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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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초』에서는 많은 생물과 인간의 죽음이 언급되고 있다. 죽음은 『야초』에 있어 매우 중요한 소재 중 하니이고 , 루쉰은 이를 통해 죽음에 관해 다면적이고 심층적으로 사유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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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는 죽은 자의 경험에 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죽은 자의 입장에서 죽음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한 것이다. 이 작품은 “꿈에서 본 것”을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눈 앞에 불꽃 같은 것이 번쩍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총 네 개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단락에서는 ‘나’가 죽은 채로 길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서술했다. 두번째 단락에서는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 관에 갇히는 과정이, 세번째 단락에서는 매장된 뒤 체험한 일이 서술된다. 이는 죽은 이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총평으로 마무리 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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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락에서 ‘나’는 육체적 죽음의 상태여서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정신은 살아있다. 이는 “운동신경만 사라지고 지각이 여전히 살아”로 표현된다. 살아 생전 얼핏 생각해보던 일이 현실이 되어, 사후에는 육체가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공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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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들을 수 있고, 입 안의 아픔을 느낄 수 있으며, 눈을 뜰 수 는 없지만 빛을 감지 할 수 있다. “아마도 개미인 듯한 것이 내 등 위를 기어오르면서 간질였다”라는 표현에서도 ‘나’의 지각이 아직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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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나’는 관에 갇혀 땅 속에 묻힌다. 매장된 ‘나’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사실 조금전 보다 훨씬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수의가 구겨진 채로 눕혀져서 불편함을 느끼지만 불편함이은 익숙해지거나 “부패’하게 될 것이므로 이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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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며 썩음을 기다리려 한다. 하지만 썩음으로 가는 과정은 ‘나’가 생각한 대로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무덤에서 ‘나’는 생전 만난 적이 있는 고서 외판원을 만나게 되며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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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서 죽음 이후에 대한 루쉰의 상상은 ‘다시 눈을 뜨고 볼 수 있음’까지만 확인할 수 있다. 썩음의 상태로 가는 완전한 과정은 더 이상 알 수 없지만, 육체의 죽음 이후가 편안하지 만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된 ‘몸은 죽었는데 지각은 살아 있어 괴롭거나’,’곤충의 말을 듣거나’,’죽은 자를 만나는’ 등 지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일을 겪는 상황으로 확인 할 수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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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죽은 뒤 겪는 여러 상황을 나열한 후 마지막 단락을 통해 ‘죽음 이후’의 과정을 마무리 짓는다. 이 시의 ‘나’는 안락도 멸망도 아닌 삶, 친구와 원수 중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 그는 마음이 즐거우면서도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고 죽은 후를 체험하는 꿈으로부터 깨어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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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루쉰은 인간은 죽음 이후 썩음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방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br>

2016년 12월 23일 (금) 00:35 판

원문

我梦见自己死在道路上。
这是那里,我怎么到这里来,怎么死的,这些事我全不明白。总之,待我自己知道已经死掉的时候,就已经死在那里了。
听到几声喜鹊叫,接着是一阵乌老鸦。空气很清爽,——虽然也带些土气息,——大约正当黎明时候罢。我想睁开眼睛来,他却丝毫也不动,简直不象是我的眼睛;于是想抬手,也一样。
恐怖的利镞忽然穿透我的心了。在我生存时,曾经玩笑地设想:假使一个人的死亡,只是运动神经的废灭,而知觉还在,那就比全死了更可怕。谁知道我的预想竟的中了,我自己就在证实这预想。
听到脚步声,走路的罢。一辆独轮车从我的头边推过,大约是重载的,轧轧地叫得人心烦,还有些牙齿〖齿楚〗。很觉得满眼绯红,一定是太陽上来了。那么, 我的脸是朝东的。但那都没有什么关系。切切嚓嚓的人声,看热闹的。他们踹起黄土来,飞进我的鼻孔,使我想打喷嚏了,但终于没有打,仅有想打的心。
陆陆续续地又是脚步声,都到近旁就停下,还有更多的低语声:看的人多起来了。我忽然很想听听他们的议论。但同时想,我生存时说的什么批评不值一笑的话,大概是违心之论罢:才死,就露了破绽了。然而还是听;然而毕竟得不到结论,归纳起来不过是这样——
“死了……”
“嗡。——这……”
“哼!……”
“啧。……唉!……”
我十分高兴,因为始终没有听到一个熟识的声音。否则,或者害得他们伤心;或则要使他们快意;或则要使他们添些饭后闲谈的材料,多破费宝贵的工夫;这都会使我很抱歉。现在谁也看不见,就是谁也不受影响。好了,总算对得起人了!
但是,大约是一个马蚁,在我的脊梁上爬着,痒痒的。我一点也不能动,已经没有除去他的能力了;倘在平时,只将身一子一扭,就能使他退避。而且,大一腿上又爬着一个哩!你们是做什么的?虫豸!
事情可更坏了:嗡的一声,就有一个青蝇停在我的颧骨上,走了几步,又一飞,开口便一舐一我的鼻尖。我懊恼地想:足下,我不是什么伟人,你无须到我身上来寻 做论的材料……。但是不能说出来。他却从鼻尖跑下,又用冷舌头来一舐一我的嘴唇了,不知道可是表示亲爱。还有几个则聚在眉一毛一上,跨一步,我的一毛一根就一摇。实在 使我烦厌得不堪,——不堪之至。
忽然,一阵风,一片东西从上面盖下来,他们就一同飞开了,临走时还说——
“惜哉!……”
我愤怒得几乎昏厥过去。
木材摔在地上的钝重的声音同着地面的震动,使我忽然清醒,前额上感着芦席的条纹。但那芦席就被掀去了,又立刻感到了日光的灼一热。还听得有人说——
“怎么要死在这里?……”
这声音离我很近,他正弯着腰罢。但人应该死在那里呢?我先前以为人在地上虽没有任意生存的权利,却总有任意死掉的权利的。现在才知道并不然,也很难适合人们的公意。可惜我久没了纸笔;即有也不能写,而且即使写了也没有地方发表了。只好就这样抛开。
有人来抬我,也不知道是谁。听到刀鞘声,还有巡警在这里罢,在我所不应该“死在这里”的这里。我被翻了几个转身,便觉得向上一举,又往下一沉;又听得盖了盖,钉着钉。但是,奇怪,只钉了两个。难道这里的棺材钉,是钉两个的么?
我想:这回是六面碰壁,外加钉子。真是完全失败,呜呼哀哉了!……
“气闷!……”我又想。
然而我其实却比先前已经宁静得多,虽然知不清埋了没有。在手背上触到草席的条纹,觉得这一尸一衾倒也不恶。只不知道是谁给我化钱的,可惜!但是,可恶,收 敛的小子们!我背后的小衫的一角皱起来了,他们并不给我拉平,现在抵得我很难受。你们以为死人无知,做事就这样地草率?哈哈!
我的身体似乎比活的时候要重得多,所以压着衣皱便格外的不舒服。但我想,不久就可以习惯的;或者就要腐烂,不至于再有什么大麻烦。此刻还不如静静地静着想。
“您好?您死了么?”
是一个颇为耳熟的声音。睁眼看时,却是勃古斋旧书铺的跑外的小伙计。不见约有二十多年了,倒还是一副老样子。我又看看六面的壁,委实太一毛一糙,简直毫没有加过一点修刮,锯绒还是一毛一毵毵的。
“那不碍事,那不要紧。”他说,一面打开暗蓝色*布的包裹来。“这是明板《公羊传》,嘉靖黑口本,给您送来了。您留下他罢。这是……”
“你!”我诧异地看定他的眼睛,说,“你莫非真正胡涂了?你看我这模样,还要看什么明板?……”
“那可以看,那不碍事。”
我即刻闭上眼睛,因为对他很烦厌。停了一会,没有声息,他大约走了。但是似乎一个马蚁又在脖子上爬起来,终于爬到脸上,只绕着眼眶转圈子。
万不料人的思想,是死掉之后也会变化的。忽而,有一种力将我的心的平安冲破;同时,许多梦也都做在眼前了。几个朋友祝我安乐,几个仇敌祝我灭亡。我却 总是既不安乐,也不灭亡地不上不下地生活下来,都不能副任何一面的期望。现在又影一般死掉了,连仇敌也不使知道,不肯赠给他们一点惠而不费的欢欣。……
我觉得在快意中要哭出来。这大概是我死后第一次的哭。
然而终于也没有眼泪流下;只看见眼前仿佛有火花一样,我于是坐了起来。

