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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의자 이다. 囗(에워쌀 위)와 啚(인색할 비)로 구성되었는데, 원래는 啚로 쓰였다. 啚는 높은 기단 위에 지어진 곡식 창고를 말했으며, 이후 다시 에워싼 담(囗)를 더해 지금의 圖가 되었다. | + | 회의자 이다. 囗(에워쌀 위)와 啚(인색할 비)로 구성되었는데, 원래는 啚로 쓰였다. 啚는 높은 기단 위에 지어진 곡식 창고를 말했으며, 이후 다시 에워싼 담(囗)를 더해 지금의 圖가 되었다. <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3</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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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啚는 곡식창고가 세워진 성의 변두리 지역을 말했고 이로부터 바깥쪽에 있는 변두리 ‘마을’을 다시 중심지보다 鄙淺(비천)하고 鄙陋(비루)하다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그래서 圖는 중심이 되는 읍(囗)과 변두리 지역(啚)을 모두 그려 넣어야 하는 것이 地圖(지도)임을 말했고, 지도를 그리며 앞의 일을 설계하고 계획한다는 뜻에서 도모(圖謀)하다와 기도(企圖)하다는 뜻이 나왔다. 일본한자에서는‘図’로,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图’로 쓴다. | + | 啚는 곡식창고가 세워진 성의 변두리 지역을 말했고 이로부터 바깥쪽에 있는 변두리 ‘마을’을 다시 중심지보다 鄙淺(비천)하고 鄙陋(비루)하다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그래서 圖는 중심이 되는 읍(囗)과 변두리 지역(啚)을 모두 그려 넣어야 하는 것이 地圖(지도)임을 말했고, 지도를 그리며 앞의 일을 설계하고 계획한다는 뜻에서 도모(圖謀)하다와 기도(企圖)하다는 뜻이 나왔다. 일본한자에서는‘図’로,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图’로 쓴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3</ref> |
2016년 12월 25일 (일) 23:12 판
語原
회의자 이다. 囗(에워쌀 위)와 啚(인색할 비)로 구성되었는데, 원래는 啚로 쓰였다. 啚는 높은 기단 위에 지어진 곡식 창고를 말했으며, 이후 다시 에워싼 담(囗)를 더해 지금의 圖가 되었다. [1]
文化
啚는 곡식창고가 세워진 성의 변두리 지역을 말했고 이로부터 바깥쪽에 있는 변두리 ‘마을’을 다시 중심지보다 鄙淺(비천)하고 鄙陋(비루)하다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그래서 圖는 중심이 되는 읍(囗)과 변두리 지역(啚)을 모두 그려 넣어야 하는 것이 地圖(지도)임을 말했고, 지도를 그리며 앞의 일을 설계하고 계획한다는 뜻에서 도모(圖謀)하다와 기도(企圖)하다는 뜻이 나왔다. 일본한자에서는‘図’로,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图’로 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