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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려#백비|백비]](伯嚭), 혹은 백희(伯否),는 춘추시대 후기의 사람이다. 출신은 초나라 귀족 출신이고, 오왕 부차 시대에는 태재의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백비를 태재비라고도 불렀다. | [[합려#백비|백비]](伯嚭), 혹은 백희(伯否),는 춘추시대 후기의 사람이다. 출신은 초나라 귀족 출신이고, 오왕 부차 시대에는 태재의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백비를 태재비라고도 불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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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비는 초나라의 명신인 백주리의 손자이다. 백비의 부친은 초나라의 좌윤인데, 호를 극완이라고 하였다. 평소 왕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 + | 백비는 초나라의 명신인 백주리의 손자이다. 백비의 부친은 초나라의 좌윤인데, 호를 극완이라고 하였다. 평소 왕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비무기에게 질투를 샀다. 결국, 백주리는 비무기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었다. 그 후 백비는 오나라로 어렵게 도주를 했다. 오나라에 도착해서 오왕의 신임을 얻어, 여러 차례 승진하고, 오나라의 태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재물을 탐하고, 여자를 밝혔다. |
2018년 6월 22일 (금) 16:54 판
백비(伯嚭), 혹은 백희(伯否),는 춘추시대 후기의 사람이다. 출신은 초나라 귀족 출신이고, 오왕 부차 시대에는 태재의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백비를 태재비라고도 불렀다.
인물소개(생애)
백비는 초나라의 명신인 백주리의 손자이다. 백비의 부친은 초나라의 좌윤인데, 호를 극완이라고 하였다. 평소 왕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비무기에게 질투를 샀다. 결국, 백주리는 비무기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었다. 그 후 백비는 오나라로 어렵게 도주를 했다. 오나라에 도착해서 오왕의 신임을 얻어, 여러 차례 승진하고, 오나라의 태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재물을 탐하고, 여자를 밝혔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였을 때, 월나라의 문종이 몰래 백비에게 미녀와 보화를 뇌물로 주었고, 백비는 뇌물을 받았다. 그래서 백비는 나중에 구천이 죽음을 면하게 하려고, 부차로 하여금 월나라를 점령하지 말고, 항복을 받으라고 열심히 설득하였다.
백비는 오자서를 모함했고, 오자서는 자결하였다.
기원전 473년 월왕 구천은 다시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침략했다. 부차는 자결을 하였고, 구천은 고소성(姑苏城)으로 들어가 점령을 하였다. 모든 관리들이 축하를 하였고, 그 중에는 백비도 포함되어있었다. 백비는 구천에게 일찍이 충분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구천에게 절을 했다. 하지만 구천은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뇌물받기를 좋아하여, 자신의 군주를 죽게했다라는 이유로 백비를 죽인다.
하지만 좌전에 근거하면, 백비는 구천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월나라의 태재에 오르게 된다.
공자의 아들이 평가하기를 그는 태재라는 자리를 사용하여, 마음대로 자신의 사익에 따라 일을 처리하였다. 이것은 나라를 망치는 정치이다.
현재 중국의 강소성 일대에서는 백비를 간사한 사람들을 묘사할 때 대명사로 사용한다. 특히 오나라의 주요지역인 곳에서는 더욱 많이 백비를 악인을 묘사할 때 사용한다. 오나라의 방언인 어떤 말은 백비를 감언이설, 과장이 심한 사람, 거짓말로 사익을 챙기는 사람을 지칭한다.
한때 망국의 상황에서 몸부림쳤던 월왕구천은 와신상담의 상황을 거쳐 재기하여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이런 극적인 역사의 대결 속에서 백비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극히 중요한 인물이지만 역시 매우 불명예스러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나라로 망명
백비는 원래 초나라의 충신인 백주리의 손자이고, 백비의 아버지는 초나라의 좌윤인 극완이었다. 극완은 사람됨이 강직하고 현명하고, 유능했으며, 백성들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비무기로부터 질투를 사, 비무기에 의해 모함을 받아 죽게 된다.
“극완은 초의 좌윤으로, 평왕을 섬겼습니다. 평왕은 그를 총애해 항상 그와 날이 다하도록 이야기하고, 여러날 아침식사를 계속 그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자 비무기가 보고 그를 질투해
평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께서 극완을 아끼고 사랑하심은 온 나라가 아는 바입니다. 어찌 극완 집에 이르셔서 한 차례 주연을 열어 군신들에게 극완을 중시하심을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평왕이 말하길 좋습니다 하고 극완의 집에다 주연을 갖췄습니다. 비무기는 극완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평왕께서는 대단히 굳세고 용감하시어 병기를 좋아하시니,
당신은 반드시 사전에 청당아래와 문 앞뜰에다 병기를 진열하십시오.’ 그래서 극완은 그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했습니다. 평왕이 당도해서 크게 놀라 ‘극완이 무슨 짓이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비무기가 이렇게 말해습니다. 아마도 장차 왕위를 찬탈하고 군주를 살해할 우려가 있을 법하니, 대왕께서는 급히 이곳을 떠나십시오. 사태를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평왕은 몹시 화가나 마침내 극완을 죽였습니다.
