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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 + | #넘겨주기 [[신청사(新淸史)]] |
− | 신청사(新淸史)란, 1990년대 말, 미국 학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청대사 연구경향이다. | |
− | 신청사의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이블린 러스키(Evelyn S. Rawski), 파멜라 크로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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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mel K. Crossley), 마크 엘리엇(Mark C. Elliott), 조안나 웨일리-코헨(Joanna Waley-Cohen)등이 있다. ‘신청사’라는 용어가 어떠한 학자에 의해 정의된 용어인적은 없었지만, 2004년 청대사 관련 논문집이 ‘신청사’라는 이름으로 출판 되었던 것과 청대사의 연구경향을 논의하는 비평 논문에서 ‘신청사(The New Qing History)’라는 용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용어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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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의 청사와 신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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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lass="wikitable" bord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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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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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존의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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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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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ig><center>'청'의 존속 기간</center></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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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enter>1644년 ~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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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4년 : 명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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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1년 : 청의 멸망 & 중화민국 수립</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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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enter>1626년 ~ 19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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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6년 : 금의 ‘대청’ 제국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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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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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2년 : 청의 푸이 퇴위</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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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ig><center>청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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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 시각</center></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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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enter>청조는 중국 왕조 역사의 한 부분</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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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enter>청조가 단순한 중국 왕조의 일부분은 아님</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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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ig><center>만주족을 보는 시각</center></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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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enter>청조의 만주족들은 모두 한화(漢化)되었음</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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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enter>청조의 역사 속에서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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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찾아 볼 수 있음</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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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의 청사는 청의 존속기간을 1644년부터 1911년까지로 보고 있다. 이 기간에서 1644년은 명의 멸망시기를 의미하고, 1911년은 청조의 멸망과 중화민국 정부의 수립 시기를 의미한다. 기존의 청사를 연구하던 학자들이 청의 존속기간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는 청을 단순히 명의 다음에 위치한, 그리고 중화민국의 전에 위치한 중국 제국의 역사중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존 청사연구의 주체는 존.K.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1907.5.24 ~ 1991.9.14))와 중국의 민족주의 역사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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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와 같은 학자들에게 어째서 청을 만주족이 정복한 정복왕조가 아닌 중국왕조의 역사 중 하나로 보냐고 묻는다면 이들은 청 제국이 설립된 이후의 만주족들이 모두 한족에게 동화, 즉 한화(漢化)되어 만주족의 독자적인 문화나 정체성이 점차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만주족의 제국이었던 청조에서, 만주족들이 한족과 완전히 동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한족이 세운 중화민국이 청의 영토를 그대로 물려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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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신청사 학파의 학자들은 기존 청사를 연구하던 학자들의 시각을 다소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적인 경향을 보인다며 비판하고 새로운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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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청사 학자들은 청조를 만주족의 정체성을 뚜렷이 띈 국가로써 보는 입장에서, 청조가 1636년부터 1912년까지로 설정하고 있다. 1636년은 후금의 태종이었던 홍타이지가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꾼 년도이며, 1912년은 청조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儀)가 퇴위한 년도이다. 사실 신청사는 아직까지도 활발히 연구중인 학문으로써 학자들마다 청조가 시작되는 시기에 대한 논의(청조의 팔기가 만들어지게 된 1601년, 청의 전신인 후금이 설립되었던 1616년 등)가 있지만, 어느 시기가 되었던 간에 신청사 학자들은 청의 시작을 청제국 자체의 역사를 중점으로 둔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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