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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 | ==영화의 줄거리== | ||
이 영화는 1945년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라디오가 흘러나오며 임문웅이 자신의 아들을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임아록에게는 장사를 하고 형제 간의 우의를 중요시하는 문웅, 일본군의관으로 출정해 행방불명된, 그러나 결국 전사한 문상, 불량배였다가 결국엔 폐인이 된 문량, 귀머거리이자 벙어리 문청 이렇게 네 아들이 있다. 문청은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지식인인 오관영과 함께 살고 있다. 관영과 그 친구들은 부패한 나라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나라를 개혁하려는 결정을 내렸고, 문청은 관영의 누이 관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량과 문웅은 상해에 본거지를 둔 범죄 조직의 유혹으로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상해조직은 문량이 일본에 징용돼서 일했던 것을 빌미로 문량과 문웅을 전범으로 당국에 고발해 버린다. 문웅의 로비로 문량은 곧 석방되지만, 이미 폐인이 되어 버린다. | 이 영화는 1945년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라디오가 흘러나오며 임문웅이 자신의 아들을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임아록에게는 장사를 하고 형제 간의 우의를 중요시하는 문웅, 일본군의관으로 출정해 행방불명된, 그러나 결국 전사한 문상, 불량배였다가 결국엔 폐인이 된 문량, 귀머거리이자 벙어리 문청 이렇게 네 아들이 있다. 문청은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지식인인 오관영과 함께 살고 있다. 관영과 그 친구들은 부패한 나라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나라를 개혁하려는 결정을 내렸고, 문청은 관영의 누이 관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량과 문웅은 상해에 본거지를 둔 범죄 조직의 유혹으로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상해조직은 문량이 일본에 징용돼서 일했던 것을 빌미로 문량과 문웅을 전범으로 당국에 고발해 버린다. 문웅의 로비로 문량은 곧 석방되지만, 이미 폐인이 되어 버린다. | ||
− | 한편 2. | + | 한편 [[2.28사건]]이 터지자 문청의 친구들은 체포되거나 실종되고, 문청도 옥살이를 한다. 옥에서 나온 문청은 관영의 정부 대항조직에 참여하려 하나 관영은 그에게 관미를 부탁한다며 문청을 돌려보낸다. 하지만 이때 제일 맏형인 문웅이 상해 조직과의 혈전에서 죽음으로써 문청은 임씨 집안의 유일한 남자가 된다. 문웅의 장례식 후 문청과 관미는 결혼을 하고, 반정부운동을 하던 관영은 총살되며 문청은 또 다시 체포된다. 문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관미의 설명과 함께 “1949년 중국에서 패한 장개석이 대만에 정부를 설립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
==영화의 주제== | ==영화의 주제== | ||
===격변하는 시기의 대만=== | ===격변하는 시기의 대만=== | ||
− | '격변하는 시기의 대만’이라는 주제는 대만 감독이 담고 싶어 하던 대만인의 삶이자 역사이다. 영화는 1945년부터 1949년이라는 5년의 역사 동안 대만은 어떻게 흘러갔고 민중, 각 개인의 삶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갔는가를 보여주고 | + | '격변하는 시기의 대만’이라는 주제는 대만 감독이 담고 싶어 하던 대만인의 삶이자 역사이다. 영화는 1945년부터 1949년이라는 5년의 역사 동안 대만은 어떻게 흘러갔고 민중, 각 개인의 삶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초기에서 그려지는 대만은 광복 직후의 설렘과 혼란으로 가득 차있다. 처음에 청년들은 조국의 광복을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긴’ 대만의 이러한 축제 분위기의 뒤에는 커다란 문제가 존재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첫 번째, 광복 후 대만 사회가 반드시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는 51년간의 일제강점기로 인해 고도화된 식민사회를 재편하고 식민통치로 인해 파괴된 민족 문화와 민족 언어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특히 대만의 경우 1937년 일본의 총체전 선언 이후 대만인들에게 모든 상황에서의 ‘황민화’를 강요했기 때문에 대만 사회는 일제의 잔재로 인해 더욱 크게 고통 받았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광복 이전 기득권층이었던 매국노, 즉 친일파 진의는 광복 이후에도 정부 요직에 앉으면서 매국노를 중용하는 국민당의 사회 개편 한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민족 언어의 경우 광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만은 여전히 일본어를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강점 아래 큰 고통을 받았는데, 일제가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언어 먼저 억압하였다는 사실로 비추어 보았을 때, 대만 사회가 광복 이후에도 일본어를 자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민족 언어는 물론 민족 문화까지 회복되지 못한 당시 대만 사회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 국민당은 부패했고 무능했다. 