一九二五年七月十二日。

해제

야초로 돌아가기

『야초』에서는 많은 생물과 인간의 죽음이 언급되고 있다. 죽음은 『야초』에 있어 매우 중요한 소재 중 하니이고 , 루쉰은 이를 통해 죽음에 관해 다면적이고 심층적으로 사유했다.
「죽은 뒤」에는 죽은 자의 경험에 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죽은 자의 입장에서 죽음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한 것이다. 이 작품은 “꿈에서 본 것”을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눈 앞에 불꽃 같은 것이 번쩍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총 네 개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단락에서는 ‘나’가 죽은 채로 길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서술했다. 두번째 단락에서는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 관에 갇히는 과정이, 세번째 단락에서는 매장된 뒤 체험한 일이 서술된다. 이는 죽은 이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총평으로 마무리 된다.
첫번째 단락에서 ‘나’는 육체적 죽음의 상태여서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정신은 살아있다. 이는 “운동신경만 사라지고 지각이 여전히 살아”로 표현된다. 살아 생전 얼핏 생각해보던 일이 현실이 되어, 사후에는 육체가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공포를 느낀다. ‘나’는 여전히 들을 수 있고, 입 안의 아픔을 느낄 수 있으며, 눈을 뜰 수 는 없지만 빛을 감지 할 수 있다. “아마도 개미인 듯한 것이 내 등 위를 기어오르면서 간질였다”라는 표현에서도 ‘나’의 지각이 아직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이윽고 ‘나’는 관에 갇혀 땅 속에 묻힌다. 매장된 ‘나’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사실 조금전 보다 훨씬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수의가 구겨진 채로 눕혀져서 불편함을 느끼지만 불편함이은 익숙해지거나 “부패’하게 될 것이므로 이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며 썩음을 기다리려 한다. 하지만 썩음으로 가는 과정은 ‘나’가 생각한 대로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무덤에서 ‘나’는 생전 만난 적이 있는 고서 외판원을 만나게 되며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죽은 뒤」에서 죽음 이후에 대한 루쉰의 상상은 ‘다시 눈을 뜨고 볼 수 있음’까지만 확인할 수 있다. 썩음의 상태로 가는 완전한 과정은 더 이상 알 수 없지만, 육체의 죽음 이후가 편안하지 만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된 ‘몸은 죽었는데 지각은 살아 있어 괴롭거나’,’곤충의 말을 듣거나’,’죽은 자를 만나는’ 등 지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이한 일을 겪는 상황으로 확인 할 수 있다.
루쉰은 죽은 뒤 겪는 여러 상황을 나열한 후 마지막 단락을 통해 ‘죽음 이후’의 과정을 마무리 짓는다. 이 시의 ‘나’는 안락도 멸망도 아닌 삶, 친구와 원수 중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 그는 마음이 즐거우면서도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고 죽은 후를 체험하는 꿈으로부터 깨어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루쉰은 인간은 죽음 이후 썩음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방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