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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4일 (토) 11:54 판

장의

출생 ?
사망 B.C309


개요

장의(張儀)는 위(魏)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세술(합종술과 연행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장의(張儀)는 전국시대에 활동한 사상가이며 전국 6국이 진과 화친하여 공존을 꾀한 연횡책을 주장했다. 출생년도는 알려지 있지 않으며 기원전 309년 즉 진(秦)나라 무왕(武王) 2년에 위나라에서 재상이 된지 1년만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소진(蘇秦)과의 일화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仁)과 예(禮)다. 공자의 인은 인간애, 자애로운 마음을 가르킨다. 공자의 인은 모든 덕을 포함하고 있다. 예는 공동체나 사회가 마땅히 따라야하는 습관과 규칙이다. 공자는 인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써 ‘효제(孝悌)’를 제시하고 효제를 온 세상에 펼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禮)를 존중하였다. 예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공자는 신분 질서와 사회 질서의 유지를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효제와 충서의 인이 존재하지만 이것은 엄격한 구분인 예가 전제된 것이다. 이것은 유교 사상의 봉건성과 보수성을 잘 보여준다.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주장했다. 극기복례란 나를 극복하고 예절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나를 극복하고 예절로 돌아가는 것을 인으로 생각했다. 극기복례가 덕으로 가는 방법이며 공자 사상의 기반이다.

연횡책(連橫策)

연횡책은 전국시대 말기 秦이 나머지 六國을 통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나온 외교적 술수들중 장의가 주장한 술수를 일컫는 말이다.

연횡책(連橫策)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합종책(合縱策)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하는데, 합종책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진(秦)나라를 전국六國이 견제하기 위해 실시한 외교술이다. 秦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국가 안보에 위기의식을 느낀 六國에서 수 많은 유세객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귀곡 선생의 제자인 소진(蘇秦)이 합종책을 주장한다. 소진은 六國간의 소모전이 진(秦)에만 이득이 되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진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秦나라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제창하면서 합종책을 주장했다. 여기서 등장한 사자성어가 계구우후(鷄口牛後)이다. 소진은 합종책을 실행하기 위해서 연(燕)의 문후를 설득하고 韓과 魏, 齊와 楚를 차례로 설득하여 결국 합종책을 완성했다. 소진은 이 합종연합의 장이 되어 육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이러한 합종책에 맞서 등장한 외교적 전략이 연횡책이다. 연횡책은 소진의 동문, 즉 귀곡선생의 제자이자 소진의 친구인 장의(張儀)에 의해서 실행되어진 외교술이다. 장의는 秦의 재상이 되어 육국의 합종책을 무너뜨리고 각 국을 설득해 진과 동맹을 맺게끔 하는 연횡책을 구사한다.

장의는 합종책에서 楚를 먼저 이탈시키고, 이어 韓과 齊, 趙, 燕을 설득해 연횡책을 실행했다.

합종책이 진을 서쪽에 두고 동쪽의 나머지 육국들이 세로의 형태로 연합한 것이라면, 연횡책은 서쪽의 강대국 진과 각 육국들이 가로로 동맹을 맺은 형태이다. 결국 연횡책의 결과 秦은 가까이 있는 나라부터 먼저 공략한 '遠交近攻’의 술책으로 韓과 魏를 먼저 공략하고 趙와 楚와는 화친을 도모해 韓과 魏를 고립시켰다. 이러한 방법을 바탕으로 진은 천하통일을 달성한다.

참고문헌

종청한, <<50인으로 읽는 중국사상>>, 임태홍 역, 무우수, 2007 ISBN 978-89-91334-12-0
임건순,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서해문집, 2014 ISBN 978-89-74836-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