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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은 '拱(둘러싸다)'와 '供(바치다)'의 원래 글자이다. 초기금문의 '共'은, 사람이 두 손으로 한 덩어리의 옥벽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옥벽은 귀중한 것으로, 늘상 종묘 제사의 공양하는 물건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전에는 '共'이 손으로 옥벽을 받들어 바치다, 공양하다 의미가 있었다. '둘러싸다(环抱)', '둘러싸서 지키다(供卫)', '공급하다(供给)' 등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두 손이 함께 한 물건을 받들기 때문에, 또한 '공동(共同)', '함께(在一起)', '일제히(一齐)' 등의 의미로도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同舟共濟' (같은 배로 함께 건너다 ;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가 있다. | '共'은 '拱(둘러싸다)'와 '供(바치다)'의 원래 글자이다. 초기금문의 '共'은, 사람이 두 손으로 한 덩어리의 옥벽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옥벽은 귀중한 것으로, 늘상 종묘 제사의 공양하는 물건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전에는 '共'이 손으로 옥벽을 받들어 바치다, 공양하다 의미가 있었다. '둘러싸다(环抱)', '둘러싸서 지키다(供卫)', '공급하다(供给)' 등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두 손이 함께 한 물건을 받들기 때문에, 또한 '공동(共同)', '함께(在一起)', '일제히(一齐)' 등의 의미로도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同舟共濟' (같은 배로 함께 건너다 ;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가 있다. | ||
+ | 설문해자에 따르면 “共, 같다” 라고 한다. 갑골문, 금문, 소전 등의 글자형에서 모두 양 손을 받들어 올리며, 공통의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두 손을 마주잡고 팔을 가슴께로 올려 경의나 존중을 표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금문에서 양 손에 물건 하나를 받들어 올리는 형상으로 보아 공양의 의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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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玉과 제사와의 관련이 상당히 깊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玉과 제사와의 관련이 상당히 깊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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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제사는 희생을 피하기 위해, 옥이나 짐승의 가죽 혹은 비단을 사용한다는 말에서, 제사에 옥을 올리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2월 제사는 희생을 피하기 위해, 옥이나 짐승의 가죽 혹은 비단을 사용한다는 말에서, 제사에 옥을 올리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 ||
'共' 뿐만 아니라, '靈', '禮'에서도 제사에 옥을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입 안에 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부는 옥이 그 부드럽게 빛이 나는 외형 때문에 고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 '共' 뿐만 아니라, '靈', '禮'에서도 제사에 옥을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입 안에 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부는 옥이 그 부드럽게 빛이 나는 외형 때문에 고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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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성. 갑골문에서 口(입 구)가 의미부이고 廾(두손으로 받들 공)이 소리부로, 어떤 물체를 두 손으로 ‘함께’받쳐 든 모습을 그렸는데, 자형이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이로부터 公同(공동), 함께 등의 뜻이 나왔고, 합계, 모두라는 뜻으로도 쓰였다.<ref>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62</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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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廿(입)+廾(공)으로 구성되었다. 共(공)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共의 의미를 따른다. :廿은 두 개의 十(십)을 병렬하였다는 뜻이다. 20명의 사람이 모두 손을 마주하고 있으니 함께한다는 뜻. 共(공)의 발음은 渠(거)와 用(용)의 반절이다.<ref>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96</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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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2일 (목) 11:41 기준 최신판
語源
'共'은 '拱(둘러싸다)'와 '供(바치다)'의 원래 글자이다. 초기금문의 '共'은, 사람이 두 손으로 한 덩어리의 옥벽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옥벽은 귀중한 것으로, 늘상 종묘 제사의 공양하는 물건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전에는 '共'이 손으로 옥벽을 받들어 바치다, 공양하다 의미가 있었다. '둘러싸다(环抱)', '둘러싸서 지키다(供卫)', '공급하다(供给)' 등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두 손이 함께 한 물건을 받들기 때문에, 또한 '공동(共同)', '함께(在一起)', '일제히(一齐)' 등의 의미로도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同舟共濟' (같은 배로 함께 건너다 ;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가 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共, 같다” 라고 한다. 갑골문, 금문, 소전 등의 글자형에서 모두 양 손을 받들어 올리며, 공통의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두 손을 마주잡고 팔을 가슴께로 올려 경의나 존중을 표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금문에서 양 손에 물건 하나를 받들어 올리는 형상으로 보아 공양의 의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
文化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玉과 제사와의 관련이 상당히 깊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문』 示部 : "祠, 봄제사를 祠라고 한다. 제품이 적고 제문이 길다. 의부 示와 성부 司로 구성된다. 2월에 지내는 제사에는 희생을 사용하지 않고 옥 및 짐승의 가죽이나 비단을 사용한다. (祠, 春祭曰祠. 品物少, 多文祠也. 從示司聲仲春之月, 祠不用犧牲, 用圭璧及皮弊.)"[1]
2월 제사는 희생을 피하기 위해, 옥이나 짐승의 가죽 혹은 비단을 사용한다는 말에서, 제사에 옥을 올리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共' 뿐만 아니라, '靈', '禮'에서도 제사에 옥을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입 안에 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부는 옥이 그 부드럽게 빛이 나는 외형 때문에 고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형성. 갑골문에서 口(입 구)가 의미부이고 廾(두손으로 받들 공)이 소리부로, 어떤 물체를 두 손으로 ‘함께’받쳐 든 모습을 그렸는데, 자형이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이로부터 公同(공동), 함께 등의 뜻이 나왔고, 합계, 모두라는 뜻으로도 쓰였다.[2]
廿(입)+廾(공)으로 구성되었다. 共(공)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共의 의미를 따른다. :廿은 두 개의 十(십)을 병렬하였다는 뜻이다. 20명의 사람이 모두 손을 마주하고 있으니 함께한다는 뜻. 共(공)의 발음은 渠(거)와 用(용)의 반절이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