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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소개 ==
 
== 인물소개 ==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중국명 清太宗爱新觉罗·皇太极)는 누르하치의 8번 째 아들로 후금의 두 번째 [[칸Khan|한(han)]]이자 청조의 첫 번째 황제이며, 만주족의 초기 기록에는 ‘두이치 버일러’(duici beile, 네 번째 버일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호는 천총(天聪)과 숭덕(崇德)을 사용하였고, 묘호는 태종(太宗)이며, 시호는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융도현공문황제(应天兴国弘德彰武宽温仁圣睿孝敬敏昭定隆道显功文皇帝)이다. 17년의 재위 기간 동안 생산을 발전시키고, 병력을 증강시켜 끊임없이 명조와 싸우며 이후 청조가 중원으로 통치를 확장하는데 견실한 기초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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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중국명 清太宗爱新觉罗·皇太极)는 [[누르하치]]의 8번 째 아들로 후금의 두 번째 [[칸Khan|한(han)]]이자 청조의 첫 번째 황제이며, 만주족의 초기 기록에는 ‘두이치 [[버일러]]’(duici beile, 네 번째 [[버일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호는 천총(天聪)과 숭덕(崇德)을 사용하였고, 묘호는 태종(太宗)이며, 시호는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융도현공문황제(应天兴国弘德彰武宽温仁圣睿孝敬敏昭定隆道显功文皇帝)이다. 17년의 재위 기간 동안 생산을 발전시키고, 병력을 증강시켜 끊임없이 명조와 싸우며 이후 청조가 중원으로 통치를 확장하는데 견실한 기초를 쌓았다.
  
 
== 이름에 관한 의문 ==
 
== 이름에 관한 의문 ==
홍타이지는 본명은 분명하지 않다. 홍타이지는 본명이 아닌 통칭으로 본명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정확하지 않다. ‘홍타이지’는 몽골족 세습귀족 관리의 명칭으로 자주 보이는데, 아마도 이것에서 차용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타이지(taiji)는 ‘왕자’를 가리키는 몽골어인데 만주족의 사료에서 이 작위는 보통 칸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버일러이자 팔기의 소유자였던 누르하치 아들들의 이름 앞에 붙었다. 또한 ‘홍타이지’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제위 후계자를 가리키는 황태자의 한자음을 연상시키는데, 이 점도 가미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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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타이지는 본명은 분명하지 않다. 홍타이지는 본명이 아닌 통칭으로 본명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정확하지 않다. ‘홍타이지’는 몽골족 세습귀족 관리의 명칭으로 자주 보이는데, 아마도 이것에서 차용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타이지(taiji)는 ‘왕자’를 가리키는 몽골어인데 만주족의 사료에서 이 작위는 보통 [[칸Khan|한(han)]]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버일러]]이자 팔기의 소유자였던 [[누르하치]] 아들들의 이름 앞에 붙었다. 또한 ‘홍타이지’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제위 후계자를 가리키는 황태자의 한자음을 연상시키는데, 이 점도 가미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 황제 등극 ==
 
== 황제 등극 ==
[[칸Khan|한(han)]]으로 선출 된 후 영역 안에 속해있던 한족의 정치, 경제, 군사력과 몽골족 기마병의 기동력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 홍타이지는 1935년에서 1936년 사이에 공개적으로 칸이 다스리는 지역을 제국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1935년(천총9) 주션(여진족)이란 이름을 만주로 바꾸고, 다음 해 천총 10년 4월 만주족과 몽골족의 제왕 그리고 한족 무장들의 추대를 받아 대청 황제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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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Khan|한(han)]]으로 선출 된 후 영역 안에 속해있던 한족의 정치, 경제, 군사력과 [[몽골]]족 기마병의 기동력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 홍타이지는 1635년에서 1636년 사이에 공개적으로 칸이 다스리는 지역을 제국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1635년(천총9) 주션(여진족)이란 이름을 만주로 바꾸고, 다음 해 천총 10년 4월 만주족과 [[몽골]]족의 제왕 그리고 한족 무장들의 추대를 받아 대청 황제 자리에 올랐다.
  
