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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孔安國)(B.C. ? ~ B.C. ?)은 [[전한]]시대 노나라(魯, 산동성 곡부) 출생으로, 자는 자국(子國)이고, 공자의 11대손이며, 나고 죽은 해는 확실치 않다. 신공(申公)에게 <노시(魯詩)>를 배웠고 복생(伏生)에게는 <<[[상서]](尙書)>>를 배웠다. [[무제|한 무제]](漢武帝) 때 박사(博士), 간대부(諫大夫), 임회태수(臨淮太守) 등의 관직을 거쳤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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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孔安國)(B.C. ? ~ B.C. ?)은 [[전한]]시대 노나라(魯, 산동성 곡부) 출생으로, 자는 자국(子國)이고, 공자의 11대손이며, 나고 죽은 해는 확실치 않다. 신공(申公)에게 <노시(魯詩)>를 배웠고 복생(伏生)에게는 <<[[서경|상서]](尙書)>>를 배웠다. [[무제|한 무제]](漢武帝) 때 박사(博士), 간대부(諫大夫), 임회태수(臨淮太守) 등의 관직을 거쳤다.<br>
 
[[무제]] 때 노나라 공왕(魯共王)이 저택을 확충하면서 옛 [[공자]]가 살던 집을 헐었는데 그 안에서  <<상서>>, <<논어>>, <<효경>> 등 진나라 이전에 과두문자(蝌蚪文字)로 쓰여진 고문 경서들이 나왔다. 그 당시 고문을 아는 사람이 없어 이 글을 읽지 못한 것을 공안국이 금문(今文)과 대조하여 고증, 해독하여 주석을 붙였다 그 후 공안국은 무제에게 이 고문 <<상서>>를 올려 56편으로 확정지었으며 또 자신이 직접 고문 경서들을 해석함으로써 고문경서가 퍼져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무제]] 때 노나라 공왕(魯共王)이 저택을 확충하면서 옛 [[공자]]가 살던 집을 헐었는데 그 안에서  <<상서>>, <<논어>>, <<효경>> 등 진나라 이전에 과두문자(蝌蚪文字)로 쓰여진 고문 경서들이 나왔다. 그 당시 고문을 아는 사람이 없어 이 글을 읽지 못한 것을 공안국이 금문(今文)과 대조하여 고증, 해독하여 주석을 붙였다 그 후 공안국은 무제에게 이 고문 <<상서>>를 올려 56편으로 확정지었으며 또 자신이 직접 고문 경서들을 해석함으로써 고문경서가 퍼져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6년 6월 21일 (화) 23:46 기준 최신판

생애 및 업적

공안국(孔安國)(B.C. ? ~ B.C. ?)은 전한시대 노나라(魯, 산동성 곡부) 출생으로, 자는 자국(子國)이고, 공자의 11대손이며, 나고 죽은 해는 확실치 않다. 신공(申公)에게 <노시(魯詩)>를 배웠고 복생(伏生)에게는 <<상서(尙書)>>를 배웠다. 한 무제(漢武帝) 때 박사(博士), 간대부(諫大夫), 임회태수(臨淮太守) 등의 관직을 거쳤다.
무제 때 노나라 공왕(魯共王)이 저택을 확충하면서 옛 공자가 살던 집을 헐었는데 그 안에서 <<상서>>, <<논어>>, <<효경>> 등 진나라 이전에 과두문자(蝌蚪文字)로 쓰여진 고문 경서들이 나왔다. 그 당시 고문을 아는 사람이 없어 이 글을 읽지 못한 것을 공안국이 금문(今文)과 대조하여 고증, 해독하여 주석을 붙였다 그 후 공안국은 무제에게 이 고문 <<상서>>를 올려 56편으로 확정지었으며 또 자신이 직접 고문 경서들을 해석함으로써 고문경서가 퍼져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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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저서로는 <<고문효경전>>, <<논어훈해>> 등을 저술했으며, 지금의 <<상서공씨전>>이 그의 저술로 남아 있지만 전한 시대의 글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의심하기 시작하여 청나라 때 이르러서는 후세의 위작(僞作)으로 고증되었다

참고문헌

  • 김영수,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창해, 2006, ISBN 89-7919-738-1
  •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0, ISBN 9788981074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