국민당은 대만 본토 출신을 중용하지 않고 모든 요직을 국민당이 홀로 차지했다. 심지어 일본인이나 친일파들을 중용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오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친일파였던 진의가 정부의 요직으로 기용된다거나, 새로 부임한 대법원장이 대만인들을 내쫓고 중국인들로 자리를 꽉 채워 법원이 자기네 집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장면이나, 뇌물만 주면 마약을 밀수할 수 있는 모습들이 나온다. 세 번째, 민족경제 건설이 어려움에 처했다. 군인과 지식인을 포함해 모든 대만인들에게 실업의 위협이 도사리고, 생산이 정지되고, 쌀값을 비롯한 물가가 천정부지로 폭등한다. 이와 같이 광복 후 시간이 지나자 광복 직후의 환희는 사라지고 절망적인 현실만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나긴 식민 통치로 인한 사회의 쇠잔, 불경기와 국민당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 그리고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성적(省籍) 모순이 폭발하면서 [[2.28 사건]]이 터지게 된다. 극중 문영이 ‘우리 대만인들이 제일 불쌍해, 일본인과 대륙인에게 차례로 괴롭힘을 당하니’라는 대사는 당시 사태에 대한 대만인의 좌절과 슬픔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영화는 광복 직후 대만의 혼돈과 격변을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
===삶의 연속성=== | ===삶의 연속성=== | ||
− |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삶은 기어코 계속되는데, 이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한다. 시작부터 한 생명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출산-장례식-결혼식-출산의 플롯을 거치면서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음 뒤에 또 다시 탄생하는 생명을 병렬함으로써 삶은 언제나 계속됨을 보여준다 | + |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삶은 기어코 계속되는데, 이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한다. 시작부터 한 생명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출산-장례식-결혼식-출산의 플롯을 거치면서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음 뒤에 또 다시 탄생하는 생명을 병렬함으로써 삶은 언제나 계속됨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에서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애틋함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는 혼란한 사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계속되는 삶에 대한 감독의 시각이 드러난 부분이다. 문웅은 밤에 아이 때문에 깨더라도 화내기는커녕 자신이 돌봐준다고 하는 것이나, 밤중에 일어나서 아기의 이불을 덮어주고 달래주는 등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사랑으로 다한다. 또한 문웅의 아내는 극중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라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하고 도박을 벌이는 손님들의 테이블에 아이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는다. 문웅의 아내가 된 관미 또한 자신의 오빠인 관영의 부음 소식을 듣고 울먹이면서도 자신의 아이에게 밥을 먹인다. 저항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총살당한 임 선생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삶을 중요시해라, 아버지는 죄가 없다’라는 유언 등을 보면 다음 세대에 대한 부모 세대들의 걱정과 사랑이 잘 나타난다. 그리고 문청은 자신이 잡혀가기 3일 전 가족사진을 남기고 관미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함으로서 일상사, 즉 인간사를 남긴다.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으로 역사를 남겨둔 각 개인들의 노력은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고 나무가 되어 걱정과 사랑으로 후대를 지탱한다. |
==영화의 의의== | ==영화의 의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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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신, 대만의 역사, 지영사 | * 김영신, 대만의 역사, 지영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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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6일 (일) 16:35 기준 최신판
목차
영화의 줄거리