 
== 업적 ==
 
== 업적 ==
 
=== 산해관을 넘을 계책 ===
 
=== 산해관을 넘을 계책 ===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는 아버지를 계승하여 산해관을 넘을 계책을 논의하였다. 우선 제거해야 될 대상은 산해관 이전의 요새 영원성을 지키고 있던 원숭환(袁崇煥)이었다. 청 태종은 계책 끝에 원숭환을 반간(反間)으로 몰아 청의 세력인 것처럼 소문을 내었는데, 명의 숭정제는 이 소문을 믿고 그를 체포하여 사형시켜 버리고 말았다. 산동을 지키던 명의 장수 공유덕(孔有德)도 수백 척의 배와 대포를 가지고 후금에 투항함으로써 요서지방과 산동의 군사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홍타이지는 이후로도 꾸준히 조선과 내몽골 지역의 몽골세력을 정벌하여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후 물자를 비축하여 명을 정벌하는 데 기초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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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는 아버지를 계승하여 산해관을 넘을 계책을 논의하였다. 우선 제거해야 될 대상은 산해관 이전의 요새 영원성을 지키고 있던 [[원숭환]](袁崇煥)이었다. 청 태종은 계책 끝에 원숭환을 반간(反間)으로 몰아 청의 세력인 것처럼 소문을 내었는데, 명의 [[숭정제]]는 이 소문을 믿고 그를 체포하여 사형시켜 버리고 말았다. 산동을 지키던 명의 장수 공유덕(孔有德)도 수백 척의 배와 대포를 가지고 후금에 투항함으로써 요서지방과 산동의 군사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홍타이지는 이후로도 꾸준히 조선과 내몽골 지역의 [[몽골]]세력을 정벌하여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후 물자를 비축하여 명을 정벌하는 데 기초를 다진다.
  
 
===  제도 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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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度百科-皇太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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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물]]

2016년 6월 23일 (목) 21:35 기준 최신판

홍타이지Hung Taiji

출생 1592.11.28
赫图阿拉(현 辽宁新宾县西老城)
사망 1643.9.21

인물소개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중국명 清太宗爱新觉罗·皇太极)는 누르하치의 8번 째 아들로 후금의 두 번째 한(han)이자 청조의 첫 번째 황제이며, 만주족의 초기 기록에는 ‘두이치 버일러’(duici beile, 네 번째 버일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호는 천총(天聪)과 숭덕(崇德)을 사용하였고, 묘호는 태종(太宗)이며, 시호는 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융도현공문황제(应天兴国弘德彰武宽温仁圣睿孝敬敏昭定隆道显功文皇帝)이다. 17년의 재위 기간 동안 생산을 발전시키고, 병력을 증강시켜 끊임없이 명조와 싸우며 이후 청조가 중원으로 통치를 확장하는데 견실한 기초를 쌓았다.

이름에 관한 의문

홍타이지는 본명은 분명하지 않다. 홍타이지는 본명이 아닌 통칭으로 본명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정확하지 않다. ‘홍타이지’는 몽골족 세습귀족 관리의 명칭으로 자주 보이는데, 아마도 이것에서 차용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타이지(taiji)는 ‘왕자’를 가리키는 몽골어인데 만주족의 사료에서 이 작위는 보통 한(han)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버일러이자 팔기의 소유자였던 누르하치 아들들의 이름 앞에 붙었다. 또한 ‘홍타이지’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제위 후계자를 가리키는 황태자의 한자음을 연상시키는데, 이 점도 가미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황제 등극

한(han)으로 선출 된 후 영역 안에 속해있던 한족의 정치, 경제, 군사력과 몽골족 기마병의 기동력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 홍타이지는 1635년에서 1636년 사이에 공개적으로 칸이 다스리는 지역을 제국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1635년(천총9) 주션(여진족)이란 이름을 만주로 바꾸고, 다음 해 천총 10년 4월 만주족과 몽골족의 제왕 그리고 한족 무장들의 추대를 받아 대청 황제 자리에 올랐다.

업적

산해관을 넘을 계책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는 아버지를 계승하여 산해관을 넘을 계책을 논의하였다. 우선 제거해야 될 대상은 산해관 이전의 요새 영원성을 지키고 있던 원숭환(袁崇煥)이었다. 청 태종은 계책 끝에 원숭환을 반간(反間)으로 몰아 청의 세력인 것처럼 소문을 내었는데, 명의 숭정제는 이 소문을 믿고 그를 체포하여 사형시켜 버리고 말았다. 산동을 지키던 명의 장수 공유덕(孔有德)도 수백 척의 배와 대포를 가지고 후금에 투항함으로써 요서지방과 산동의 군사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홍타이지는 이후로도 꾸준히 조선과 내몽골 지역의 몽골세력을 정벌하여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후 물자를 비축하여 명을 정벌하는 데 기초를 다진다.

제도 정비

대청 건국을 전후하여 홍타이지는 八旗제를 팔기만주·팔기몽고·팔기한군의 형태로 정비하여 만·몽·한 세 민족으로 구성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 밖에도 1638년(숭덕 3) 외번으로 삼은 내몽골의 각 부족집단(八旗제를 본떠서 기·좌령으로 편성)을 통할하던 몽골아문을 이번원으로 개칭하여 개조했다.

참고 자료

파멜라 크로슬리 지음, 양휘웅 옮김, 『만주족의 역사』, 2013, 돌베개

이시바시 다카오 지음, 홍성구 옮김, 『대청제국 1616~1799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 2009, 휴머니스트

남의현·김대기 지음, 『21세기에 읽는 중국사』, 2010, 강원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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