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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7일 (화) 02:53 기준 최신판
원문
北京的冬季,地上还有积雪,灰黑色的秃树枝丫叉于晴朗的天空中,而远处有一二风筝浮动,在我是一种惊异和悲哀。
故乡的风筝时节,是春二月,倘听到沙沙的风轮声,仰头便能看见一个淡墨色的蟹风筝或嫩蓝色的蜈蚣风筝。还有寂寞的瓦片风筝,没有风轮,又放得很低,伶仃地显出憔悴可怜模样。但此时地上的杨柳已经发芽,早的山桃也多吐蕾,和孩子们的天上的点缀相照应,打成一片春日的温和。我现在在那里呢?四面都还是严冬的肃杀,而久经诀别的故乡的久经逝去的春天,却就在这天空中荡漾了。
但我是向来不爱放风筝的,不但不爱,并且嫌恶他,因为我以为这是没出息孩子所做的玩艺。和我相反的是我的小兄弟,他那时大概十岁内外罢,多病,瘦得不堪,然而最喜欢风筝,自己买不起,我又不许放,他只得张着小嘴,呆看着空中出神,有时至于小半日。远处的蟹风筝突然落下来了,他惊呼;两个瓦片风筝的缠绕解开了,他高兴得跳跃。他的这些,在我看来都是笑柄,可鄙的。
有一天,我忽然想起,似乎多日不很看见他了,但记得曾见他在后园拾枯竹。我恍然大悟似的,便跑向少有人去的一间堆积杂物的小屋去,推开门,果然就在尘封的什物堆中发见了他。他向着大方凳,坐在小凳上;便很惊惶地站了起来,失了色瑟缩着。大方凳旁靠着一个胡蝶风筝的竹骨,还没有糊上纸,凳上是一对做眼睛用的小风轮,正用红纸条装饰着,将要完工了。我在破获秘密的满足中,又很愤怒他的瞒了我的眼睛,这样苦心孤诣地来偷做没出息孩子的玩艺。我即刻伸手折断了胡蝶的一支翅骨,又将风轮掷在地下,踏扁了。论长幼,论力气,他是都敌不过我的,我当然得到完全的胜利,于是傲然走出,留他绝望地站在小屋里。后来他怎样,我不知道,也没有留心。
然而我的惩罚终于轮到了,在我们离别得很久之后,我已经是中年。我不幸偶而看了一本外国的讲论儿童的书,才知道游戏是儿童最正当的行为,玩具是儿童的天使。于是二十年来毫不忆及的幼小时候对于精神的虐杀的这一幕,忽地在眼前展开,而我的心也仿佛同时变了铅块,很重很重的堕下去了。
但心又不竟堕下去而至于断绝,他只是很重很重地堕着,堕着。
我也知道补过的方法的:送他风筝,赞成他放,劝他放,我和他一同放。我们嚷着,跑着,笑着。——然而他其时已经和我一样,早已有了胡子了。
我也知道还有一个补过的方法的:去讨他的宽恕,等他说,“我可是毫不怪你呵。”那么,我的心一定就轻松了,这确是一个可行的方法。有一回,我们会面的时候,是脸上都已添刻了许多“生”的辛苦的条纹,而我的心很沉重。我们渐渐谈起儿时的旧事来,我便叙述到这一节,自说少年时代的胡涂。“我可是毫不怪你呵。”我想,他要说了,我即刻便受了宽恕,我的心从此也宽松了罢。
“有过这样的事么?”他惊异地笑着说,就像旁听着别人的故事一样。他什么也不记得了。
全然忘却,毫无怨恨,又有什么宽恕之可言呢?无怨的恕,说谎罢了。
我还能希求什么呢?我的心只得沉重着。
现在,故乡的春天又在这异地的空中了,既给我久经逝去的儿时的回忆,而一并也带着无可把握的悲哀。我倒不如躲到肃杀的严冬中去罢,——但是,四面又明明是严冬,正给我非常的寒威和冷气。
一九二五年一月二十四日
해제
1925년 2월 2일 "수다쟁이"잡지 12번째로 발표했다. 작품에서 겨울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암울한 사회를 잘 표현한다. 루쉰은 표류하는 연을 보다가 어린시절 동생에게 한 잘못을 회상한다. 그 당시 루쉰은 연날리기를 좋아하는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았다. 그래서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후회하며 용서를 받고자 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용서를 빌지 못한 것에 슬픔을 느낀다. 작품내에서 이것에 대한 슬픔과 겨울과 같은 암울한 현실에 대한 심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막상 동생이 이 일을 기억하지 않았으므로 용서받을 일도 없어졌다 . 하지만 루쉰만이 이 기억으로 고통받으며 해결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 무서운 한기와 겨울을 느끼게 된다. 작품 내에서 '무서운 한기와 냉기'는 루쉰에게 단순한 겨울의 추위가 아닌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는 몫으로 남아있즌 절망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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