이 영화는 1945년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라디오가 흘러나오며 임문웅이 자신의 아들을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임아록에게는 장사를 하고 형제 간의 우의를 중요시하는 문웅, 일본군의관으로 출정해 행방불명된, 그러나 결국 전사한 문상, 불량배였다가 결국엔 폐인이 된 문량, 귀머거리이자 벙어리 문청 이렇게 네 아들이 있다. 문청은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지식인인 오관영과 함께 살고 있다. 관영과 그 친구들은 부패한 나라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나라를 개혁하려는 결정을 내렸고, 문청은 관영의 누이 관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량과 문웅은 상해에 본거지를 둔 범죄 조직의 유혹으로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상해조직은 문량이 일본에 징용돼서 일했던 것을 빌미로 문량과 문웅을 전범으로 당국에 고발해 버린다. 문웅의 로비로 문량은 곧 석방되지만, 이미 폐인이 되어 버린다. 한편 2.28사건이 터지자 문청의 친구들은 체포되거나 실종되고, 문청도 옥살이를 한다. 옥에서 나온 문청은 관영의 정부 대항조직에 참여하려 하나 관영은 그에게 관미를 부탁한다며 문청을 돌려보낸다. 하지만 이때 제일 맏형인 문웅이 상해 조직과의 혈전에서 죽음으로써 문청은 임씨 집안의 유일한 남자가 된다. 문웅의 장례식 후 문청과 관미는 결혼을 하고, 반정부운동을 하던 관영은 총살되며 문청은 또 다시 체포된다. 문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관미의 설명과 함께 “1949년 중국에서 패한 장개석이 대만에 정부를 설립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주제
격변하는 시기의 대만
'격변하는 시기의 대만’이라는 주제는 대만 감독이 담고 싶어 하던 대만인의 삶이자 역사이다. 영화는 1945년부터 1949년이라는 5년의 역사 동안 대만은 어떻게 흘러갔고 민중, 각 개인의 삶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초기에서 그려지는 대만은 광복 직후의 설렘과 혼란으로 가득 차있다. 처음에 청년들은 조국의 광복을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긴’ 대만의 이러한 축제 분위기의 뒤에는 커다란 문제가 존재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첫 번째, 광복 후 대만 사회가 반드시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는 51년간의 일제강점기로 인해 고도화된 식민사회를 재편하고 식민통치로 인해 파괴된 민족 문화와 민족 언어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특히 대만의 경우 1937년 일본의 총체전 선언 이후 대만인들에게 모든 상황에서의 ‘황민화’를 강요했기 때문에 대만 사회는 일제의 잔재로 인해 더욱 크게 고통 받았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광복 이전 기득권층이었던 매국노, 즉 친일파 진의는 광복 이후에도 정부 요직에 앉으면서 매국노를 중용하는 국민당의 사회 개편 한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민족 언어의 경우 광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만은 여전히 일본어를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강점 아래 큰 고통을 받았는데, 일제가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언어 먼저 억압하였다는 사실로 비추어 보았을 때, 대만 사회가 광복 이후에도 일본어를 자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민족 언어는 물론 민족 문화까지 회복되지 못한 당시 대만 사회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 국민당은 부패했고 무능했다. 국민당은 대만 본토 출신을 중용하지 않고 모든 요직을 국민당이 홀로 차지했다. 심지어 일본인이나 친일파들을 중용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오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친일파였던 진의가 정부의 요직으로 기용된다거나, 새로 부임한 대법원장이 대만인들을 내쫓고 중국인들로 자리를 꽉 채워 법원이 자기네 집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장면이나, 뇌물만 주면 마약을 밀수할 수 있는 모습들이 나온다. 세 번째, 민족경제 건설이 어려움에 처했다. 군인과 지식인을 포함해 모든 대만인들에게 실업의 위협이 도사리고, 생산이 정지되고, 쌀값을 비롯한 물가가 천정부지로 폭등한다. 이와 같이 광복 후 시간이 지나자 광복 직후의 환희는 사라지고 절망적인 현실만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나긴 식민 통치로 인한 사회의 쇠잔, 불경기와 국민당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 그리고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성적(省籍) 모순이 폭발하면서 2.28 사건이 터지게 된다. 극중 문영이 ‘우리 대만인들이 제일 불쌍해, 일본인과 대륙인에게 차례로 괴롭힘을 당하니’라는 대사는 당시 사태에 대한 대만인의 좌절과 슬픔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영화는 광복 직후 대만의 혼돈과 격변을 긴 호흡으로 담담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삶의 연속성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삶은 기어코 계속되는데, 이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한다. 