극완의 아들인 백비는 초나라로부터 도망을 쳤는데, 똑같이 초나라에서 박해를 받은 오자서가 오나라에서 중용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자서의 가문은 대대로 초나라를 섬기는 집안이었는데 비무기의 계략과 모함으로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평왕의 손에 죽게 된다.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도망쳐 전전하다가 오나라 태자 광에 의해 중용된다. 그런 소식을 들은 백비는 같은 처지에 처한 오자서를 찾아간다.
기려지신(羈旅之臣)
타국에 기우(寄寓)하는 나그네로서의 신하. 손님 입장으로 와 있는 신하.
합려는 백비를 접견하고 물었다.
“과인의 나라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치우쳐 있고 동쪽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습니다. 그대의 선조는 초나라 왕의 격노와 비무기의 참언으로 살해되었다 들었습니다.
그대는 내 나라를 멀다 여기지 않고 이곳에 왔으니, 장차 무엇으로 과인을 가르쳐 주겠소?” 백희가말했다.
“저는 초나라에서 도망한 죄인으로, 조상은 죄가 없지만 뜻밖에도 잔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신은 대왕께서 곤궁에 처한 오자서를 거둬 주셨다는 말을 듣고,
천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특별히 찾아와 귀순한 것입니다. 오직 대왕께서 죽음을 내려 주옵소서.”
합려는 그를 불쌍히 여겨 대부로 삼고, 그와 국사를 의논했다.
오자서와의 만남 (동병상련同病相憐)
백비와 오자서는 개인적인 친교는 없었지만 비슷한 처지에 처해있다는 이유로 동질감을 느꼈다. 이런 맥락에서 오자서는 백비를 오나라왕, 합려에게 등용하도록 추천하게 된다. 그런데 오나라 대부 피리는 백비의 인물됨을 의심하면서 오자서에게 조언을 한다. 다음은 오월춘추의 내용이다.
오나라 대부 피리가 오자서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백비를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그토록 신임하는 것이오?” “나의 원한이 백비와 같기 때문이오. 북쪽에서 태어난 말은 멀리 북쪽을 바라보며 서 있고, 남쪽 월나라에서 날아온 제비는 해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법이오. 옛날 노래 중에 ‘동병상련하고, 동우상구한다’ 는 말이 있소, 그 누가 자신이 가까이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이 애틋해하는 것을 알녀히 여기지 않겠소.” 이 말에서 지금까지도 생활속에서 잘 쓰이는 동병상련과 동우상구의 성어가 나왔다.
“그대는 지금 겉만 보고 평가하고 있소. 어찌하여 속셈을 살피지 않는 것이오? 관상을 보건대 그는 매처럼 노려보고 호랑이 걸음을 걷고 있소. 이는 온통 공을 추구하여 멋대로 사람을 죽이는 성정이오. 가까이해서는 안 되오.” 응시호보(鷹視虎步)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매처럼 노려보고 호랑이 걸음을 걷는 것은 일면 사내의 씩씩한 모습을 뜻하는 웅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피리가 지적한 것철머 다른 사람을 양과 토끼로 간주해 마구 도륙할 소지도 크기에 좋지 않은 뜻이다. 오자서는 이를 듣지 않고 백비와 함께 합려를 섬겼다. 이후 백비는 오자서와 호흡을 같이하며 합려를 패자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오나라의 멸망
합려의 아들 부차가 후사를 잇고, 부왕의 복수를 맹세하면서 오자서도 그를 보좌하였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와 싸워 대승하게 된다. 이때 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창하지만, 부차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간신 백비의 말을 따라 월나라를 속국으로 삼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월나라에 대한 지속적인 경계를 강력 주창한 오자서와 중원 진출을 통해 패자를 바라는 부차와의 골을 메꿔지지 않았다. 한편 월나라의 범려는 간자인 서시와 오나라 간신 백비를 사용하여, 부차의 귀에 오자서를 중상모략하게 된다.
오자서의 죽음
부차는 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국력을 급속하게 소모하고 있었다. 오자서는 “제나라가 피부병이라면 월나라는 속병이니, 패권주의를 접고 내실을 다지시라”라고 진언하지만, 부차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재상 백비는 성실하고 정직한 오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다양한 수단으로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한다.
이 상태로는 언젠가 월나라에 화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오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아들을 제나라에 맡겼다. 그러나 스스로는 오를 버리지 않겠다고 돌아오고, 이 일이 본국에 돌아온 후에 알려져 문제가 되고, 오자서는 부차로부터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때, 오자서는 자신의 목을 베어 월나라 방향의 성문에 걸어두고, 월나라가 오나라를 없애는 것을 보겠다는 저주를 남기고 자결하게 된다.
그 말에 격노한 부차는 오자서를 가죽 자루에 넣어 강물에 버리지만,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근처에 사당을 지어주었다. 오자서가 죽고 월나라를 경계하는 자가 없어지자 오는 파멸의 길로 나가게 된다. 오자서의 예언대로 와신상담한 구천의 월나라는 오를 쳐서 없앤다. 부차는 구천에게 잡혀 죽게 된다.