졌고 진나라로 향하게 되었다. 일행은 우선 조나라에 도착하는데, 조나라 왕에게서 심한 푸대접을 받게 된다. 중이 일행은 다시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향한다. 송양공은 그들을 후대해주었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나라라고 판단되어 갈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다음 도착한 정나라에서도 그들를 냉대하여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홀대와 냉대를 받으며 중이 일행은 초나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송양공과 마찬가지로 국군의 예의로 그들을 맞아주었고 향연을 베풀어 주었다. 초나라 성왕은 주연 자리에서 중이에게 농담 삼아 성공적으로 귀국하면 무엇으로 보답할지를 물었다. 그러자 초나라엔 왠만한 진귀한 물건들이 많았고, 그는 고심한 끝에 초나라에 3사 퇴보를 약속하였다.
“ 그럼 이렇게 하지요. 장차 불행하게 귀국과 우리 진나라가 전쟁하게 된다면 나는 진나라 군대에게 3사를 양보하여 물러나도록 명령하지요
” — 박인수, 춘추전국의 패자와 책사들
1사는 10리로, 전쟁시에 30리를 물러나겠다는 약속이었다. 초나라 대신 중에는 중이의 태도가 오만하다며 죽이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성왕은 이 약속을 받아들인다. 이후 정말로 초와 진이 전쟁을 벌일 때가 있었는데, 중이는 그때의 약속을 지켜 3사 물러났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