시작부터 한 생명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출산-장례식-결혼식-출산의 플롯을 거치면서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음 뒤에 또 다시 탄생하는 생명을 병렬함으로써 삶은 언제나 계속됨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에서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애틋함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는 혼란한 사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계속되는 삶에 대한 감독의 시각이 드러난 부분이다. 문웅은 밤에 아이 때문에 깨더라도 화내기는커녕 자신이 돌봐준다고 하는 것이나, 밤중에 일어나서 아기의 이불을 덮어주고 달래주는 등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사랑으로 다한다. 또한 문웅의 아내는 극중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라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하고 도박을 벌이는 손님들의 테이블에 아이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는다. 문웅의 아내가 된 관미 또한 자신의 오빠인 관영의 부음 소식을 듣고 울먹이면서도 자신의 아이에게 밥을 먹인다. 저항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총살당한 임 선생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삶을 중요시해라, 아버지는 죄가 없다’라는 유언 등을 보면 다음 세대에 대한 부모 세대들의 걱정과 사랑이 잘 나타난다. 그리고 문청은 자신이 잡혀가기 3일 전 가족사진을 남기고 관미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함으로서 일상사, 즉 인간사를 남긴다.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으로 역사를 남겨둔 각 개인들의 노력은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고 나무가 되어 걱정과 사랑으로 후대를 지탱한다.
영화의 의의
이 영화는 대만의 계엄령이 해제된 2년 뒤인 1989년에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다.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누구도 차마 다루지 못했던 2.28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이 영화로 인해 대만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분석을 시작하였다.
탈식민 문제
대만의 정체성 문제
대만은 현재 중국 본토와의 통일이냐 독립이냐의 문제로 격렬히 부딪히고 있다. 현 정권의 집권 이후 여론은 독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문제는 대만인의 신분정체성을 찾는 것과 식민지를 긍정하는 여론을 착시하는 것에 있다. 대만인들이 일제 치하의 식민 역사를 긍정하고 일제의 역사나 신분에 자신을 포함시키려고 하는 이러한 괴현상은 현재 대만에서 전개되고 있는 탈중국화, 반(反)중국 현상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반중국 의식 때문에 식민지긍정론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만에서 나타나는 식민지긍정론은 민족정체성의 유실 때문에 발생된 민족분리의식인 것이다.
원인
이 현상의 원인은 광복 이후 대만인들이 느꼈던 좌절감이다. 광복 직후 비정성시에도 나타났지만 대만인들은 중국 의식과 탈식민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국민당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국민당이 자행한 2·28 사건으로 인하여 철저히 좌절되었다. 극 중 관영의 반정부운동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만인들은 국민당에게 실망했고 저항했다. 이러한 실망은 공산당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는데, 이는 공산당이 민족민주해방운동을 표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미소대립에 이은 냉전 체제의 심화로 국민당이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대만에서의 위치를 공고화 하고, 대만인들에게 대규모 백색(반공) 테러를 행하면서 공산당에 대한 기대 좌절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에 경제적으로 종속당하는 결과를 맺게 된다.
탈식민으로 가는 길
우선 무엇보다도 현재 대만의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국민당이 독재를 종식하고 대만의 민주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정신적 종속을 탈피해야만 신식민주의를 극복하고 식민지긍정론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탈냉전, 즉 냉전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있을 때 대만은 비로소 탈식민화를 이루고 독립적인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참고문헌
- 曾健民, 대만의 민족정체성과 탈식민 문제, 역사비평, 2003년
-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영화로 읽는 중국, 동녘, 2006년
- 김영신, 대만의 역사, 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